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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아파파 May 03. 2023

오뚝이의 소소한 행복

03. 친구가 있기에

'술 한잔 하자'

이 날은 야근이 없는 날이다. 나만의 저녁시간을 가질 수 있는 날.


아빠들은 대부분 투잡러다. 회사가 끝나고 나면 다시 가정이라는 두 번째 회사로 출근한다. 사장님인 아내에게 출근 도장을 찍고, 임원인 딸에게 출근 인사를 한다. 씻고 나와서 다 같이 임원단 회의가 식탁에서 진행된다. 사장님이 직접해 주신 맛있는 음식과 함께.

아침과 낮에 있었던 일을 서로 공유한다. 각자의 첫 번째 직장에서 있었던 일을. 아내는 집에서 일어난 일을, 딸은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그리고 나는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회사 근처에 친한 친구 회사가 있다. 언제든지 걸어서도 볼 수 있는 거리지만 만남은 그리 쉽지 않다. 각자의 일로 인해.

하지만 누가 먼저 할 것 없이 먼저 만나자고 하면 바로 날짜가 정해진다. 기다렸다는 듯이.


어렸을 때는 동네 친구들이 많았다. 언제든지 부르면 잠깐이라도 볼 수 있는 친구들. 하지만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가면서 동네 친구들은 하나 둘 떠나갔고, 나 또한 살던 동네를 떠났다. 낯선 곳에서의 삶은 행복한 기대감과 새로운 것을 알게 되는 즐거움을 가져다주었지만, 항상 마음 한구석이 뻥 뚫려있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었다.


친구와의 술 한잔.

뻥 뚫려있던 마음을 채우는 시간.

또 다른 회사로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기쁨. 술자리가 끝난 후 다시 돌아가야 하지만 그래도 기분 좋은 시간이다.

각자 회사 이야기, 집안 이야기, 옛날의 추억 이야기 등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 간다. 만날 때마다 반복되는 이야기도 많다. 하지만 지루하지 않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비하면 술자리에서의 사소한 반복은 음식의 조미료와 같다. 안 하면 섭섭하고 하면 맛깔스럽게 바꿔주니까.


하루종일 떠들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어김없이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은 다가온다. 바지 주머니에 있는 핸드폰에 진동이 온다. 딸의 음성 메시지.

"빨리 와라. 혼자 맛있는 먹냐."

귀여운 목소리가 나를 집으로 이끈다.


친구와의 술자리는 이렇게 마무리된다.

다음을 기약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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