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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아파파 Feb 29. 2024

야행성 인간으로의 변신

교대근무

현장에서의 하루는 매우 길다.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오로지 일만으로 하루를 보내는 적이 많았다. 끝나고 숙소에 들어가도 씻고 자기 바빴으니. 하지만 Commissioning이 끝나고 Start up이 시작되면서 조금이나마 휴식 시간이 생겼다. 공장이 아무 문제없이 돌아가기만 한다면.
 
나는 아침형 인간이다. 새벽에 일어나 온전히 아침을 보내고 일찍 잠자리에 드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시운전 특성상 저녁형 인간으로 변신해야 할 때가 온다. 바로 공장이 돌아갈 때다. 공장이 돌아가면 24시간 한시도 쉬지 않고 돌아가기 때문에 관리할 사람이 필요하다. 공장 운전은 운전에 특화된 사람들이 진행하지만 문제가 생기거나 이 운전원들을 관리할 사람이 필요하다. 그 일을 하는 사람이 바로 시운전 엔지니어다.
 
총 4명의 시운전 엔지니어가 돌아가면서 야간 근무를 하게 되었다. 낮에 3명이 근무를 하고 야간에 한 명이 밤을 새우는 것이었다. 나 같은 사람은 싫어하지만 원래 야행성인 사람들은 좋아했다. 왜냐하면 3일 동안의 야간 근무를 하게 되면 하루 휴가를 받기 때문이었다. 그 하루동안 쉴 수도 있고, 가까운데 돌아다닐 수도 있고, 골프를 치러 갈 수도 있었다. 힘든 일을 했기에 보상을 받는 것이었다.
 
간단히 숙소에서 저녁을 먹고 느지막이 출근을 하면 낮 근무자가 퇴근을 위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와야 퇴근을 할 수 있기에. 지금까지 발생했던 일들에 대해 인수인계를 받고 서로 갈 길을 갔다. 나는 운전실로, 낮 근무자는 집으로. 인수인계받은 사항을 운전 데이터를 보면서 다시 한번 확인을 하고 그 외에 운전에 다른 변화가 있었는지 확인했다. 그리고 태국 운전원들과 인사도 나누었다. 매일 하는 일이지만 빼먹지 않고 했다. 태국 운전원들과의 관계가 좋을수록 내가 일하는 것이 편해지기 때문이다.
 
야간 근무는 밤을 새우는 것만 빼놓고는 힘든 일이 없었다.  야간에는 특별한 일을 하지 않는다. 운전에 변화를 주는 것도, 현장에 작업도 거의 없다. 대부분 낮에 진행되고 밤에는 현상유지를 목표로 한다. 야간에 사람도 많이 없는데 문제가 생기면 바로 해결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시간을 잘 보내는 것이 중요했다. 계속해서 똑같이 운전되는 모니터만 보기에는 내 눈꺼풀이 너무 무거웠기 때문이다. 중간중간 현장에 나가 세는 곳은 없는지, 어디 이상한 곳은 없는지 확인도 하고, 다시 운전실에 들어와 졸고 있는 운전원들도 깨우고, 회의실에 들어가 운전 관련 공부도 하면서 기나긴 밤을 보냈다.


이렇게 밤을 새워가며 일을 해 본 적은 처음이었다. 친구들과 놀 때, 벼락치기로 시험공부를 할 때 빼고는 밤을 새워본 적이 거의 없었는데 3일을 연속으로 밤을 새우는 일은 나에게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낮과 밤이 바뀌어 생활한다는 것. 이전까지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는데. 한편으론 기존 공장에서 근무하셨던 분들은 얼마나 힘드셨을까 생각이 들었다. 그분들은 회사에 입사와 동시에 교대근무를 시작하셨고 퇴직하실 때까지 낮과 밤이 바뀐 생활을 하셨으니. 왜 급여가 높았는지도 이제 이해가 되었다. 정말 힘든 일이기에. 야간 근무가 몸에 익숙해질 때쯤에는 다시 주간 근무로 돌아가야 하니 ‘몸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금방 몸이 망가질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야간 근무를 하면서 좋았던 점도 많았다. 가장 좋았던 점은 바로 혼자만의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혼자 운전 현황을 꼼꼼히 살펴볼 수 있었고, 혼자 궁금한 부분에 대해 공부할 수 있었고, 혼자 현장을 돌아다니며 천천히 둘러볼 수 있었고, 야간 근무가 끝나면 혼자 여유로운 휴식을 취할 수도 있었다.
 
모든 일에는 장단점이 있다. 하지만 단점만 생각하면 얼마나 힘들까. 단점이 있다는 것은 꼭 그에 반대되는 장점이 존재한다는 것. 그 장점을 찾아 단점을 가린다면 어떤 일이든 즐겁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야간 근무를 하면서 몸과 정신이 많이 힘들었지만 그 힘듦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야간 근무의 장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려 했던 것이다. 그 장점이 나에게 힘을 주었고 그 힘으로 어두운 밤하늘이 해가 뜨는 아침이 되기까지 버텼다.
 
오랜 기간 야간 근무를 하진 않았지만 이때의 경험은 나를 한층 성숙하게 만들었다. 어떤 힘든 일이 있어도 이겨낼 수 있는 힘과 상대방이 힘들었을 일에 대한 공감능력이 조금은 늘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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