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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원세상 Sep 23. 2022

역전의 명수들

특별히 스포츠를 좋아하지 않는 내가 프로야구를 알게 된 건 선동렬이라는 투수 때문이었습니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하는 것에 관한 관심을 유발하게 되고 그것에 관해 공부를 하게 만들어 줍니다. 


예전 삼성의 양준혁 선수가 2,000 안타라는 대 기록을 세워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타고난 기량과 철저한 자기 관리가 없으면 도전할 수 없는 '꿈의 영역'입니다.     


그게 뭐 대단한 것인가 생각할지 몰라도 2,000안타는 20년 연속 100안타씩을 때려야 한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한 타자가 1년에 100안타 이상을 치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양준혁 선수가 프로에 첫 발을 디딘 것이 1993년이었는데, 그때만 하더라도 8개 구단 전체 타자 가운데 100안타를 친 선수는 불과 27명이었습니다. 130여 년 역사의 메이저리그에서 조차도 2,000안타 이상을 기록한 타자는 모두 250여 명이며, 한국보다 40여 년 먼저 프로야구가 시작된 일본 프로야구에서도 2,000안타 이상을 기록한 선수는 모두 30여 명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양준혁 선수의 기록은 물론 절대적인 수치에서는 미국과 일본에 크게 못 미치는 기록입니다. 


그러나 양준혁 선수가 대학과 군 복무까지 마친 후 24살에 프로에 입단, 14년 2개월 만에 2,000안타를 돌파한 점을 고려하면 기록의 순도와 가치는 더욱 빛납니다. 대기록을 달성한 미국(162경기)과 일본(144경기) 프로야구 타자들은 매년 126~133경기를 치른 양준혁 선수에 비해 타석에 들어설 기회가 훨씬 많았지요. 실제로 최근 일본 프로야구 역대 35번째로 2,000안타를 때려낸 다나카 유키오 선수는 기록 달성까지 무려 22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양준혁 선수의 2,000안타는 더욱 의미가 깊습니다. 놀라운 것은 양준혁 선수는 구단에서 제공하는 운동기구는 자기보다 어려운 후배에게 주고 자신은 매 해 일천만 원 이상의 운동기구를 구입했다고 합니다. 스스로에게 맞는 도구를 선택하고 철저히 자기 관리를 한 것의 결과가 나타난 것이 갰지요. 


지금은 프로야구 그늘에 가려 그 빛을 잃었지만, 예전 고교야구의 인기는 대단했습니다. 동대문 운동장에서 열리는 고교야구는 모두를 열광시켰으며, 그 시절 신화처럼 남아있는 ‘군산상고’는  역전의 명수들이었지요.


초반 부진은 따 놓은 당상이며 손바닥에 진땀이 나다 못해 이젠 다 틀렸구나 싶던 9회 말이면 어찌어찌 만들어간 만루에서 온 몸을 전율시키는 홈런 한방으로 통쾌한 역전을 끌어낸 그들은 맞수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고 마지막 순간까지 안심할 수 없는 끈질긴 팀이었습니다. 물론  관객들에게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자의 희망’을 단면적으로 보여준 것이었지요. 


인생도 어쩌면 한 편의 역전 드라마가 될 수 있습니다. 인생의 어느 한 시기에 아마도 5회 말이나 6회 초쯤에서 이제 다시는 일어날 수 없을 만큼의 좌절을 맛본다 해도 그건 아직도 역전의 순간을 남겨 놓았다는 이야기 밖에는 안됩니다. 


더 멋진 드라마가 기다릴지 누가 알 수 있겠습니까? 

열심히 일하고 있는 우리 인생의 야구게임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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