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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아파파 Apr 26. 2023

오뚝이의 소소한 행복

02. 미워도 다시 한번

정말 답답한 하루.

아무리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봐도 답이 안 나오고, 시간은 자꾸만 흘러가고, 점점 압박의 시간이 다가온다. 왜 내 머릿속에는 엉켜져 있는 실타래만 가득한 것일까. 스스로 자책도 해보지만 결과는 똑같다. 노답이다.


모니터와의 눈싸움에 지쳐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 밖을 본다. 저 멀리 조그맣게 보이는 사람들은 어디를 저리 바삐 움직이는 걸까. 저 차는 왜 반대로 가지? 오늘은 산이 잘 안 보이네. 뿌연 걸 보니 미세먼지가 많구먼.

이런저런 잡생각이 엉켜있던 실타래를 조금씩 풀기 시작한다. 얼마나 있어야 다 풀린 실뭉치를 볼 수 있을까.

오늘은 힘들 것 같다.


다시 모니터와 인사를 한다. 어쩔 수 없는 내 프니까. 눈이 엄청 크고 각진 얼굴을 가진, 나처럼 까만 피부를 가진 내 친구. 어제 못다 한 일을 다시 친구 얼굴에 펼쳐본다. '오늘은 답이 나오겠지.' 어제와는 다른 모습이 보인다. 다 풀려있는 실뭉치를 한 줄 한 줄 막대기에 잘 말아 올리는 듯 한, 묘한 기분이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손이 바쁘게 움직인다. 머릿속에서 이해되는 내용이 손을 따라 자연스레 노트에 적힌다. 갑자기 무슨 일이지. 잠깐 나를 돌아본다. 어제까지 전혀 이해되지 않고 풀리지 않던 문제였는데. 다시는 보기 싫었던 깜장 글씨들이 왜 이리 이뻐 보이는지. 뽀얀 피부의 노트에는 금세 많은 글자의 타투로 가득 찼다. 포인트로 빨간색과 파란색도 눈에 띈다.


상무님이 나를 부른다. 지시한 것이 잘 되고 있는지. 마침 그 일이 마무리되어가고 있는 순간. 짜릿한 이 기분. 상사의 부름이 긴장이 아니라 환호로 다가온다. 자신감 넘치는 나의 목소리. 상무님도 눈치채셨을까? 수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목소리가 노랫소리처럼 들린다.


미워도 다시 한번.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었다. 감정이 없는 사물에도 우리가 감정을 불어넣어 줄 수 있기에.  그 감정으로 인해 다시 찾게 되는 일. 생계를 위해 꼭 해결해야 할 일이지만 다르게 생각해 보면 그 일과 밀당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보고 싶지 않아도 봐야 하고, 볼수록 점점 닮아가는. 일이어서가 아니라 일이기 때문에, 떼어내려고 해도 떼어 낼 수 없는 관계. 다시 보면 기분 좋은 일이 생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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