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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아파파 Feb 28. 2024

공부를 시작하다

Licensor와의 미팅

드디어 라이센서가 현장에 도착했다. 라이센서는 공장이 본격적으로 돌아가기 전 start up 준비가 모두 완료되어 있는지 확인하고, Hydrocarbon(탄화수소)가 들어간 이후부터 운전 조건을 어떻게 맞춰야 할지, 문제가 생기면 이유가 무엇이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조언을 해주는 역할을 한다.


라이센서가 현장에 오는 날이 정해지고 하루하루가 긴장되었다. 매일 라이센서와 미팅을 하고 그날 해야 할 일, 점검해야 할 일, 운전이 되는 동안 운전 조건을 어떻게 변화시켜야 할지 등을 논의해야 했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시운전 작업이 시작되기 전 공부를 한다고 했지만 이렇게 큰 공장을 돌려본 경험이 없는 나로서는 모든 것이 낯설었다. 현장에서 부딪히면서 몸으로 익혀왔던 일을 이제는 머리로 해야 할 때가 온 것이었다. 미팅 시간에 멍하니 라이센서의 하는 말만 들을 수는 없었다.


현장의 시운전 업무가 어느 정도 마무리 되었을 무렵부터 가지고 있던 자료들을 하나씩 공부해 나가기 시작했다. 인터넷에서 찾았던 자료, 공정팀에서 받은 자료, 운전 경험을 가지고 계신 분께 받은 자료 등 공부해야 할 자료는 너무나 많았다. 밥상은 차려져 있으니 내가 먹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현장 업무가 끝나고 숙소에 들어가서 자기 전까지 벼락치기로 몇 날 며칠을 공부한 결과, 나름 자신감이 생겼다. 메니져님께 모르는 부분 질문도 하고, 운전 경험을 가지고 계신 전문가 분께도 물어보고, 날이 갈수록 실력이 늘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고등학교 때 이렇게 공부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문뜩 들었다.


이제는 실전이다. 드디어 라이센서가 현장에 도착했고 매일 미팅이 이루어졌다. 출근하자마자 지금까지 운전되고 있는 상황을 파악하고 문제가 있는 부분이 있으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생각해 보고 미팅에 들어갔다. 역시 벼락치기가 최고였다. 라이센서가 하는 말이 이해가 되고, 궁금한 점은 물어보고, 나의 생각도 표현할 수 있으니 점점 미팅에 참석하는 것이 즐거웠다. 하루하루 알아간다는 즐거움과 매일매일 논의된 사항을 운전에 반영해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공장을 볼 때의 성취감이 날이 갈수록 늘어났다.


하루는 라이센서와 둘이 테이블에 앉아 지금까지 공부했던 내용들 중에서 궁금했던 점을 직접 물어보기도 했다. 다행히 라이센서도 친절히 잘 알려주었고 많은 자료들도 공유해 주었다. 그리고 라이센서가 유럽이나 미국인 아닌 중국계 미국인이라서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었던 것 같았다.


노트에 빼곡히 적혀있는 내용과 프린트해서 붙여놓은 자료들, 프로젝트 종료 후 팀원들에게 공유할 프레젠테이션 자료들까지 지금 봐도 흐뭇한 미소가 지어진다. 열정적으로 일에 참여하고 적극적으로 다가가니 어려운 문제도 금세 해결이 되었다. 이것이 바로 '아는 것이 힘'인 것 같았다.


라이센서와 헤어지기까지 정도 많이 들었다. 기계 벤더들은 짧게 와서 많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없었지만 라이센서는 몇 달이고 공장이 돌아갈 때까지 있다 보니 이야기할 기회도 많고, 친해질 기회도 많았던 것 같다. 마지막 식사를 하는 동안 라이센서의 칭찬에 조금은 놀랐다. 나는 내 할 일을 했을 뿐인데. 앞으로 어떤 프로젝트의 어떤 라이센서가 와도 잘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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