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니시아 이사가다

모슬포에서

by 시아파파

한달이 조금 넘었을까.

라니시아가 조금씩 자리 잡아가고 있을 때 쯤, 놀랄만한 소식이 날라왔다. 바로 이사였다. 살고 있는 집 이사가 아닌 오픈한지 얼마안된 라니시아의 이사였다.

'무슨일이지?'

나와 아내는 아무말 없이 서로를 마주보았다.


바닷가 앞에 자리 잡은, 제주 고옥을 리모델링해서 만든 가게가 있었다. 오래 전부터 처남이 관심을 가지고 있던 건물이었다. 두 개의 건물이 있고 그 가운데 넓직한 데크가 깔려있는 멋진 곳이었다. 이곳이 드디어 매물로 나온 것이다. 세가 조금은 비쌌지만 처남이 계속해서 봐왔던 곳이었고 충분히 수익이 날 만한 곳이었다.


"매형, 누나 이사가시죠."


같이 저녁을 먹을 때 처남이 꺼낸 첫마디였다. 확신에 찬 목소리로. 한 곳은 고깃집하던 곳이니까 그대로 흑돼지집하면 되고, 옆 부대찌개 집은 소품샵으로 바꾸자고.

원래부터 팬션을 정리하고 고깃집을 하려고 했던 처남의 계획과 딱 맞는 곳이었다. 거기에 바로 옆에 라니시아가 들어올 수 있는 건물까지 있으니. 아내와 나도 처남의 의견에 찬성했다.

먼저 이사할 건물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부대찌개를 하던 곳이라 천장에는 연기를 빨아드릴 수 있는 덕트가 설치되어 있었고(그전에는 고깃집을 한것 같았다), 벽면에는 제주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특히 흑돼지가 많이 그려져 있었는데 소품샵과는 잘 맞지 않았다. 바닥도 시멘트로만 발라놓은 듯 군데군데 많이 깨져 있어 수리가 필요했다. 하지만 제주 고옥이라 조금만 꾸미면 제주스러운 소품샵으로 바꿀 수 있을 것 같았다.


내부에 필요없는 물건들을 다 빼고, 벽은 흑돼지 그림들을 지우기 위해 페인트 칠을 하고, 바닥은 깨져있는 부분에 시멘트로 매꾸는 작업을 했다. 두 번째하는 셀프 인테리어, 이번에는 그리 힘들지 않았다. 첫 가게 꾸밀 때 경험이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얼마지나지 않았기에 아직까지 몸에 남아있는 듯 했다.

깔끔하게 정리된 가게는 생각보다 넓어 보였고, 소품샵으로 안성맞춤이었다. 넓은 창문이 많아 밖에서도 안을 쉽게 구경할 수 있었고, 나무로 된 높은 천장은 가게 안을 더 분위기있게 만들어 주었다. 청소하는 동안에도

'어떻게 꾸밀까, 진열장을 어떻게 놓을까' 계속 고민이 되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바로 바다 앞에 있다는 것이었다. 바다를 좋아하는 우리 식구에게 바다를 보면서 일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몰랐다. 넓은 데크까지 있으니 날씨 좋은 날에는 바다를 보면서 차를 마실 수도 있고. 상상만해도 기분좋은 일이었다. 특히 시아가 데크에서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니 이사 잘 했다는 생각이 안 들수가 없었다. 역시 아이들은 뛰어다녀야해.


이제 짐을 옮길 시간이 왔다. 깨지는 물건들이 많아 조심조심 하나씩 뽁뽁이로 감싸 상자에 차곡차곡 쌓았다. 오픈한지 얼마 안되었는데 떠나려하니 그동안 꾸며왔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새벽에 물건 싣고 온 일, 무거운 진열장을 좁은 라운드 계단으로 2층으로 옮긴 일, 건물 밖 큰 야자나무를 옮긴 일, 야외 데크 중간에 있던 나무 잘라낸 일 등. 전혀 생각지도 못 했던 일을 처남과 해냈던 추억이 얼마되지 않았는데.

하지만 더 나은 곳에서 새로운 시작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에 다시 한번 설레임과 희망을 느꼈다. 제주도에서 좀 더 제주스러운 가게에서 제주사람처럼 장사해 보고 싶었다.


모슬포


이사간 가게가 있는 동네 이름이다. 겨울철 방어로 유명한 곳. 매년 12월에 방어축제가 열리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다. 맛있는 방어도 먹고, 맨손 방어 잡이 이벤트도 즐기고. 이 방어 축제가 열리는 방어축제거리 안에 유일하게 소품샵이 생긴 거였다. 그것도 우리가. 메인거리에서 조금 안쪽으로 있긴했지만 걸어다니는 사람들이 많아 눈에 뜨이는데는 문제가 없었다.


진열장을 배치하고 소품들을 정리하고 조명들을 교체하니 이전 가게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 산방산 앞에 있던 첫번째 가게는 약간 세련된 분위기였는데 이곳은 정말 제주도에 온 기분이었다. 소품샵과는 너무 잘 어울렸다. 저녁에는 가게 안에서 뿜어져나오는 불빛으로 인해 저 멀리서도 가게가 잘 보였다. 그 때문인지 맛있게 저녁을 먹고

모슬포 거리를 산책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


"가게 너무 예뻐요. 나중에 제주도 또 오면 꼭 다시 올께요."


가게를 운영하면서 가장 힘이 되는 말이었다. 손님들이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우와~'하는 목소리가 아직도 들리는 듯하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 꾸몄기에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스스로 칭찬을 했다. 아내, 처남 모두 너무 고생했기에.


특히 첫 번째 가게에 오셨던 손님이 이사온 가게에 또 찾아주셨을 때는 그 어느 때보다 기분이 좋았다.

'잊지않고 찾아주시다니'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맙고 감사했다. 장사라는 것을 평생 처음해보는 우리에게 다시 찾아주는 손님들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선물이었다. 이런 손님들이 늘어갈수록 아내와 나는 더욱 힘을 내어 일할 수 있었다. 더 예쁜 소품들을 들여오고, 더 예쁘게 꾸미고, 더 친절해지려고 노력했다.


이사


'사는 곳을 다른데로 옮김'

사전적 의미는 단순한 이동으로만 나온다. 하지만 이사는 우리 모두에게 특별한 일이다. 열심히 돈을 모아 더 넓은 집으로 이사 할 때나 직장을 옮겨 어쩔 수 없이 집을 옮겨야 할 때, 월세가 너무 비싸 가게를 옮겨야 할 때 등 각자 개인적인 이유로 인해 이사를 하게 된다. 이 모든 이사가 평범할 수는 없다. 좋았던 안좋았던 모든 추억을 품고 떠나기 때문이다.


'새로운 곳으로 간다'라는 뜻이 이사에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새로운 곳. 낯선 곳 일수도 있고, 잘 아는 곳 일수도 있다. 하지만 또 다른 삶이 시작하는 그 곳으로의 이동. 설레임 반 두려움 반으로 이사한 라니시아. 앞으로 잘 헤쳐가리라 마음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