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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아파파 Mar 11. 2024

갑자기 공장이 멈추다

Emergency Shutdown

운전실 안이 소란스러워졌다. 여기저기 다급한 태국말이 나의 귓가를 스쳐 지나갔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무슨 문제가 생긴 것이 분명했다.

내가 맡고 있던 공정에 문제가 발생했다. 가장 무거운 물질이 돌아다니는 곳의 흐름이 점점 느려지는 것이었다. 갑자기 무슨 일이지?

펌프가 멈추고 히터가 꺼지고 결국엔 공장이 꺼져버렸다. 바로 Shutdown이 되어버렸다. 그것도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Emergency Shutdown(긴급으로 공장을 갑자기 꺼버리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었다. 이야기로만 들었던 일이 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뭐부터 해야 하지? 눈앞이 깜깜했다.

먼저 Shutdown의 원인부터 찾아야 했다. 그래야 해결방안도 나오기 때문에. 원인은 운전원의 운전미숙으로 발생했다. 가장 핵심인 컬럼(Column)의 제일 밑의 온도를 설계온도조건보다 높게 운전한 것이었다. 컬럼은 혼합되어 있는 물질을 끓는점의 차이를 이용해 분리해 내는 장치이다. 그 결과로 무거운 물질이 고체화되어 Coke(석탄과 비슷함)로 변해버린 것이었다. 흘러야 할 물질이 딱딱하게 굳어버렸으니 공장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리가 없었다.

안정적으로 돌아가고 있던 공장에 왠 날벼락인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운전원들과 즐겁게 이야기 나누고 있었는데. 순식간에 벌어진 일. 다시 돌이킬 수도 없고, 다시 돌아갈 수도 없었다. 이젠 벌어진 일을 잘 수습하는 일만 남았다.

이 공장에서 가장 핵심인 공정이 멈추니 다른 공정도 마찬가지로 하나둘씩 Shutdown에 들어갔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맡은 공정에서 생산품을 받아주지 않으니 선행공정은 멈출 수밖에 없고, 후단 공정은 원료를 받을 수가 없으니 돌릴 수가 없었다. 공장의 모든 공정들은 유기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한 공정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다른 공정들도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모든 공정들이 꺼지고 대책회의에 나섰다. 제일 먼저 지금 문제를 라이센서에게 문의하고 해결책을 요청했다. 이런 문제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바로 라이센서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현장 확인이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막혀 있는지 알아야 추후 작업을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도면을 보면서 막혔을만한 곳을 표시해 보고 실제 현장에서 막혔는지 확인해 보았다. 현장 확인 결과 예상했던 곳보다 훨씬 많은 곳이 막혔음을 발견했다. 점점 문제가 심각해졌다.


세 번째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업체를 선정하는 것이었다. Coke를 깨고 깨끗이 배관, 컬럼을 청소할 수 있는 업체, 반응기 촉매를 빼내 저장소로 옮길 수 있는 업체 등 여러 업체를 한꺼번에 접촉해해야 할 일과 일정을 알려주었다. 갑작스레 발생한 일이기에 비용은 최우선 고려사항이 아니었다. 최대한 빨리 작업을 끝내고 공장을 다시 돌리는 것이 돈을 아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렇게 큰 공장을 짓거나 운전할 때는 보험을 들어놓는다. 무슨 일이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에. 물론 이번 일도 운전 중 발생한 일이었기에 보험적용이 가능했다. 그렇기에 일은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

평온했던 공장은 한순간에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다. 웃음이 넘치던 공장에 여기저기 고함소리와 coke를 깨는 소리만이 가득 차 버렸다. 이제부터 밤낮 구분 없이 작업에 들어갔다. 시간이 곧 돈이기에.

얼마나 걸릴까?
가장 바빴던 시기보다 더 바쁜 날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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