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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아파파 Apr 12. 2024

여기가 탄광인가

Decoking

공장이 다 멈춘 상태에서 현장을 확인했다. 배관을 풀러보고, 기계를 열어보고. 온통 시커면 석탁뿐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정말 숨이 확 막힐 정도로 답답함이 내 가슴을 후려쳤다.
'이걸 어떻게 다 없애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지?'
끊임없이 나의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는 질문들이 더욱더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현장 전체를 확인하고 매니저님께 보고할 자료를 만들었다. 문제가 발생한 위치와 사진, 추후 진행 방향, 소요시간 등. 갑작스럽게 발생한 일이라 준비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먼저 한꺼번에 쏟아진 일로 인해 나 혼자서는 감당할 수가 없었다. 현장 확인도 해야 하고, 업체와 미팅도 해야 하고, 윗분들에게 보고할 자료도 만들어야 하고, 스케줄 관리도 해야 하니. 내 입에 한숨만 잔뜩 쌓여갔다. 결국 매니저님께 인원 충원을 요청했고 본사에 있던 후배가 바로 날아와 줬다. 오자마자 후배를 껴안고 '고맙다'라는 말을 연신 내뱉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작업에 들어갔다. 문제가 발생한 부분에 대한 사진과 작업 내용을 현지 업체들에게 보내 견적을 받았다. 당장 급하게 해야 했기에 가격 흥정은 그냥 말뿐이었다. 업체 쪽에서도 우리의 상황을 알기에 가격을 잘 내리지 않았다. 어쩔 수 없는 일. 급한쪽은 우리였기에.

계약서 작성 후 현장에 장비와 작업자들이 들어왔다. 대형 컬럼 밑에 발생한 Coke를 깨기 위해 작업자가 직접 안으로 들어갔다. 도로 공사장에서 아스팔트를 깨는 그 장비를 가지고. 착암기. 이때 이 장비의 이름을 처음 알았다.

'시운전 팀에서 이런 장비를 사용할 줄이야.'
너무 딱딱한 나머지 시간 내에 끝내기 위해 업체는 야간작업도 불사했다.


온도를 올려주는 Heater는 더 심각했다. Heater안의 모든 배관이 Coke로 가득 차 있었다. 이 부분은 사람이 들어가서 깰 수도 없었다. 방법은 배관을 잘라내 Decoking pigging을 해야 했다. Decoking pigging은 배관 안에 coke를 깰 수 있는 장비를 넣고 물이나 공기로 압력을 가해 쭉 밀어내는 작업이다. 이때 배관 안에 들어가는 장비 이름을 Pig라 한다.

일반적으로 pig는 스펀지와 비슷한 재질로 되어 있어 긴 배관을 청소할 때 사용된다. 하지만 이번 경우에는 딱딱한 coke를 제거해야 했기에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래서 업체에서는 decoking pig 준비해 왔다. 이것은 일반 pig에 금속이 붙어 있어 지나가면서 coke를 깨면서 배관을 청소할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꽉 차있는 배관에 pig를 넣을 공간도 없었다. 그래서 pig가 들어갈 수 있게 도구를 이용해 coke를 깨고 물이나 공기가 흐를 수 있게 coke 내 구멍을 내는 작업이 필요했다. 이 작업은 고압의 물을 쏠 수 있는 기계를 가지고 와서 진행했다. 막힌 배관을 뚫는데 정말 많은 작업이 필요했다.

착암기를 이용해 대형 칼럼 안의 coke를 깨고, pig를 이용해 heater 배관의 coke를 제거하니 내 속이 뻥 뚫린 기분이었다. 하지만 한가득 쌓여있는 coke와 그 주변에 흩날리는 검은색 가루는 이곳이 탄광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었다. 사무실에 들어와 시커먼 마스크가 그때의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잘 돌아갈 줄만 알았던 공장이 갑자기 멈추고 시꺼먼 coke로 가득한 현장을 보니 '아무 문제 없이 공장을 돌리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의 실수로 발생한 일이 이렇게 끔찍한 상황으로 변하는 모습을 본 순간 내가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시운전.
바로 생명을 살리는 일.
하지만 생명을 유지시키는 일도 중요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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