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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원세상 Aug 22. 2022

그런 벗 하나 있었으면...

나이가 들면 친구가 그리워진다고 했던가요?


논어에는 사귀어 유익한 벗이 셋이 있고, 사귀어 해로운 벗이 셋이 있다고 했는데, 정직한 사람을 벗하고, 성실한 사람을 벗하고, 견문이 풍부한 사람을 벗하면 유익하고, 편벽된 사람을 벗하고, 부드러운 척하면서도 아첨하는 사람을 벗하고, 말만 그럴듯하게 둘러대는 사람을 벗하면 해가 된다고 했습니다. 이미 다 알고 있는 말이겠지만, 그런 친구 갖기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닌지라 자꾸 되뇌어도 부족함이 없는 듯합니다.      


내겐 여고시절 그런 유익한 벗의 조건을 충족시키고도 남음직한 아주 의미 있는 친구가 한 명 있었습니다. 절친하다는 뜻을 넘어 스승 같은 친구였습니다. 


늘 고요하고 잔잔하며 맑은 물 같던 그 친구는 글쓰기를 즐겨했고, 그림까지 능한 재주 많은 친구였습니다. 시인이신 스승으로부터 함께 동문한 친구이기도 했습니다. 나를 위해 항상 조용하지만 엄숙한 기도를 해 주었고 근엄하지만 밝게 항상 웃음을 주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그 친구와는 잠시의 인연이 닿았지만, 이내 끊어져 버렸습니다. 그 당시 상황이 어찌 돌아간 건지 술 마신 뒤처럼 맥없이 끊어지는 필름같이 기억은 가물거리지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슴에 담아 놓고 품에 간직해 놓아 언젠가는 한 번쯤 꼭 만나고 싶은 그리운 친구였습니다.      


그렇게 꼭 하고 싶은 것을 가슴에 품고 살면 언젠가는 이루어진다고 했던가요?

지난달 대치동 어느 카페에서 그 친구를 보았습니다.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첫눈에 서로를 알아보았습니다. 세월 비껴가는 장사는 없다고 했지만, 어쩜 여고시절 그 모습 그대로였는지, 내 가슴에 간직한 여고시절 그 친구의 그 모습 그대로 세월을 이기고 살았던 모양입니다.      


그렇게 그 친구를 만나게 되었고, 우린 어제 본 친구처럼 쫑알거렸습니다. 이미 유명인이 되어 버린 그 친구는 인터넷 몇 번 두드려보면 화들짝 떠버리는 유명인이었건만, 나는 그동안 그렇게 단순한 방법조차 시도하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친구는 나를 찾으려고 백방으로 노력했던 모양입니다. 예전 살던 집으로 편지도 띄워봤고 학교로 동문회로 이리저리 내 연락처를 알아보려고 했는데 사생활 침해라는 이유로 찾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나더러 무심하다는 한마디 말로 20년의 시간을 훌쩍 뛰어넘은 듯했습니다. 

사회는 냉정하여 주어진 과표로 측정하는 고로 지금 그 친구는 성공의 가도를 달리고 있고 나도 나름 열심히 본분에 최선을 다하고 있으므로 아주 넉넉한 마음은  20년의 시간이 무색할 만큼 어제 본 듯 참 편안하고 좋은 느낌이었습니다. 나에게 그 친구는 관포지교이며, 복심지우이며, 죽마고우이며, 익자삼우이기 때문입니다.      

도종환 시인의 '벗하나 있었으면,,'하는 시가 문득 떠오릅니다. 

"... 오늘도 어제처럼 고개를 다 못 넘고 지쳐 있는데

달빛으로 다가와 등을 쓰다듬어 주는 벗 하나 있었으면

그와 함께라면 칠흑 속에서도 다시 먼 길 갈 수 있은 벗 하나 있었으면...."     


그래서 요즘의 나는 행복합니다. 이젠 칠흑 속에서도 다시 먼 길 갈 수 있고, 평생 기대고 살아갈 수 있는 소중한 친구를 다시 만났기 때문입니다. 


'친구야, 네가 있어주어 난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단다.'     


아주 가끔은 우리 삶의 얇음과 허약함을, 아름다움과 끈덕짐을 대위법적으로, 때로 점증법적인 기법으로 자유자재로 구사하면서 미세한 균열로부터 마침내 바닥을 뒤집는 전복에 이르기까지 능청스럽게 펼쳐 보이지만 그것이 단순한 야유나 비판이 아니라 진정 사랑으로 행해질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친구의 모습과 실체를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친구의 날카롭지만 따뜻한 통찰력과 함께 말이죠. 신경질적인 예민함과 내성의 틀에 갇혀 스스로의 입지를 좁혀가는 듯했던 요즘의 나에게 친구와의 만남은 하나의 행복이며 즐거움이며 바람직한 모습이었습니다. 친구란 참으로 편안하고 따뜻한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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