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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아파파 Jun 14. 2024

탐험이 시작되다

Rx/Rg system (반응기/재생기 시스템)

현장에서 가장 큰 장치. 바로 Reactor & Regenerator이다. 형제처럼 항상 같이 붙어다니는 두 친구는 나란히 손을 붙잡은 듯 연결되어 있다.


Reactor(반응기)는 원료를 촉매와 함께 반응시키는 곳이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큰 덩어리의 원료를 촉매의 도움하에 작게 잘라내는 반응이 일어나는 곳이다.


Regenerator(재생기)는 반응기에서 사용된 촉매를 다시 사용할 수 있게 재생시키는 곳이다. 반응이 일어나게 되면 촉매 겉에 검은 물질이 붙게 된다. 반응이 잘못 일어나거나 원료에 다른 물질이 포함되어 있을 때 발생한다. 그 촉매 겉면에 붙어있는 석탄같은 물질을 태워버리는 것이다. 촉매의 가장 중요한 점은 바로 표면적을 넓혀 원료와 최대한 많이 접촉하는 것이다. 그런데 표면에 이물질이 붙으면 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에 이 이물질을 제거하는 것이다.


이런 반응이 일어나는 곳을 드디어 들어가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공장이 꺼지고 내부에 있는 촉매를 다시 Hopper(촉매저장시설)에 옮기는 작업이 진행되었다. 압축된 공기를 이용해 촉매를 촉매저장시설로 보내고 나머지 이동이 되지 않은 촉매는 전문업체를 불러 제거했다. 대형 청소기를 가져와 촉매를 빨이들이는데 순식간에 남아 있는 촉매들이 사라졌다.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내부 온도가 내려 갔을 때 드디어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허가가 나왔다. 내부로 들어가는 것 자체가 위험한 일이기에 안전팀에서 최종 확인 후 들어갈 수 있었다.


하얀 coverall(상하가 붙은 작업복)을 입고, 분진 마스크를 쓰고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 동굴 속을 탐험하듯 렌턴을 켜고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밖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던, 도면으로만 봐왔던 세상이 눈앞에 펼쳐졌다. 상상 속에서나 만날 수 있는 미지의 세계에 온 기분이었다.


내화벽돌로 둘러쌓여 있는 이곳은 촉매 때문인지 하얀색으로 변해 있었다. 렌턴을 따라 뽀얀 가루들이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이런 촉매들이 내려오는 통로가 보였다. 거대한 관 끝에 촉매가 일정하게 내려올 수 있게 커다란 막이 설치되어 있었다. 왔다갔다 할 수 있게 설치되어 있어 촉매가 어느 정도 쌓이면 문이 열려 내려오는 시스템으로 되어 있었다. 손으로 직접 만져보며 잘 움직이는지 부서진 곳은 없는지 살펴보았다. 


밖에서 봤을 때 '정말 크다'라는 생각 밖에 들지않았는데 내부로 들어와보니 '정말 대단하다'라는 말 밖에 나오지 않았다. 거대한 크기와 비교되게 내부는 너무나 섬세했기 때문이다.


Reactor의 탐험이 끝나고 Regenerator로 향했다. 바로 옆에 있어 이동하는데는 어렵지 않았다. Regenerator 내부 제일 위쪽에는 버섯같이 둥근모양의 Mushroom이 있는데 이곳에 촉매가 딱딱하게 굳어 돌처럼 변해있었다. 고온으로 인해 촉매와 촉매 표면에 붙어있는 물질이 서로 엉겨붙은 것이었다. 누가 봐도 있으면 안되는 친구였다.


작업자들이 사다리를 타고 건너가 섬처럼 가운데 우뚝 버티고 있는 Mushroom으로 넘어갔다. 조심스레 굳은 촉매를 깨고 자루에 담아 밖에 있는 나에게 넘겨 주었다. 하나 둘 자루가 쉼없이 올라왔고 거의 10자루가 넘어서야 굳은 촉매 덩어리를 다 제거 할 수 있었다. 


이렇게 돌아가는 공장이 멈추고 기기 내부를 살펴볼 수 있는 기회는 많지가 않다. 특히 시운전 엔지니어에게는. 일반 공장에서는 대체로 4년에 한번 유지/보수를 위해 공장을 끄고 모든 기기들을 점검한다. 이때 엔지니어들과 운전원들은 내부를 점검할 기회가 생긴다. 하지만 나와 같은 건설회사의 시운전 엔지니어는 공장을 돌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프로젝트가 끝나기 때문에 내부를 볼 기회가 흔치 않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일은 나에게 굉장히 좋은 기회였다.


내부에 들어가 눈에 보이는 모든 부분을 사진으로 남기고 문제가 발생했던 부분을 표시하고, 왜 이런 현상이 발생했는지 확인해보고, 손상 입은 부분은 어떻게 수리를 해야할지도 확인했다. 


이렇게 다른 엔지니어들은 경험하기 힘든 일들을 겪으며 정리해 놓은 자료들은 아직도 나의 소중한 자산으로 남아있다. 대부분 반복되는 문제들이 많기에 이 보물은 내가 이 일을 그만둘 때까지 내옆에서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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