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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아파파 Jun 26. 2024

복귀 후 파견

기쁨 그리고 아픔

평화로운 날이 지속되었다.

매일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똑같은 차를 타고

똑같은 시간에 업무를 시작했다.


사무실에 들어가 컴퓨터를 켜고 밤새 온 메일을 확인한다. 특별한 메일을 없었다. 현장에 문제가 되었던 기계들에 대해 문의했던 답변들 뿐. 나의 눈을 사로잡을 만한 글은 보이지 않았다. 필요 없는 메일들을 지우고 나의 손을 태우고 다녔던 하얀 마우스에게 휴식시간을 준다.


여기저기 긁혀 있는 안전모를 착용하고 길을 나선다. 먼저 운전실에 들어가 태국 운전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한쪽 자리를 양보받는다. 모든 자리에 운전원들이 근무하고 있기에 나의 자리는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잠시 양해를 구하고 운전상태를 파악한다.


모니터에 여러 가지 색깔로 그어진 수많은 선들이 보인다. 이 선들이 밤새 공장이 잘 돌아갔는지, 어느 곳에서 문제가 발생했는지 알려준다. 평생 한 곳만 바라보며 사는 친구들도 있고 위, 아래를 주기적으로 왔다 갔다 하는 친구들도 있다. 평소 그들이 하던 행동과 다르면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문제가 생긴 곳을 발견하면 담당 운전원에게 물어보고 그와 관련된 다른 수치들을 확인한다. 대부분 안정적으로 돌아갈 수 있게 수치들을 입력해 놓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면 알람을 울려준다. 그 알람을 듣고 운전원들이 조치를 취한다. 조치를 취한 후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가면 그 상황은 기록으로만 남을 뿐이다.


이렇게 운전상태를 파악한 후 다시 안전모를 쓰고 현장으로 나간다. 파이프 안으로 물질들이 흘러가는 소리, 묵묵히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펌프가 돌아가는 소리 등이 나의 마음을 편하게 만든다. 매일 듣는 소리기에. 이 소리도 평소와 다르다면 공장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기에 다른 때보다 나의 귀는 쫑긋 세워져 있다.


운전실과 현장을 한 바퀴 돌고 다시 사무실로 들어온다. 이제 남아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나만의 시간이다. 문제점을 다시 한번 살펴보고, 지금까지 해결하기 위해 해 왔던 내용들을 살펴보고, 관련 업체들의 이메일과 문서를 살펴보고 해결방안을 고민한다. 도움이 필요하면 본사에 있는 전문가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발주처의 도움이 필요하면 직접 찾아가 의견을 설명하고 테스트할 날짜를 정한다.


이렇게 하루는 지겹지도 바쁘지도 않은 나날이 지속되었다.


어느 날 사업팀에서 공장이 다시 꺼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공장이 꺼지고 다시 돌리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몇 달 전 공장이 꺼진 것은 운전 실수로 발생한 사고였고, 이번에 공장을 끄는 것은 계획된 정기보수작업이었다. 갑자기 공장이 꺼졌을 때는 문제가 발생한 부분만 확인을 했지만 정기보수기간에는 전체를 다 확인하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까지 속속들이.


정기보수작업은 공장을 안정적으로 더 오래 운전하기 위한 예방접종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우리도 아프지는 않지만 추후 발생할 수 있는 질병에 대비해 주사를 맞거나 약을 먹는 것과 같은 것이다. 중간중간 잘 확인해 주어야 갑자기 공장이 꺼지는 상황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략적인 정기보수기간이 정해지고 나에게도 특별한 일이 발생했다. 바로 한국으로 복귀하라는 내용이었다. 복귀하라고? 바로 아내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갓난아이 딸을 혼자 돌보며 나만 돌아오길 기다리는 아내에게 이 소식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큰 선물이었다.


머릿속에는 한국에 갈 생각밖에 없었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딸의 탄생만 지켜보고 다시 현장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시간. 그 시간 이후 이제는 잠깐 돌아가는 것이 아닌 아내와 딸 옆에 계속 있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동안 고생한 아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제 그 짐을 덜어줄 수 있게 되었다.


한국으로 복귀 후 2주간의 휴가를 받고 육아에 전념했다. 회사일은 잠시 미뤄둔 채. 평온했던 현장과는 달리 집안은 1분 1초도 쉴 수 없는 전쟁터로 바뀌어 있었다. 아내의 식사를 준비하고, 집안청소를 하고, 딸의 기저귀를 갈고, 씻기고, 재우고. 하던 일이 180도 바뀌어 버렸다.


휴가가 끝나고 다시 본래의 직업으로 돌아간 시간. 2년 만에 돌아왔지만 사무실은 낯설지 않았다. 너무 반가웠고 기뻤다. 이제 이곳에 있으면서 가족을 돌볼 수 있기에. 하지만 이 시간도 얼마가지 못했다.


팀장님께서 부르셨다.

"장대리 고생 많았어. 그런데 한두 달 있다가 다시 현장 나가야 할 것 같아. 정기보수하는데 장대리가 꼭 있어줘야겠어."


이제 막 복귀한 사람한테 다시 현장을 나가라니... 복귀한 기쁨이 한순간에 악몽으로 변해버렸다.


'아내한테 어떻게 말하지. 엄청 실망할 텐데.'


아내에게 말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이야기해야 하나. 며칠 동안은 말하지 못했다. 하루라도 실망하는 시간을 줄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도 계속해서 숨길 수가 없었다. 행복한 시간이 크면 클수록 실망감도 더 커지는 법. 아내에게 이야기를 꺼냈고 결국 아내의 눈물을 보게 되었다. 잠깐의 만남과 이별.


2달을 채우지 못하고 혼자 캐리어를 끌고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갓난아이를 두고, 힘들어하는 아내를 두고 또 떠나야 하는 이 시간. 언제 이 시간이 끝날까. 한참을 멍하니 서서 아내와 딸이 있는 집을 바라본다. 이 말과 함께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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