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1박 2일로 놀러가고 싶어."
가게를 운영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갈 때 쯤, 유치원 생활이 익숙해 질 때 쯤. 시아가 나에게 한 말이었다.
소품샵과 흑돼지집.
쉼이 없는 삶이 지속되었다. 낮엔 관광객들에게 예쁜 제주 소품을 팔고, 저녁엔 여행으로 배고픈 손님들에게 맛있는 흑돼지를 구워주고, 주말엔 더 많은 손님들을 찾아오고. 하루하루 시아와 함께 할 시간들이 줄어들고 있었다.
제주도에 내려오기 전에는 매일 저녁을 같이 먹고, 같이 책을 읽고, 같이 잠을 자던 하루 일과와 주말이면 놀러 다니기 바빴던 우리 가족. 하지만 가게를 시작한 후에는 같이 밥 먹는 일도 거의 없고, 주말도 낮에 잠깐 놀러가는 일이 전부였다.
유치원 끝나고 시아를 가게에 데리고 오면 아내가 제일 먼저 시아를 맞이했다. 유치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하는 중에 나는 흑돼지 집으로 넘어갔다. 손님이 없으면 시아와 가게 앞을 산책하기도 하고, 줄넘기도 하고, 자전거를 타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도 잠깐. 자꾸만 가게가 신경쓰여 오로지 시아에게 집중하지 못했다.
손님이 오면 재빠르게 가게로 가기 바빴고, 시아에게 '엄마한테 가있어.'이 말 밖에 할 말이 없었다. 가게에 혼자 앉아있는 모습, 혼자서 핸드폰 보고 있는 모습, 혼자서 밥 먹는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이 찢어졌다.
'이럴려고 내려온게 아닌데.'
"아빠, 오늘 일찍가자."
"시아야. 아빠 일해야지. 그래야 시아 맛있는 거 사주지."
"싫어. 그냥 가자."
"그럼 우리 다시 서울갈까? 서울가서 아빠 다시 회사가면 해외 나가야 하는데 괜찮아?"
"아니. 그건 싫어."
"그래도 우리 제주도 내려와서 매일 같이 있잖아. 그치?"
"응."
"아빠도 시아랑 맨날 같이 놀고 싶어. 앞으로 아르바이트 생도 뽑고 그러면 아빠 쉴 수 있으니까 그때까지 조금만 기다려줘."
시아와 자주하던 이야기였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조금만 기다려줘." 밖에 없었다. 해외에 나가 떨어져 있는 것과 이렇게 매일매일 같이는 있지만 함께 할 수 없는 것. 어떤 것이 맞는지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시아는 밝은 표정을 잃지 않았다. 가게 일을 도와주려고 했고, 오히려 엄마, 아빠에게 괜찮다고까지 말했다. 기특한 우리 딸. 이 시간동안 시아가 부쩍 더 커버린것 같았다. 엄마, 아빠, 삼촌 눈치보느라 더 성숙해진 것 같았다. 또래 친구들보다 말투나 행동이 유치원생같지 않았으니.
소품샵에 손님이 많으면 고깃집에 와 있고, 고깃집이 바쁘면 소품샵에 가 있고. 얼마나 힘들었을까. '내가 시아였으면 엄마, 아빠한테 짜증도 많이 냈을텐데. 어떻게 저렇게 의젓하지?'하루에도 수십번 드는 생각이었다.
지금까지도 요식업을 하시는 부모님들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아이들 돌보는 것만으로도 힘든데 장사까지, 그것도 손님들의 식사를 준비한다는 것. 이 일을 해보기 전까지만해도 아무생각없이 식당에 가서 먹기만 했었는데 이제는 완전히 생각이 달라졌다. 특히 식당에 갔는데 아이들이 저 끝에 혼자 앉아있는 모습을 보면 더 마음이 짠하다.
경험은 정말 무섭고 고마운 존재인 것 같다. 이제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들을 일깨워주고, 평생 잊지 못하게 만드니. 육아휴직을 하지 않고, 제주도에서 가게를 운영해보지 않았다면 절대로 느끼지 못 할 감정들. 이 모든 경험과 감정들이 나를 한층 더 자라게 만들었다.
소품샵 문 닫을 시간. 시아는 아내와 함께 집으로 향했다. 어둑어둑해진 하늘과 함께. 엄마와 손 붙잡고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며 한없이 생각했다.
'조금만 기다려줘. 돈 많이 벌어서 시아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 많이 만들께.'
마지막 손님이 나가고 가게 정리가 시작되면 모두들 지치고 배가 고팠다. 가게 시작하기 전 점심 겸 저녁을 먹으니 배고플 수 밖에. 정리가 끝나면 늦은 저녁을 먹었다. 집에 가서 먹을 때도 있고, 문 연 다른 가게에 가서 먹을 때도 있고. 하지만 이 시간은 시아가 잠자고 있는 시간.
'오늘도 시아에게 책을 못 읽어주는구나. '
소주 한잔으로 하루를 마무리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