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가지 마."
울면서 손을 흔드는 시아의 모습을 버스 안 창문을 통해 볼 때마다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마음속으로......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하지 않나.
시아는 아빠가 떠나는 모습에 점점 적응하는 것처럼 보였다. 처음에는 엉엉 울더니 몇 번 지나고 나서는 "아빠 잘 가."하고 웃으면서 나를 보내준다. 그런데 나는 그 모습이 더 가슴 찡하게 다가온다. 더 마음속으로 눈물을 흘린다.
헤어지고 만나고, 누구나 하는 하루 중 일과다. 아침에 출근하면 아내와 딸과 헤어지고 퇴근하고 오면 다시 아내와 딸을 만난다. 하지만 헤어지고 만나는 시간이 길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매일매일 만나고 헤어지는 것과 몇 달 만에 만나고 헤어지는 것은 나에게 너무 힘든 시간이었다. 하루하루 커가는 모습이 달라지는 시아 옆에 있을 수 없다는 것. 이것이 나를 지금 글을 쓰게 만드는 이유다.
'육아휴직'
예전부터 생각만 해왔던 꿈만 같은 그 이름.
2021년 7월. 나에게도 꿈만 같던 일이 벌어졌다. 육아휴직의 시작이었다. 아내와 시아 모두 좋아했고 제주도로 내려가기로 했다. 이제 떨어져 지내지 않아도 되는 거였다. 최소한 1년은.
해외를 돌아다니면서 일을 하고 싶었던 나에게 지금의 일은 원하던 일이었다. 하지만 가족이 생기고 나서부터는, 특히 시아가 나의 전부가 되어버린 그 시점부터, 이 일이 나에게 부담으로 다가왔다. 아내가 시아를 임신할 때도 해외에 있었고 (이때는 해외에 같이 있었다.), 아내가 한국으로 병원을 가야 한다며 혼자 비행기를 타고, 시아가 세상에 나온 후 일주일 만에 곁을 떠나야 했던 시간들. 해외에서 한국으로 복귀한 후 잠깐 동안 같이 있을 수 있어서 행복했지만 또 해외로 나가야만 했던.
시아의 커가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지 못했던 시간이 나에게는 너무 아픈 시간들이었다. 아내가 보내준 사진으로 마음을 달래고, 영상통화로 시아의 목소리를 듣고, 매일 휴가 날짜만 기다리는 생활. 하루가 1년 같은 생활이 계속 지속되던 날. 드디어 한국으로의 복귀. 코로나가 점점 심해지던 때. 한국으로 돌아와도 시아와 아내를 안지도 못하고 방문에 비닐이 쳐져있는 안방으로 들어가야 했던 그때가 아직도 생생하다. 그래도 한집에 같이 있었으니까 저 멀리 떨어져 있었을 때보다는 너무 벅차게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한국에서의 본사생활이 시작되었고 매일매일 짧은 헤어짐과 만남이 반복되었다. 행복한 헤어짐과 만남이었다. 코로나가 점점 심해져 재택근무도 하게 되었고, 해외현장도 코로나로 인해 중단되는 상황까지 발생되어 1년 동안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하지만 무언가가 부족했다. 내 욕심인가. 몇 달에 한번 보던 것이 매일 보는 것으로 바뀌었는데도 시아와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은 지워지지 않았다. 무언가 더 해주고 싶었고 더 같이 있고 싶었다.
'제주도'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대부분 가지고 있는 로망. 제주에서 한 달 살기, 일 년 살기, 바다가 보이는 집에서 살아보기 등. 제주도에 가면 더 행복할 것 같았고, 더 같이 있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우리 가족을 위해 떨어지지 않고 일할 수 있는 방법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제주도는 나에게 희망이었다.
일 년 반의 제주도 생활.
지금 생각해 보면 꿈처럼 지나간 시간이었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 회사에 복직을 하고, 매일 짧은 헤어짐과 만남이 일상이 되었다. 육아휴직동안 제주도에서 지냈던 시간들이 우리 가족들에게, 나에게, 어떤 것을 남겼을까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마당이 있는 2층 단독 주택에도 살아보고, 지금까지 하던 일과는 전혀 관련 없는 장사도 해보고, 아침형 인간이었던 내가 저녁형 인간으로 살아보고, 매일 아침 출근하느라 하지 못했던 시아 등교를 같이 하고, 아내와 같이 출근을 하고, 시아와 자전거를 타고 바닷가 근처를 산책하고.
이전까지 나에게는 전혀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나의 일상이 되었던 그 시간. 이 시간은 나를 한 단계 더 성숙하게 만들었다. 가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고, 앞으로 내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할 지도 알려주었다.
'우리 떨어지지 말자'는 내가 항상 마음속에 품고 사는 말이다. 사랑하는 시와와 아내 곁을 더 이상 떠나고 싶지 않으니까. 제주도에 있는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떨어지지 않고 지겹도록 붙어 지냈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난 같이, 함께 있는 것이 좋았다.
사람은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혼자만의 시간이 길어지면 외로움이 커진다. 며칠 동안의 혼자만의 시간은 자신을 되돌아보고 충전할 수 있는 시간이 되지만 길어지면 세상에 혼자 외톨이가 되어 버린 느낌이 든다.
지금도 육아휴직을 생각하고 있고, 준비하고 있는 아빠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 현실적인 문제로 (금전적인 문제, 직장 문제 등) 하고 싶어도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이분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다. 누구나 처한 현실은 다르지만 하고자 하는 것이 같다면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솔직히 육아휴직을 결정하고 일 년 반동안 지내면서 '정말 운이 좋았다.'라고 생각한 적이 많았다. 하지만 이 운도 왔을 때 잡았기 때문에 좋은 운이 되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회사에 복직을 하고 동료들과 이야기했을 때 가장 많이 들은 말이 '대단하다. 멋지다.'라는 말이었다. 생각했던 것을 실행에 옮기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있기 때문에 이런 말들을 나에게 하지 않았을까.
누구에게나 기회는 올 것이고 그것을 잡는 것은 본인들의 선택이다. 그 선택이 나에게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면 그것이 바로 '운'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정말 간절히 원한다면 그 운은 저절로 온다고 본다. 그 이유는 간절히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무엇이라도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생각이든 행동이든. 그것이 나에게 기회로 찾아올 것이고 그 기회를 잡는다면 나중에 '운이 좋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이제는 육아가 엄마들만의 몫이 아니다. 아이들은 엄마뿐 아니라 아빠와의 시간도 간절히 원한다. 아빠와의 시간이 많으면 많을수록 아이들은 더 행복해질 것이다. 엄마가 채워주지 못하는 부분을 아빠가 채워 줄 수 있기 때문에. 이 이야기를 읽고 많은 아빠들이 용기를 가지고 육아휴직을 했으면 좋겠다. 정말 인생에 있어서 가장 잘한 선택이었다고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