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 맞아요^^." 웃으면서 이야기한다. 하지만 마스크 때문에 웃는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낮에는 소품샵 사장님, 저녁에는 제주 흑돼지집 직원. 소품샵을 오픈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옆 흑돼지집도 문을 열었다. 흑돼지집은 처남이 하고 싶어 했던 가게였다. 처음에 하려고 했던 흑돼지집에 문제가 생겨 다른 종류의 음식점을 하려고도 했지만 결국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역시 처음 마음먹은 것이 답인 것 같다. 가게 준비 할 때는 많이 도와주지 못했지만 오픈 후에는 많은 시간을 함께 했다. 다행인 것은 소품샵 운영이 어느 정도 숙달될 무렵 가게가 오픈해서 아내에게 맡기고 마음 편히 넘어갈 수 있었다.
이렇게 생각지도 못한 나의 투잡 생활이 시작되었다. 가게를 준비할 때부터 예상하고 있었던 일이었지만 막상 눈앞에 다가오니 긴장되고 떨렸다. 어느 정도 익숙해진 소품샵은 괜찮았지만 흑돼지 집은 아니었다. 전혀 다른 일이었기에.
아침에 아내와 함께 출근해 소품샵 문을 열고, 커피 머신 전원을 켜면 하루 일과가 시작됐다. 손님들이 같이 사진 찍을 수 있게 인형과 의자를 가게 앞에 옮겨놓고, 빠진 물품을 챙기고, 먼지를 털고, 예쁜 가게 사진을 인스타에 올리면 첫 직장에서의 오전 일과가 마무리된다. 짧고 굵게.
"여보, 나 넘어갈게."
두 번째 직장에 출근. 처남과 주방장에게 인사를 하고 홀 세팅을 시작한다. 커튼을 치고, 바닥을 쓸고 닦고, 셀프바 반찬 정리하고, 상추 씻고. 소품샵에서 하던 일과는 180도 다른 일이었다.
준비하는 중간에 가장 반가운 소리가 들렸다. 아내가 커피를 들고 오는 소리. 모닝커피는 하루를 시작하는데 빠질 수 없는 생명수와 같았다.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시면 온몸의 세포들이 즐겁게 뛰어다니는 느낌이 나의 감각을 자극했다. 더 힘내서 일하라고.
준비작업을 마치면 휴식시간이다. 마시고 있던 커피를 가지고 다시 소품샵으로 갔다. 카운터 옆에 커피를 올려놓고 아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손님이 오면 아내와 같이 "어서 오세요." 인사를 하고, 아내가 계산을 하면 봉지에 소품을 담았다. 손님이 문을 열고 나갈 때면 어김없이 "안녕히 가세요" 입에서 자동으로 나왔다. 업체에서 새로운 소품이 들어오면 검수를 하고 진열을 하고. 평범한 소품샵 일로 휴식시간이 채워졌다.
"여보, 시아 데리고 올게."
오후 일과는 시아를 데리러 가는 일로 시작했다. 가게에서 20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는 유치원 가는 길은 잠깐이지만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다주었다. 1년 내내 피어있는 유채꽃을 바라보며 (나도 처음엔 봄에만 피는 줄 알았다) 창문을 열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가는 길은 빡빡한 하루 일과 중 유일한 사색의 시간이었다. '어떻게 내가 여기 있는 거지? 지금 내가 잘하고 있는 거지?'
시아를 태우고 가게에 오면 본격적인 저녁 일과가 시작됐다. 앞치마를 두르고, 셀프바에 집게를 세팅하고, 지저분한 곳은 없는지 다시 한번 체크했다.
가게 오픈.
손님을 기다리는 시간. 드디어 첫 손님이 왔다. 역시나 첫 손님은 항상 반갑다. 첫 손님이 있어야 두 번째, 세 번째 손님도 있는 법이니까.
밑반찬을 세팅하고, 초벌 된 고기가 나오면 집게와 가위를 들고 손님 테이블로 간다. 최대한 예쁘게, 맛있게 고기를 굽기 위해 나의 손은 분주해진다. 다 올라간 고기를 보고 감탄해하는 손님, 고기가 구워지는지 마는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이야기하는 손님, 고기 굽는 나의 손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손님. 정말 각양각색의 손님들을 보면서 '너무 좁은 곳에서 살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무실에 가면 항상 똑같은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들과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하고, 같이 일하고. 하루 이틀 일주일이 지나도 바뀌지 않는 사람들. 이것이 하루일과였는데. 여기서는 매일매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다.
'오늘은 어떤 손님들이 오실까?'
항상 손님들을 맞이하기 전 떠오르는 말. 친절한 손님들을 만나면 기분 좋게 일이 시작되고, 아무 말 없는 손님들이 오면 나도 덩달아 조용해진다. 가끔 진상 손님들도 오지만 이 손님들도 고객인걸 어찌할 수가 없었다. 나태해지지 말고 더 잘하라는 일종의 채찍질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깜깜한 밤이 되면서 하나 둘 빈 그릇이 놓여있는 테이블이 늘어났다. 이리저리 쫓아다니느라 치우지 못한 테이블이 일과의 마무리가 되어간다는 신호를 보냈다. 마지막 손님이 나가고 커튼을 치면 우리만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설거지. 하루 중 가장 힘든 일이었다. 누군가 남기고 간 흔적을 없애는 일. 하루 일과 중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며 안 좋았던 기억을 흐르는 물과 함께 흘려보냈다.
소품샵과 흑돼지집.
전혀 다른 두 가지가 내 몸에 섞여 있는 느낌이었다. 아기자기한 귀여움과 가위질하는 터프함이 낮과 밤이 바뀔 때마다 변하는 듯한 생활이 계속되었다. 새로운 일을 해본다는 것은 인생을 살면서 값으로 매길 수 없는 가치를 가진다. 지금도 그때를 돌이켜보면 나 자신이 뿌듯하다.
하지만 하나를 가지면 다른 하나는 버려야 하는 법. 시아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없어져 버렸다. 함께 저녁을 먹고, 함께 산책을 하고, 같이 잠을 자는 평범한 일상이 사라져 버렸다. 일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면 시아가 깰까 봐 숨죽여 집에 들어가는 일이 반복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