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원세상 Aug 14. 2023

엄마를 기억하다

엄마는 다 힘이 센 줄만 알았어요

쌀가마니도 번쩍 들고

무거운 물건도 번쩍번쩍 드는 로봇태권브이인 줄 알았어요

엄만 그렇게 힘이 센 장사인 줄만 알았어요

엄마가 되면 다들 힘이 세지는 줄만 알았어요

엄마는 눈물도 없는 철의 여인인 줄만 알았어요

아무리 슬픈 일이 있어도 굳건히 이겨내는 강인한 여인인 줄만 알았어요.

마루 끝에 앉아서 회심곡을 듣고 있던 엄마가 엉엉 울 때 느꼈어요.

엄마도 엄마가 보고 싶다는 걸.

내가 엄마가 되니 힘은 오히려 더 없어요

누가 도와주었으면 좋겠는데

내 아이한테만큼은 그러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내 딸들도 내가 힘이 센 태권브이인 줄 알 거예요.

엄마가 되니 슬퍼도 울 수가 없어요.

어른인 척 꿋꿋하지만 구석진 곳에서 숨죽여 울어요.

우리 엄마도 그랬을 거예요.


내게 엄마는 특별한 존재입니다.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나에게 엄마는 세상이 가질 수 없는 걸 갖게 해 준 특별한 분입니다. 

늘 내 앞에서는 언성 한번 높이지 않으시고 웃어주기만 하셨기에 

나는 행복이란 걸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엄마는 나만 보면 행복하다고 하셨습니다. 

5남매 중에 유난히 나만 보고 많이 웃어주셨던 기억입니다.     

      

그런 엄마에게 치매가 왔습니다. 

시간이 지나니 이제 엄마의 기억도 흐릿해져만 갑니다. 

가끔은 그 이뻐하던 내 이름 석자도 기억을 하지 못합니다. 

그래도 여전히 나만 보면 웃고 계십니다. 

언니들에게는 불같은 성을 내는 엄마는 내가 가면 여전히 웃어줍니다. 

언니들의 말엔 귀도 안 기울이던 엄마가 내 말은 잘도 들어줍니다.        

   

강철 같았던 엄마의 눈물을 보았습니다. 

강인해 보이기만 했던 엄마가 눈물을 흘렸습니다. 

치매가 확정되던 날 엄마는 엉엉 우셨습니다.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내게 엄마는 늘 마징가제트처럼 굳세고 

바늘로 찔러도 피 한방을 안 날 것 같은 모습으로 기억되기에 

놀람을 넘어 가슴이 너무 아팠습니다.     

 

여고시절, 비 내리는 날이면 흙길에 행여나 운동화가 더러워질까 버스 타는 입구까지 

운동화를 들고 와 주던 분이었습니다. 


엄마는 오이의 비린 향이 싫다고 안 드셨습니다. 

평생 오이 농사를 지으면서도 오이는 입에도 대지 않았습니다. 

우리들에게 오이 반찬을 해 주면서도 오이를 안 드시는 것을 보면 신기했습니다.      

엄마가 치매가 오고 나서 알았습니다. 

엄마는 오이뿐 아니라 나물이나 야채 종류를 안 좋아하신다는 것을. 

나물 반찬을 엄마 앞으로 가져다 놓으면 슬쩍 밀어 놓으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나물 반찬을 해주시던 엄마는 나물류를 좋아하지 않는 분이셨습니다.

나는 엄마의 딸로 수십 년을 살면서 엄마의 치매가 심해진 뒤 그걸 알았습니다.

참 무심한 딸입니다.     


아버지가 떠나고 나신 뒤 엄마는 급격히 치매가 심해졌습니다. 

누군가가 곁에 있다는 것과 없다는 것의 차이였습니다. 

한동안 나는 아버지도 치매인 줄 았았습니다. 

유난히 부부정이 좋으셨던 아버지는 엄마가 이상한 소리를 하여도 

그것에 장단을 맞춰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께도 치매가 온 것은 아닌가 의심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엄마의 그 엉뚱한 소리에 귀 기울여주고 장단 맞춰주고. 

그래서 행복해하는 엄마를 바라보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렇게 장단 맞춰줄 사람이 없자 엄마의 증상은 급격히 심해진 것이었습니다.    

      

엄마는 지금 요양원에 계십니다. 

누구랄 것도 없이 엄마를 요양원으로 모셨고, 

요양원은 한번 들어가면 죽어서야 나올 수 있다는 무서운 곳입니다.  

    

치매가 심해져서 나도 몰라보는 엄마는 이제 웃지도 않습니다. 

항상 나를 보며 미소 지어주던 엄마는 이제 없습니다.      

엄마가 없으면 죽을 것 같았던 나는 지금 잘살고 있습니다. 


요양원으로 모신 뒤 처음에는 하도 자주 찾아가서 요양원 분들이 짜증 아닌 짜증을 내기도 하였는데, 

지금은 바쁘다는 핑계로 그저 엄마를 추억만 합니다. 

그리고 어쩌다 찾아가면 고작 머무는 시간 달랑 몇 분. 

그나마도 코로나 때문에 면회가 안 되는 날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나는 우걱우걱 잘 먹으며 잘살고 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글이냐 식食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