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로 가득한 동굴

EP System

공장이 돌아갈 때부터 계속해서 문제가 되었던 기계가 있었다. 촉매공정의 제일 마지막 장치인 EP system. 정식명칭은 Electrostatic Precipitator로 전기집진기라 불린다. 쉽게 설명하면 전기를 이용해 분진을 포집하는 기기이다.

일반적으로 촉매 공정은 촉매가 유실되지 않는 고정형이 많다. 즉, 큰 반응기 안에 촉매를 담아 고정시켜 유체가 촉매사이를 통과하게 만든다. 하지만 내가 맡은 공정의 촉매 부분은 촉매가 계속해서 순환한다. 즉, 계속해서 촉매가 줄어든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계속해서 촉매를 공급해줘야 하고 촉매 공급 시스템도 문제없이 계속해서 잘 돌아가야 한다.

이렇게 유실된 촉매는 두 군데에서 발견된다. 첫 번째는 생산품에 포함되어 있고, 두 번째는 가스에 포함되어 대기로 방출된다. 생산품에 포함된 촉매는 촉매제거 시스템이 따로 있어 이곳을 통과한 후 최종 제품으로 판매가 된다. 가스에 포함된 촉매는 전기집진기를 거쳐 촉매가 제거되는데 이 장치에 문제가 발생한 것이었다.

전기집진기를 거쳤는데도 불구하고 대기로 빠져나오는 가스에 촉매가 가득했다. 촉매의 양을 측정하는 계기의 수치도, 대기로 빠져나오는 가스를 눈으로 봤을 때도 뿌연 색갈이 그대로 보였다. 이 부분은 환경문제와도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발주처에서 계속해서 신경 쓰는 부분이었다. 해결하지 못하면 공장을 계속해서 돌릴 수 없는 상황까지 발생할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공장이 멈췄고 전기집진기를 확인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급하게 벤더를 부르고 내부를 확인하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어떻게 들어갈 것인지, 어떤 것을 확인할 것인지, 청소는 어떻게 할 것인지 등등.

벤더가 현장에 도착했고 바로 내부에 들어가기로 했다. 3단으로 되어 있는 전기집진기 각각 단을 모두 확인하기로 했다. 첫 번째 문을 여는 순간 모든 사람들이 다 놀랐다. 내부에 가득한 촉매가 우리를 들어오지 말라며 밀어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렇게 덮여있는데 촉매가 제대로 잡히겠는가. 내부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결국 청소를 하고 들어가기로 했다.

물을 이용해 전기집진기 안을 깨끗이 청소했다. 얼마나 많던지 하루에 작업이 끝나지 않았다. 꼬박 이틀을 매달려 내부의 촉매를 모두 제거했다. 이제 말릴 시간. 내부에 전기가 흐르는 장치이기에 수분은 독약이나 마찬가지였다.

건조가 끝나고 발주처, 벤더와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에 손상이 가거나 이상한 점은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전기를 발생시키는 부분에 많은 녹이 발견되었다. 벤더는 문제없는 것이라고 이야기했지만 사용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이렇게 녹이 많이 발생한 것이 정상인지 의심되었다. 벤더와 논의 끝에 촉매에 포함되어 있는 수분함량을 측정해 보기로 했다. 다시 공장이 돌아가면.

전기 관련 기기들도 모두 확인 결과 기계적으로 문제는 없었다. 이제 문제는 전기집진기로 들어오는 촉매를 확인해봐야 했다. 먼저 집진기로 들어오는 촉매의 양을 운전기록을 보고 확인했고 수분함량과 집진하는데 문제가 될 수 있는 항목들을 추려 분석하기로 했다.

결론은 전기집진기가 수용할 수 있는 양보다 더 많은 양의 촉매가 들어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그리고 넘어오는 촉매가 약간 잘 뭉쳐지는, 수분기도 머금고 있었다. 많은 양이 들어오니 집진되는 양 외 나머지 촉매가 그대로 밖으로 빠져나갔고 수분을 머금고 있던 촉매가 집진기에 붙어 효율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여러 번의 분석과 운전조건의 변화를 통해 이 문제는 조금씩 해결되었다. 거대한 장치 안으로 들어가 내부를 확인하고, 문제점이 뭔지 찾기 위해 벤더와 계속해서 소통하고, 관련 논문과 자료도 찾아 읽어보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해결책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공장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 시운전 엔지니어는 해결사가 되어야 했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지금까지 잘해왔던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기 때문이다. 어느 한 부분이라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공장은 돌아갈 수가 없다. 그만큼 문제해결 능력이 운전 중 시운전 엔지니어의 가장 큰 역량 중 하나다.

공장이 멈춘 지금, 나의 능력을 더 끌어올릴 수 있는 기회였다. 많은 문제가 내 앞에 있었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다. 낮과 밤 구분 없이. 꿈에 나타날 정도로 모든 생각이 이곳에 집중되어 있었다. 앞으로 어떤 해결책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