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1경기를 보면 경기 중에 타이어를 귀신같이 갈아 끼우는 노련함이 보입니다. 포뮬러 원은 머신의 성능과 드라이버의 기술이 승부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하지만 타이어 교체 등 다양한 정비를 하는 피트스톱도 승부를 결정짓는 또 다른 부분입니다. 피트스톱은 F1 경기장에서 트랙 옆에 마련된 별도의 정비구역입니다.
F1 규정상 모든 레이서들은 경기 중 반드시 한 차례 이상 피트스톱에 들어가야 합니다. 정비는 순식간에 이뤄집니다. 머신이 들어오는 순간 차량을 들어 올린 뒤 타이거 4개를 모두 바꿔 끼웁니다. 바퀴를 빼고, 다시 넣고, 너트를 조이는 작업까지 철저한 분업으로 이뤄집니다. 5초의 마술이라 불리는 타이어교체는 순위에 결정적인 요인으로 꼽힙니다. 눈 깜짝할 새 타이어를 갈아 끼우는 현란한 호흡은 F1의 색다른 재미입니다. 모든 작업은 채 6초가 되지 않아 끝납니다.
치열한 스피드 경쟁에서 타이어 교체 속도는 순위를 가르는 승부처가 되곤 합니다. 이 피트 스톱에서 실패를 한다면 안 좋은 결과가 오게 됩니다. 조금의 실수라도 한다면 1초, 2초 그렇게 손해를 본다고 하면 굉장히 커다란 결과로 이어집니다. 이 때문에 작은 실수 하나가 레이스 전체를 망치는 사고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단순한 스피드경쟁을 넘어 F1이 팀 스포츠임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입니다.
무슨 경기에서나 관전 포인트는 있습니다. 관전 포인트를 알고 관람을 한다면 더 큰 재미를 얻을 수가 있습니다. 현시대의 관전 포인트는 의도되지 않은 자연스러움입니다.
그리스에서는 자연을 피시스(physis)라 하였습니다. 이 말은 피오마이(태어나다)라는 동사에서 유래하며, 본래 '생성(生成)'을 뜻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에 따르면 자연이란 '그 자체 안에 운동의 원리를 가진 것'입니다. 이와 같은 그리스의 자연관에서는, 자연은 조금도 인간에게 대립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그러한 생명적 자연의 일부로서 그것에 포괄되어 있습니다.
자연은 인간에게 대하여 이질적·대립적이 아니고 그것과 동질적으로 조화하며 초월하는 것이 아니고 거기에 내재적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자연을 인식한다는 것은, 근대에서처럼 우리들과 상관없는 이 자연에 밖으로부터 실험이라는 고문을 가하여 자백시켜 이것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들에게 친밀한 동질자로서 이것을 안으로부터 직관하고 이해하는 것을 말합니다. 결국 그리스에서는 자연은 인간이나 신까지도 포괄하고 살아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며 이러한 일종의 '범자연주의(汎自然主義)'가 밑바탕에 있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낯선 것일지라도 자연스러움에 따른다면 시간이 흐를수록 익숙해지는 것입니다. 숲에는 큰 나무, 작은 나무가 있듯 자신의 내면의 풍경과 자연이 동일하지 못한다면 어느 누구에게도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할 것입니다. 자연의 숲에서 편안함을 가지는 것처럼 시간의 흐름을 가슴으로 받아들이지는 못해도 인정하게 되는 것이야말로 마음의 먼지를 털어버리고 어떠한 감정이 내부에서 수면 밖으로 돌출되어도 상관없는 일처럼 말입니다.
현대의 전반적인 트렌드는 자연스러움입니다. 패션은 물론, 헤어, 메이크업, 기기 등, 여러 가지 움직임들이 자연을 모토로 하고 있습니다. 자연을 떠난 인간은 생존할 수 없으며, 물질이 문명화되면 될수록 자연에 대한 인간의 바람도 간절해지므로 자연은 우리의 몸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자연스럽다는 게 가장 진실하며, 가장 생기 넘치는 작업이니까요.
이른 봄 사래긴 밭을 갈아엎을 때 발밑에 피어오르는 흙냄새가 코를 찌르고, 봄빛 완연히 온산야에 파릇파릇한 싹이 돋아날 때, 찬란히 떠오르는 아침햇살 받아 고운 향기를 발하는 소나무들이 너무도 예쁘듯, 이 미치도록 아름다운 자연스러움을 예쁘게 포장하여 누구에게든 내어주어야 합니다.
완성의 완성, 불균형의 균형이라는 난도 높은 문제들을 우린 완성과 균형의 무대에서 풀어봐야 합니다.
사진=스투데리아페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