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생산품이 나오다

Feed in / Product 생산

원료를 받기 위한 모든 준비가 마무리되어 갈 무렵 주변이 어수선해졌다. 원료 투입시점을 언제로 할 것이냐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다. 왜냐하면 원료 투입시점은 프로젝트 진행 중 상징적인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원료가 들어가는 시점부터 생산품이 나오고 실질적으로 공장이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태국 프로젝트 하지만 중국화교 출신이 많이 중국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숫자 9에 맞춰 9시 9분 9초에 원료를 투입하기로 결정됐다. 웅성거리던 분위기는 어느새 긴장감이 흐르는 상황으로 바뀌었다. 점점 다가오는 시간. 시간이 9시 9분이 되었을 때, 모두들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1, 2, 3, 4, 5, 6, 7, 8, 9.

9초가 되었을 때 운전원의 마우스 클릭 하나로 드디어 원료가 투입되었다. 모두들 환호성을 질렀고, 포옹을 하며 수고했다는 덕담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원료가 들어가자 공장의 운전조건들이 변하기 시작했다. 평화스럽게 돌아가고 있던 공장에 갑자기 새로운 물질이 들어왔으니 반응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운전원들의 눈동자의 움직임과 손동작이 빨라졌다. 그리고 그들을 관리하는 메니져는 여러 시스템의 모니터를 보며 운전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운전조건을 빨리 잡지 않으면 점점 더 운전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모두들 긴장하며 운전 현황을 지켜보았다. 1분 1초가 한 시간으로 느껴지던 시간이 지나고 다시금 안정을 찾은 공장은 특별한 문제없이 잘 돌아가고 있었다.

현장에 와서 시운전 일을 하면서 가장 뿌듯했던 시간이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 어린아이가 처음 두 발로 걸었을 때처럼 이 공장도 생산을 위한 첫 발걸음을 내디딘 것이었다. 이제 계속해서 스스로 제품을 생산해 낼 것이고 나는 옆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만 해주면 되는 것이었다. 시간이 흐르면 아이가 점점 크면서 부모님의 손이 덜 가는 것처럼 이 공장도 시간이 지나면 특별한 일 없이 매일매일 자기 일을 해 낼 것이다. 이러니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이제는 생산품에 초점을 맞췄다.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조건을 맞추는 작업에 들어갔다. 생산품이라고 다 팔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전자제품도 불량품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처럼 생산된 제품이 소비자가 찾는 조건에 부합하는지 살펴봐야 했다. 원료가 들어간 시점부터 매일 하루에 한 번 같은 시간에 샘플을 채취해 분석을 시작했다. 분석 결과가 계약조건과 다르면 어떤 부분이 다른지, 왜 높게/낮게 나왔는지 확인해서 어떤 운전 조건을 변화시켜야 하는지를 찾았다. 해결방안을 찾으면 운전원에게 알려주고 운전조건을 바꿔 일정시간 운전 후 다시 샘플을 채취해 변화된 결과를 확인했다.

이 작업은 현장에 있는 운전원들에게 가장 중요한 업무 중 하나다. 공장의 전체를 살피고 세는 부분이 있는지, 소음이 나는 부분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매일 같은 시간에 샘플을 채취해 분석실로 보내는 작업 또한 중요했다. 각 샘플 포인트의 위치를 외우고, 샘플 종류마다 채취하는 방법을 습득하는 등 초반에는 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하지만 익숙해지고 나면 큰 어려움 없이 진행되는 작업이었다.

하나둘씩 생산품의 조건이 맞았다는 소식이 들렸고, 조건이 맞춰진 생산품은 임시 저장 탱크에서 생산품 저장 탱크로 옮겨졌다. 이제 이곳에 쌓인 생산품은 시장에 나갈 수 있는 제품들이었다. 처음엔 신기했다. 원료를 넣자마자 생산품이 바로 나오고 얼마 있지 않아 생산품의 조건도 다 맞아가다니. 오래 걸릴 줄 알았던 작업들이 하루, 이틀 사이에 모두 끝나버렸다. 꼭 청개구리처럼 안 되는 놈들이 있긴 하지만 얼마가지 못해 착한 개구리로 다 변해버렸다.

처음으로 수행한 프로젝트에서 우리 손으로 원료를 넣고 우리 손으로 제품을 받아 보니 '시운전이라는 것이 정말 이런 것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팀장님께서 말씀하신 '공장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 바로 그 일이 현실이 되어버렸다. 이제는 이 생명을 꺼뜨리지 않고 계속해서 유지해 나갈 수 있게 만드는 일만 남았다. 사람도 아프듯 공장도 아플 때가 생기겠지만 이제는 어떤 어려움이 와도 해결할 자신이 생겼다. 공장에 생명을 불어넣었는데 앞으로 못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