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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아파파 Jul 03. 2024

화재사고 발생

수소 누설 (H2 Leak)

갑자기 운전실 안이 소란스러워졌다. 다급한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어디야? 빨리 확인해 봐!"
"여깁니다. 52번 유닛 반응기에서 불이 났습니다."

불이라니!
공장이 돌아가면서 처음으로 발생한 화재였다. 현장에 설치되어 있는 CCTV로 화재가 발생한 곳을 볼 수 있었다. 반응기에 연결되어 있는 배관에서 불이 보였다. 볼트와 너트로 연결되어 있는 부분에서 원료가 새어 나와 불이 붙은 것이었다. 이곳은 수소가 돌아다니는 곳이기 때문에 대기로 분출되자마자 불이 붙어버린 것이었다(고온, 고압의 수소는 대기로 나오자마자 불이 붙어버린다).

다른 물질이 세는 곳이었으면 현장에 있는 작업자들이 공구를 챙겨 조치를 취했을 것이다. 공장이 돌아갈 때 사용하는 공구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Nonspark tool이라고 볼트나 너트를 조일 때 망치나 다른 도구들을 내리쳐도 불꽃이 발생하지 않는 공구들이다. 일반 공구들은 작업 시 불꽃이 발생할 수 있어 돌아가는 공장에서는 위험해 사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곳은 수소가 세는 곳. 이 공구도 소용이 없었다. 어느 누구도 그곳에 가서는 안된다. 폭발의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방법은 공장을 멈추는 수밖에 없었다.

"천천히 원료 투입량 줄이고, 공장 멈출 준비 해!!!"
"탱크에 저장해 놓은 원료 후속 공정에 투입하고!!"
"탱크에 있는 양으로 후속 공정들이 얼마나 가동가능한지 확인하고, 최대한 가동률 낮춰서 운전해!"

전체 공정을 관리하는 운전원 리더의 목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 갑작스럽게 발생한 일에 대해 리더의 역할은 굉장히 크다. 운전원들의 당황해하는 모습을 추스르고 정확히 후속작업을 지시하는 모습. 한없이 온화한 사람이라 생각되었던 그가 카리스마 넘치는 사람으로 변했다.

현장에서는 안전관리자와 함께 운전원들이 주변의 소방시스템을 가동했다. 만약 불이 더 번지거나 폭발이 일어났을 때 주변의 기기들을 최소한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다. 화재지역 주변으로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처럼 물이 뿌려졌다.

다들 평소처럼 일하는 듯했지만 얼굴에 당황스러움과 두려움이 그대로 드러났다. 공장에 문제가 생겨 공장을 멈췄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었다.

다행히 불은 더 이상 번지지 않았고 가동률을 줄여나가니 불길의 크기도 점점 줄어들었다. 줄어드는 불길을 보며 모든 운전원들, 모든 관계자들의 표정이 조금씩 나아졌다. 이제 안전하게 공장을 멈추기만 하면 되었다.

공장이 멈추고 후속공정도 조치가 다 취해진 상황.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잠깐의 휴식을 취했다. 서로를 격려하며, 서로를 응원하며. 이제 화재발생 원인과 결과, 후속조치에 대해 확인해 보고 논의할 차례가 왔다.

화재발생원인은 볼트, 너트의 약간 풀림 현상이 발생한 것이었다. 공장이 돌아가면 주기적으로 모든 볼트와 너트가 채결되어 있는 곳을 다시 한번 조여준다. 그 이유는 열팽창 때문이다. 온도에 민감한 철들로 구성된 공장은 외부 온도와 운전되고 있는 온도 등의 영향으로 파이프가 늘었다 줄었다를 계속해서 반복한다. 그 현상으로 조였던 볼트와 너트도 조금씩 풀리는 곳이 생긴다. 계속해서 똑같은 온도로 운전이 되면 변하지 않겠지만 공장도 살아서 움직이는 사람과 똑같다. 매일, 매시간, 매초 살아움직인 다는 것은 모든 것이 계속해서 변한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계속해서 관찰하고 예방을 해야 한다.

공장도 마찬가지로 사고 발생을 예방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연결부위를 확인한다. 세는 곳은 없는지 볼트, 너트가 느슨하게 풀린 곳은 없는지. 느슨해진 곳은 다시 조여주고, 조였는데도 되지 않으면 교체도 진행해야 한다. 이 작업들이 완벽하게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이렇게 조금이라도 미진한 부분에서 바로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현장 상황은 다행히 불길이 다른 기계 쪽이 아닌 대기 중으로 발생해서 다른 곳의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불길이 나온 그 그분만 시커멓게 그을렸다. 천만다행이었다. 인명피해도 발생하지 않았고 다른 기계의 손상도 발생하지 않았으니. 현장 확인을 위해 나갔던 모든 사람들의 표정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걱정했던 모습은 사라지고.

이제 이런 사고가 발생하지 않게 어떻게 조치를 취할 것인지가 남았다. 다시 한번 전체 공장의 볼트, 너트 조임 상태를 확인했고, 수소가 이동하는 배관연결부위에는 수소가 누출되었을 때 화재가 발생하지 않도록 스팀링(Steam ring)을 설치했다. 스팀링은 손가락에 반지를 끼듯 배관과 배관이 연결되는 플랜지 부분에 구멍이 뚫린 얇은 배관을 빙 둘러 설치한 것이다. 이 링에 스팀을 연결해서 수소가 누출되었을 때 스팀을 분사해 화재발생을 막는 것이다. 다시 이런 사고가 발생하지 않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조치였다.

공장에서 화재발생은 굉장히 민감한 사항이다. 불이라는 것 자체가 공장의 폭발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소한 실수로 공장 전체가 파괴되고 사람들이 다치는 일은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된다. 그렇기에 주기적인 점검과 사후조치는 공장을 안전하게 오랫동안 운전하는데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이번 사고로 인해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100번을 잘해도 한 번의 실수가 모든 것을 빼앗아 갈 수 있다.

조용히 묵묵히 돌아가는 공장인 줄만 알았는데 나에게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주의를 주는 것 같았다.

정신 차리라고,
긴장 늦추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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