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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아파파 Jul 17. 2024

Epilogue

나에게 시운전이란

13년 동안 시운전 일을 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


바로 "정말 멋진 일이구나. 도전해 볼만한 일이구나."이다.


남들이 잘 가보지 못하는 나라에 가서,

아무것도 없는 사막 한가운데,

거대한 공장을 짓고,

그 공장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


미지의 세계로 뛰어드는 용기,

웅장한 공장이 지어지고 돌아갈 때까지 몇 년이나 되는 시간을 끝까지 버텨야 하는 끈기.

공장을 잘 돌아가게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열정이 필요한 일이다.


용기와 끈기, 열정.

모든 일에 필요한 항목들이다. 하지만 시운전 일에 대해 이 항목들은 좀 더 특별하게 다가온다. 프로젝트의 마무리를 책임지는 막중한 임무. 처음부터 끝까지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은 마지막까지 우리의 발목을 잡는다. 이러한 문제들도 끝까지 남아 해결해야 하는 상황.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항목들은 더욱더 시운전엔지니어에게 요구된다.


지금 이 시간에도 세계 곳곳에는 공장이 지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곳에 수많은 엔지니어들이 일하고 있다.  중 시운전 엔지니어는 소수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소수의 인원이 하는 일은 거대하다. 차가운 고철로 이루어진 공장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은 시운전 엔지니어만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운전 엔지니어의 손을 거쳐 생산된 제품은 우리 삶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들이다. 자동차에 들어가는 휘발유, 배달 음식이 담겨 있는 플라스틱 용기, 우리가 매일 신고 다니는 신발까지 우리의 일상생활에 필수품인 석유화학제품들은 마지막 시운전 엔지니어의 손을 거쳐야만 세상에 나올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공장은 끊임없이 지어질 것이다. 그리고 시운전 엔지니어도 계속해서 필요할 것이다. 현재 플랜트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기존 주를 이룬 석유화학플랜트에서 환경플랜트로 변화하고 있다. 휘발유와 경유를 대체하기 위한 원료인 수소를 만들어내는 플랜트, 쓰레기를 가지고 전기를 생산해 내는 플랜트, 식당에서 쓰고 남은 폐식용유를 가지고 휘발유를 만들어내는 플랜트 등 친환경 플랜트들이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플랜트도 마찬가지로 시운전은 필수이다. 새로운 공정과 새로운 제품들이지만 시운전 엔지니어가 하는 일은 변하지 않는다.


세상이 계속해서 변해가도 꼭 필요한 일은 그 변화 속에서도 생명을 잃지 않는다. 영국에서 일어난 산업혁명 이후 플랜트 산업은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발전해 왔고 점점 더 커져갔다. 이 현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이 발전에 현재 가장 이슈가 되고 있는 AI는 좀 더 편하게 공장을 운전할 수 있게 만들어 줄 것이다. 하지만 처음 돌리는 공장에서 AI가 아닌 시운전 엔지니어는 선택사항이 아닌 필수사항이 될 것이다. AI에 의존하는 것이 아닌 AI의 도움을 받아 좀 더 빨리, 좀 더 안전하게 공장에 생명을 불어넣을 것이다.


이제 대답을 해야 할 시간이 온 것 같다. 나에게 시운전이란 바로 나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고, 묵묵히 누군가에게 필요로 하는 일을 하는, 바로 나. 나와 너무 닮은 이 일이  나였다.


시운전, 나의 또 다른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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