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가자! 제주도로
"시아야, 내일 제주도에서 보자."
차 안에는 시아와 아내가 아닌 살림살이들이 보조석과 뒷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트렁크 역시 책 한 권도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꽉 차 있었다. 어쩔 수 없이 혼자 제주도를 내려가게 되었다. 시아와 아내는 비행기를 타고 가고, 나는 온갖 짐들을 벗 삼아 고흥에 있는 녹동항에서 배를 타고 가기로 했다. 이사비용을 아끼려면 어쩔 수가 없었다.
차에 타기 전 시아와 뽀뽀를 하고, 아내를 꼭 껴안은 후 차에 타 시동을 걸었다. 창문을 열어 밖을 보니 시아가
"아빠, 내일 제주도에서 봐."하고 인사를 한다.
이번 헤어짐은 슬프지 않다. 곧 새롭고 행복한 생활이 시작될 테니. 출발하는 내 마음도, 나의 발이 되어 줄 자동차도 한결 가볍게 느껴졌다.
아내와 심하게 다툰 후 시아와 단 둘이 집에 있는데 메시지가 왔다. 아내였다. 제주도에 있다고. 설마 했는데 사실이 되어버렸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나 보다. 다행히 제주도에 처남이 있어서 조금이나마 안심이 되었다. 시아를 재우고 혼자 생각에 잠겨있을 때 아내에게서 다시 메시지가 왔다. 제주도로 오라고. 기뻤다. 아내의 마음이 풀어진 것 같아서. 바로 회사 휴가를 내고 시아와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로 내려갔다.
아내에게는 마음의 병이 있다. 나 없이 혼자 시아를 키우느라 생긴 병. 나 때문에 생긴 병이었다. 나는 항상 아내에게 미안하고 고맙다. 어떻게 해서든지 이 마음의 병을 고쳐주고 싶었다. 항상 옆에 있으면서.
제주도에 도착해 아내의 얼굴을 보자 내가 해야 할 일이 떠올랐다. 시아가 엄마에게 달려가 껴안는 모습을 보면서 더 확고해졌다.
"여보야, 나 육아휴직 할게. 제주도 내려와서 살자."
예전부터 생각만 해오던 것을 이제는 실행에 옮길 때가 된 것이었다. 아내도 고민하더니 결정하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래, 해보자."
시아도 엄마, 아빠와 떨어지지 않고 지낼 수 있다고 하니 얼굴에 반이 웃는 얼굴로 채워졌다.
회사에 출근해 팀장님에게 육아휴직을 하겠다고 말씀드렸다. 팀장님 표정은 한마디로 '왜?'였다. 지금 근무환경도 코로나 때문에 재택근무도 하고, 해외현장도 안 나가도 되고, 본사에서 근무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육아휴직을 하겠다고 하니 팀장님 입장에서는 이해가 안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회사 상황은 나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지 않았다. 내가 일하고 있는 파트를 축소하고 있었고, 다른 팀으로 전배를 가는 동료들도 많이 있었다. 회사를 그만두는 동료들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 일에 대해서 한번쯤은 되돌아보고 싶었다. 변화가 필요했다.
가족과 격하게 붙어있고 싶었고, 다른 일도 해보고 싶었고, 새로운 곳에서 살아보고 싶었던 마음이 이 순간 다 맞아떨어졌다. 육아휴직을 하고 제주도에 가서 처남과 같이 가게를 운영하는 것. 때마침 처남이 제주도에서 가게를 오픈하려고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 운명 같은 타이밍이었다. 이 기회를 안 잡을 수도, 잡지 않을 이유도 없었다. 무조건 잡으라는 신의 계시가 아니었을까.
차를 타고 내려가는 동안 육아휴직을 하고 제주도에 내려가게 되었던 지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운전하는 것이 즐거웠고, 운전하는 내내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수백 번의 이상적인 생각보다 한 번의 실행이 변화의 시작이다. - 셰릴 샌드버그'가 한 말이 떠올랐다. 내 인생 변화의 시작이었다.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니고, 누가 알려준 것도 아닌 나만의 방식으로 새로운 인생을 만들어 갈 출발점이었다. 그 한가운데는 가장 중요한 '가족'이 있었다.
이런 나의 결정을 적극적으로 응원해 준 동생의 집에 도착했다. 나와 같은 회사에 근무하다가 여수로 회사를 옮겨 예쁜 가정을 꾸미고 사는 동생이다. 내가 제주도에 내려간다고 하니 자기 집에서 하룻밤 자고 가라고. 한 번에 녹동항까지 가기에는 부담이었다. 서울에서 녹동항까지... 너무 멀다.
밤늦게까지 이야기가 이어졌고 동생과 제수 씨 모두 너무 멋지다고 끝까지 응원하겠다고 했다. 행복한 시간이었다. 누군가가 내가 결정한 일에 대해 같이 호응해 주고 격려해 준다는 것. 이보다 기분 좋은 일이 또 있을까.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여수에서 고흥으로 출발하는 길. 너무 이른 새벽이라 제대로 인사도 못하고 나왔지만 거울에 비친 손 흔드는 동생 모습이 아직도 잊히지가 않는다.
'나중에 제주도에 꼭 놀러 와.'
마음속으로 읊조린다.
제주도로 가는 배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컸다. 배 안에 에스컬레이터와 엘리베이터까지 있다니. 감탄하며 배에 올랐다. 배 타고 가는 동안 바다를 바라보며
'기다려라 제주도야 내가 간다.'를 몆 번이나 외쳤는지 모른다. 그만큼 간절했던 일이 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나에게 주어진 일 년 아니면 일 년 반이라는 시간. 그토록 원했던, 이제 떨어질 걱정 없이 지겹도록 붙어 있을 수 있는 시간의 시작. 벅차오르는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드디어 제주도가 보이기 시작했다. 곧 시아와 아내를 만날 시간이 다가왔다. 하루 떨어져 있던 것이었는데 왜 이렇게 길게만 느껴지던지. 배 정박 후 차를 몰고 공항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시아와 아내는 처남이 마중 나와 공항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제주도에서 만난 시아와 아내 그리고 처남. 여행이 아닌 제주살이 첫날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