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에 대한 예의

by 지성

나는 외동이다. 그래서 혼자 있는 것이 매우 익숙하다. 외동이라서 좋았던 것은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외동이라서 안 좋았던 것도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했다는 것이다. 특히나 엄마께서는 나를 너무 사랑하셔서 많은 것들을 시키곤 하셨다. 초등학교도 안 들어간 나이에 나는 피아노, 바이올린, 미술학원을 다녔다. 초등학생 때도 나는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피아노, 바이올린, 그리고 댄스까지 배웠다. 엄마의 욕심이었다. 물론 그 덕에 '예술'이라는 분야를 일찍 접하며 음악적 소질을 키울 수 있었다는 장점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도 기억한다. 나는 억지로 엄마를 위해서 그 모든 행위들을 하고 있었다. 엄마를 위해 살고 있었다고 표현해도 무방할 것 같다.


어렸을 때는 다들 그렇다고 한다. 엄마가 시켜서 한 것들로 인해 경험이 쌓이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 부분에선 어느 정도 감사함을 느끼고 있다. 엄마도 엄마로서의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문제는 엄마로부터 받은 압력들이 쌓이고 쌓여, 어느 순간에 나는 엄마가 좋아할 만한 일, 엄마에게 칭찬받을 일에 집중하느라 나 자신을 놓치게 되었다는 것이다. 좀 더 빨리 그걸 알아차리고 고쳤어야 하는데, 어느 정도 자라다 보니 내가 정말 원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을 말하는 게 참 어색해졌다. 사회의 통념 때문인지, 보수적인 종교 문화 때문인지, 내 성격 때문인지.. 이유는 복합적일 것이다. 하지만 명백한 것은 나는 나 스스로를 속이며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세상에 드러내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생각해 보면, 내가 좋아하는 것을 표출하며 살 때 정말 자유로웠던 것 같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엑소의 디오를 좋아하며 친구들이랑 엑소 춤도 따라 추고, 쉬는 시간마다 엑소 뮤비를 시청하며 보냈던 그 시절. 내가 좋아하는 것을 친구들이랑 마음껏 나누며, 마음껏 표출했던 그 시절이 난 가장 자유롭고 재미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자유롭게 살 순 없는 노릇이었다.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이 있었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잘 해내기 위해선 자유를 어느 정도 통제 했었어야 했다. 그렇게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을 해 온 결과는 의외로 참담했다. 긴 여정 끝에 내가 받아들여야 했던 모든 결과들은 나에게 우울감과 무기력함만을 선물해 주었다.


조금 화가 나는 것은, 그 모든 것들을 선택한 것은 나였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나의 미숙한 선택이라고 표현하기로 했다. 그렇다 이제 나의 어린 시절을 탓할 수도, 엄마 아빠를 탓할 수도, 선생을 탓할 수도, 교회 목사님이나 전도사님을 탓할 수도 없는 나이다. 과거에 얽매이며 과거를 탓할 수 없는 나이라는 사실이다. 잘못된 것을 깨달았다면 이제부터라도 고쳐나가면 된다. 이제부터라도 방향을 잘 잡으면 된다. 여전히 나는 망망대해에 있고, 또 방향을 잘못 설정할 수도 있지만 이제는 나 스스로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한다. 그렇게 할 수 있는 나이다. 나 자신을 좀 더 믿고, 나는 재미있는 삶을 살아갈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숨기지 않고, 나 자신에게 솔직한 그런 삶을 살아갈 것이다. 그것이 나 자신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뭘 좋아하든 아무도 나에게 관심 없고 신경 쓰지 않는다. 설령 뭐라고 판단하든 그들은 내 인생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도 못한다. 그러니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나의 삶을 살자. 내 삶에 예의를 갖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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