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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아파파 Jul 01. 2024

공장을 멈추다

Regular Shutdown

다시 현장으로 돌아왔다.

긴 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이곳은 변한 것이 없었다. 뜨거운 태양과 습한 바람, 백색소음처럼 들려오는 공장 돌아가는 소리가 나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운전실에 있는 운전원들도 모두 그대로였다. 왜 이렇게 오랜만에 왔냐며 반겨주는 친구들. 왜 이곳이 이렇게 편한지 그들이 일깨워준다.

이제 공장을 멈추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이 작업은 몇 달 전부터 계획하고 준비한 작업이었다. 언제 공장을 멈출 것인지부터 시작해서 언제 어떤 기계들을 확인할 것인지, 그 기계들을 확인하기 위한 업체들은 언제 들어올 수 있는지, 기계의 부품을 교체하기 위한 구매는 언제까지 완료해야 하는지 등. 하나부터 열까지 철저한 준비가 필요한 작업이다.

돌아가는 공장을 멈춘다는 것은 멈춘 기간 동안 생산되어 판매해야 할 만큼 손해를 본다는 이야기다. 그만큼 시간은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오랜 기간 준비를 하고 철저히 확인하는 것이다.


시간이 곧 돈이었다.

이 작업은 우리가 주도하는 것은 아니었다. 발주처에서 계획하고 발주처에서 확인, 점검, 보수하는 것이었다. 공식적으로 발주처에게 공장을 인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실질적으로 공장을 돌리는 주인은 발주처였다. 공장을 운전하는 운전원도, 공장을 운영하는 엔지니어, 매니저도 다 발주처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건설 후 남아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주 업무였다. 그들이 운전을 잘할 수 있게.

공장을 멈추기 위해서는 처음에 공장의 가동률을 낮춰야 한다. 100% 가동률로 운전되고 있는 공장을 최대한 낮출 수 있을 만큼 가동률을 낮춰야 한다. 대부분 공장들은 기계들이 무리가지 않는 최소 가동률이 정해져 있다. 예를 들어 60%가 최소 가동률이라 하면 60% 가까이 원료 투입량을 줄이게 된다. 가동률을 줄이는 이유는 공장 안에 남아 있는 원료들의 양을 최소로 만들기 위해서다. 공장을 멈추면 그 안에 있는 물질들을 다 제거해야 하는데 너무 많은 양이 남아있으면 공장이 멈추고 난 후 처리하는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최소 가동률까지 떨어지면 정상 공장 종료 매뉴얼(Normal Shutdown  Manual)에 나와있는 데로 천천히 하나씩 진행해 나간다. 열을 공급하는 히터를 멈추고, 돌아가는 펌프들을 멈추고, 각 구간별 밸브가 잠긴다. 그리고 구간별 남아 있는 물질들은 배출 시스템(Drain system)을 통해 제거한다. 그러면 공장은 그동안 미뤄왔던 겨울잠을 자기 시작한다.

이렇게 공장 안에 있던 물질들을 다 제거하고 나면 내부에 잔존해 있는 가스성분의 물질도 제거해야 한다. 배출 시스템을 통해 액체류의 물질을 제거했다면 이번엔 질소를 이용해 남아있는 가스를 제거한다. 처음 공장 돌리기 전 산소를 제거할 때도 이 방법을 사용했지만 공장이 꺼졌을 때도 마찬가지로 이 방법을 사용한다. 산소를 제거할 때는 질소를 밀어 넣어 대기 중으로 빼냈다면 가스를 제거할 때는 외부가 아닌 잔존 가스를 태워버리는 시스템으로 보낸다.

하지만 이렇게 진행해도 남아있는 물질을 100% 제거할 수가 없다. 그래서 사람이 들어가야 할 곳은 스팀으로 잔존물질을 제거한다. 스팀의 열을 이용해 기기 내부표면에 붙어있는 나머지 물질까지 모두 날려버리는 것이다. 이때는 많은 양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대기 중으로 모두 날려 보낸다. 밖으로 내보내다 보니 가끔 주유소에서 맡아본 기름냄새가 공장 주변을 뒤덮는다. 이 냄새를 오래 맡고 있으면 정말 머리가 띵 할 정도였다.

드디어 내부에 남아있는 물질들을 제거했다. 이제 남은 건 안전팀의 검사. 갑자기 외부 공기가 내부로 들어가 남아있는 물질과 부딪혀 폭발이나 화재가 나지 않게 내부 발화물질이 다 제거되었는지 확인하는 작업이다. 사람의 생명과 기계의 보존에 관련된 문제이기에 꼼꼼한 점검이 필요했다. 열심히 제거한 덕분인지 점검 결과는 오케이를 받았다.

이제 각 기계들 내부로 들어가 아픈 데는 없는지 다친 데는 없는지 확인할 차례다. 이곳저곳 손전등을 들고 다니며 꼼꼼히 살펴보고, 큰 기계들은 내부에 비계를 설치해 손이 닿지 않는 곳까지 살펴보았다. 내부가 텅 비어있는 기계들도 있지만 여러 가지 배관들이 설치되어 있는 기계장치들도 있어 내부를 점검할 때는 주위를 잘 살피면서 돌아다녀야 했다. 여기저기 쾅쾅 헬멧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고 깜짝깜짝 놀라는 목소리도 들렸다.

점검이 끝나고 손봐야 할 곳은 수리를 시작하고 부품을 교체해야 할 곳은 새로운 부품을 가져와 교체하는 일이 계속되었다. 거의 한 달 정도 공장의 치료가 진행되었다. 거인의 몸속으로 들어가 아픈 곳을 치료하는 난쟁이 의사가 된 기분이었다. 생명을 불어넣는 시운전 엔지니어에서 아픈 곳을 치료해 주는 시운전 의사가 된 것이다.

돌아가는 공장을 지켜보며 아픈 곳을 찾아내고, 그 아픈 곳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치료하고, 다시 달릴 수 있게 만드는 공장의 의사이자 엔지니어. 다시 잘 돌아가는 공장을 바라보니 내 자신이 뿌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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