청와대만 세 번째...
첫 투어를 한다고 긴장하며 설레었던 적이 엊그제 같은데, 오늘은 어느덧 네 번째 투어를 한 날이다. 그중 청와대만 오늘이 세 번째다. 오늘은 대만에서 온 한 쌍의 부부와 함께 청와대 투어를 진행했다. 아내는 대만인이고, 남편은 영국인이었다. 두 분 모두 대만에서 영어 선생님이라고 했다. 그래서 대만인 아내 분도 영어를 무척 잘하셨다. 나는 작년 12월에 가족여행으로 대만을 다녀온 적이 있고, 영국이라는 나라도 평소에 좋아하던 나라였기에 두 분을 만난 것이 기쁘기도 했다.
그러나 투어를 진행하면서 조금 아쉬웠던 부분이 있었다. 영국인 남편 분께서 한국의 역사에 크게 관심이 없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청와대를 돌면서 한국의 근현대사에 대해 알려주었다. "1910년부터 일제강점기를 겪다가 제2차 세계대전의 종결로 1945년 8월, 한국은 갑작스러운 해방을 맞이했어. 하지만 소련과 미국의 개입과 한반도 내에서 계속적인 이념 갈등이 생기면서 안타깝게도 한국은 남과 북으로 분단이 되어버렸지. 1948년 각자의 정부를 설립했고, 그때부터 지금의 청와대가 있는 위치에서 대한민국 정부의 역사가 시작되었어. 총 12명의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지내며 공식적인 업무를 보았으나 처음 5명은 지금은 없어진 구 본관에서, 이후 7명은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신 본관에서 업무를 보았어. 지금 대한민국의 대통령 임기는 5년 단임이고, 대통령제에 의원내각제가 섞여있는 독특한 정치제도를 가지고 있어. 그래서 대통령은 있지만 부통령은 없고, 대신 총리가 있어. 지금의 민주주의는 1987년에서야 비로소 완성되었다고 볼 수 있고, 그전까지는 독재정치가 종종 이루어지기도 했어. 1987년 온전한 민주주의를 얻기까지 여러 차례의 혁명과 운동이 있었어. 민주주의는 쉽게 얻은 것이 아니야. 그리고 대한민국은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이룬 몇 안 되는 나라라고 볼 수 있어."
이런저런 근현대사 이야기를 하며 한국의 역사를 전달했다. 그런데 손님들은 별로 재미있어하지 않았다. "대만과 비슷하네~. 그런데 난 현대사에 크게 관심이 없는 것 같아." 사실 이렇게 말을 한 이후부터 나도 모르게 내 안에 열정이 조금 사그라든 것 같았다. 열심히 설명해 주고 뭔가를 더 알려줘야겠다는 마음이 한순간에 투-욱. 떨어진 순간이었다. 그래서였던 걸까, 아님 영국인의 발걸음이 워낙 빨라서였던 걸까.. 투어가 예상보다 더욱 일찍 끝나게 되었다. 너무나도 빠른 발걸음. 사진 찍는 것조차 좋아하지 않고.. 정말로 설렁설렁 구경했던 영국인.. 대만 여자와 결혼을 해서였을까.. 대만에서 오랫동안 살았기 때문이었을까.. 대만에 대한 애정은 엄청났던 영국인. 무슨 말만 하면 대만이랑 비슷하다는 둥 대만에도 있다는 둥.. 성품은 착한 듯하였으나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너무 관심이 없는 것 같아 조금 속상하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 가이드인 나는 어떻게 투어를 이끌어 나가야 했을까. 내 안에 열정이 다 식은 상태에서 끝까지 최선을 다하여 가이딩을 해야 한다는 것은 머리론 너무 잘 았는데 마음과 현실이 잘 따라주지 못했던 것 같다. 아직 초보인 나에게 프로페셔널한 핸들링 기술은 없었다. 그저 조금 속상하고 당황한 상태로 투어를 계속해 나갈 수밖에 없었다. 나름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선 최선을 다했다. 다만, 조금 더 욕심을 내어서 그분들께 한국을 조금이라도 더 임팩트 있게 알려주고 싶었던 건데, 그것이 마음만큼 잘 되지 않은 것 같아서 아쉬울 따름이었다. 청와대가 세 번째라서 조금 더 익숙해질 줄 알았던 것은 순전히 나의 착각이었다. 이전에 한 선배 가이드님께서 자신은 가이는 3-4년까지도 '초보'라고 생각한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그 말이 실감이 났던 하루였던 것 같다. 한 번 했다고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 투어이다. 매번 다른 특징의 손님들을 만나고, 매번 다른 환경에 맞닥뜨려야 하는 가이드에게 투어는 당분간은 절대로 익숙해질 수 없는 것이다. 매번 새로운 것이다.
또 하나를 더 배운 것 같다. 그리고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대비해 놓은 나만의 대처 방안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청와대'나 '경복궁'에 대해 설명할 수 있을 정도의 공부만 했다고 전부가 아니었다.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한 것 같다. 끊임없이 공부해야 할 필요성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 하루였다. 한 가지 또 돌아보자면, 영국인 남편은 한국 역사와 문화보다는 한국의 음식들에 더 관심이 많이 있는 듯했다. 그럼 음식 얘기를 좀 더 해주면 좋았을 것 같다. 한국의 음식에 대해서도 공부를 많이 해놓아야겠고, 준비된 대본을 만들어야겠다. 또한 남편에 비해선 대만인 아내분은 천천히 사진도 찍으며 꽤 한국에 관심을 보였는데, 그럼 난 남편 분 보단 아내 분 옆에 있으면서 여러 가지 설명을 해줬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왜 지나고 나서는 깨닫게 되는데, 현장에 있을 그 당시에는 이런 생각들이 깨달아지지 않는지 참 답답할 따름이다. 좀 더 현명해질 필요가 있다. 앞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시야를 확보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연습이 되는 부분이라면, 여러 경험을 통해 개선할 수 있는 부분이라면 꼭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조금은 아쉬웠던 오늘의 투어를 뒤로하고,
앞으로 좀 더 개선될 나 자신을 꿈꾸며..
2024년 1월 21일 일요일
서울의 이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