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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아파파 Mar 05. 2024

최종 운전 테스트를 진행하다

Load up / Performance Test

원료가 들어가고 우리가 원하는 제품이 잘 만들어지고 있었다. 이제 우리가 원하는 양만큼 만들어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모든 일이 조금씩 한 단계씩 올라가듯 공장 운전도 마찬가지였다. 공장이 체하지 않을 정도의 원료를 투입해 제품을 생산해 냈으니 이제는 한 단계 더 나아가 좀 더 많은 원료로 더 많은 제품을 생산해야 했다. 지금까지가 식사의 에피타이져였다면 이제 본 식사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안정적으로 공장이 돌아가고 있을 때 조금씩 원료의 양을 늘렸다. 5%, 10%, 15%. 한번 올릴 때마다 운전조건이 흔들리는지 확인하고 후단 공정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지 확인했다. 변화된 상황에 공장이 적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 번에 너무 많이 먹으면 체하듯 공장도 똑같다. 천천히 꼭꼭 씹어 먹어야 하는 것이다.

전체 운전용량의 60%에 도달했다. 아직까지는 전혀 문제없이 잘 운전되었다. 이 상태로 100%까지 가자. 마음속으로 크게 소리쳤다. 왜냐하면 운전용량을 올리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기 때문이다. 설계할 때 운전용량 100%보다 조금의 여유를 가지고 설계하지만 여러 가지 변수 때문에 100% 도달이 쉽지 않다.

결국 문제가 발생했다. 공장이 탈이 난 것이다. 반응을 도와준 촉매에 붙어 있는 coke(석탄 덩어리)를 태워 없애는 기기의 온도가 설계온도보다 자꾸 높아지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뜨거워진 촉매가 다시 반응기로 들어가 반응기의 온도도 높여버리는 것이었다. 반응온도가 높아져 버리니 우리가 원하는 제품이 제대로 나올 수가 없었다. 즉, 우리가 원하는 제품의 양은 줄어들고 원하지 않는 제품의 양이 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기기의 온도가 높아지니 원료의 양도 더 이상 늘릴 수가 없었다. 이 상태에서 원료를 더 넣어버리면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꼴이었다. 온도를 낮춰보기 위해 주입되는 공기의 양을 늘려보기도 하고 반응기에 주입되는 가벼운 원료(coke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 원료)의 양도 늘려보았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운전용량을 올리는 작업은 멈추었다. 현상태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 운전용량 80%.

원인을 찾기 위해 공정팀/라이센서와 계속해서 미팅을 진행했고 결국 원인을 찾아냈다. 바로 원료의 성분이 설계조건과 달랐던 것이었다. 즉, Coke가 생성될 수 있는 성분이 훨씬 더 많았던 거였다. Coke가 많아졌으니 온도가 더 올라가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원료를 바꾸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미 계약이 되어버린 원료를 취소할 수도 없었고, 다른 원료를 구할 수도 없었다. 이러한 계약은 며칠 전, 몇 달 전이 아닌 꽤 오랜 시간을 두고 계약이 되기 때문이다. 쉽게 바꿀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방법은 한 가지였다. 현재 원료에 맞게 운전조건을 바꾸는 것. 하지만 기존 원료의 성분을 가지고 만들어낼 수 있는 최적의 조건으로 지어진 공장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 상태로 계속 끌려갈 수만은 없었다. 빨리 프로젝트를 끝내는 것이 우리의 의무였기 때문에.

우리는 발주처와 협상에 들어갔다. 100%까지 못 올리는 이유는 발주처에서 공급하는 원료가 계약서에 나와있는 성분과 달라 발생한 문제이니 이 상태에서 Performance Test 진행하자고 했다.

Performance test는 운전용량 100%로 정상적인 제품생산이 72시간 동안 아무 문제 없이 돌아가는지 확인하는 작업이다. 이 작업이 끝나면 시운전 팀의 일이 모두 끝난다.

발주처는 안된다며 우리의 귀책사유를 가져와 100%까지 무조건 올리라고 요구했다. 올리지 않으면 절대로 테스트를 진행하지 않겠다고. 하지만 원료의 문제가 운전용량을 못 올리는 결정적인 원인이었기에 라이센서도 발주처의 편을 들 수가 없었다. 결국 현상태에서 얻을 수 있는 제품의 양을 정하고 Performance Test에 들어갔다.

중간중간 원료의 성분이 자꾸 바뀌어 테스트 통과조건을 간신히 넘겼다. 우리는 공식적으로 테스트 결과를 발주처에게 보냈고 프로젝트의 종료를 요청했다. 하지만 역시나 발주처는 승인해 주지 않았다.

Performance Test. 서로에게 가장 민감한 사항 중 하나이다. 책임이 계약자에서 발주처로 넘어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새 공장인데 완벽하게 넘겨받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계속되는 공방으로 테스트 결과에 대한 승인은 자꾸만 미뤄졌다.

이 문제는 우리의 손을 떠났다. 시운전 팀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높으신 분들의 결정을 기다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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