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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아파파 Sep 15. 2023

현장 전문가들을 모시다

또 하나의 중요한 임무

현장 파악을 모두 마치고 현장 생활에 익숙해질 무렵. 이제는 시운전 작업을 위한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나와 동료들은 발주처에게 제출할 자료들을 계속해서 만들어 냈다. 자세한 스케줄을 작성하고, 시운전 작업에 대한 절차서를 제출하고, 발주처의 코멘트를 받아 수정작업을 계속해서 해 나갔다. 이렇게 모든 계획들을 세우고 나면 실질적으로 현장에서 작업을 진행해 줄 현장 전문가들을 모셔와야 했다.


현장 전문가라 하면 시운전 엔지니어가 발주처와 협의 끝에 확정된 작업을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진행해 나가는 사람을 말한다. 이 분들은 대부분 국내 정유공장이나 화학공장에서 일하셨던 분으로 공장작업을 누구보다 잘 아시는 분들이다. 현장 전문가분들이 안 계시면 현장의 모든 작업들을 엔지니어들이 일일이 확인하고 진행해야 하는데 작업을 어떻게 해야 하는 지도 잘 모르는 상황에서 현장 작업자에게 지시를 내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이분들의 도움이 꼭 필요하다.


그럼 어떤 분들을 모셔야 할까? 먼저 공장 운전에 관련된 분들을 모신다. 운전에 관련된 분들 중에는 공장제어실에서 실질적인 조작을 하는 운전원과 현장에서 공장제어 운전원의 무전연락을 받아 실제 밸브나 버튼을 조작하는 현장 운전원이 있다.


공장제어 운전원


공정의 흐름을 파악하고 각 흐름에 해당하는 온도, 압력 등 조건들이 흔들리지 않게 조작하는 사람이다. 이 사람들은 Pre-commissioning 기간에는 현장 운전원들과 똑같이 일을 하지만 Commissioning 단계부터는 공장제어실에서 현장 운전원들에게 지시를 내린다. 그렇기 때문에 현장을 뛰어보지 않고서는 공장제어 운전원이 될 수 없다. Commissioning 단계부터는 공장제어실에서 조작해야 하는 시운전 업무를 맡아서 진행하고 Start up 때는 공장이 안정적으로 돌아갈 수 있게 만드는 작업도 진행한다.


현장 운전원


Pre-commissioning 때부터 현장에 상주하여 모든 시운전 작업을 진행한다. Commissioning 때부터는 공장제어 운전원의 지시에 따라 현장 작업을 진행하기도 하지만 그 외에 현장에 위험 요소는 없는지, 어디 누수되는 곳은 없는지, 기계가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는지, 이상한 소음이 발생하는 곳은 없는지 현장 전체를 돌아다니며 확인하는 작업 또한 현장 운전원의 중요한 임무 중 하나다. 그렇기에 현장은 가장 힘들면서도 가장 많이 배울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렇게 운전 관련된 전문가들의 구성이 끝나면 유지/보수를 할 수 있는 전문가들을 모셔와야 한다.


기계 전문가


기계 전문가는 공장 운전 중 가장 중요한 기계 제품인 컴프레서, 펌프 등 회전기기를 관리, 테스트, 점검 그리고 수리까지 할 수 있는 분을 말한다. 이 분들은 현장에서 회전기기가 잘 설치되어 있는지부터 확인을 하고, 잘 설치되어 있는 기기가 손상되지 않도록 중간중간 확인까지 한다(예를 들어 펌프 같은 경우 주기적으로 회전부품을 손으로 돌려보면서 고착되지 않도록 확인함). 그리고 Pre-commissioning 때는 회전기기에 들어가는 윤활유 시스템 클리닝을 진행하고 Commissioning 때에는 기기가 유체와 함께 정상적으로 잘 돌아가는지 확인하고, Start up때는 문제없이 잘 돌아가고 있는지, 열이 나지는 않은지, 진동이 심하지는 않는지 주기적으로 현장에서 확인한다.


마지막으로 문제가 생겼을 경우에는 직접 기기를 분해해 고치기도 하고 현장에서 수리가 어려울 경우에는 외부 업체에 기기를 보내고 진행 사항을 확인하는 업무까지 진행한다.


배관 전문가


배관 전문가는 시운전 업무에 사용되는 임시 자재들을 관리/제작하거나 현장 운전원들이 하기 힘든 일들을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Pre-commissioning 기간에는 클리닝을 위한 임시 배관이나 밸브, 철판 등을 각 사이즈에 맞게 제작하고, Commissioning 단계부터는 밸브가 고장나면 수리를 해주고, 임시 배관연결이 필요하면 제작 및 설치해 준다. 그리고 중장비(크레인, 지게차, 트럭 등)부터 시운전 소모품 자재들까지 모두 관리하는 업무까지 진행하기 때문에 배관 전문가가 있는 작업장은 시운전 보물창고나 마찬가지다.


계기 전문가


공장이 자동적으로 돌아갈 수 있게 설계되어 있는 로직을 확인, 설치된 계기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 확인, 문제가 생기면 수리까지 할 수 있는 분을 말한다. 좀 더 설명하자면 공장 자동화를 위해 공장제어실에 연결되어 있는 계기들이 공장제어 운전원들의 조작대로 잘 움직이는지 확인하고, 공장의 운전 조건들이 변경되었을 때 정상 조건으로 바꾸기 위해 밸브의 조작이 자동으로 잘 작동하는지 확인한다. 그리고 운전에 문제가 생겼을 때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한 로직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도 확인한다.


이렇게 모든 현장 전문가들을 현장에 모시고 나면 시운전 팀은 다른 그 어떤 팀 보다도 큰 조직을 가지게 된다(공사 조직이 제일 크지만). 시운전 조직이 점점 커져간다는 것은 그만큼 공사 작업이 많이 진행되었다는 의미이고 시운전 일이 많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이 많아지는 만큼 시운전 엔지니어도 더 바빠질 텐데 여기서 가장 큰 산이 버티고 있다. 바로 이 현장 전문가들을 관리하는 일이다.

또 하나의 중요한 임무


현장 전문가들은 대부분 연세가 많으신 분들이 대부분이다. 50대가 대부분이고 60대, 70대 분들도 계셨다. 그리고 한두 분이 아닌 몇 십 분씩 계시니 이분들의 요구사항을 들어주려면 하루가 모자랐다. 이 프로젝트에서 내가 관리했던 현장 전문가분들만 40분이 넘는 것 같다(중간에 왔다 가셨던 분들까지 합쳐서). 아버지 또래보다도 연세가 많으신 분들을 관리해야 하니 다른 팀에서도 '고생이 많아.'하시는 분들도 많았다. 아마 현장에서 시운전 일 중 가장 힘든 일이 아닐까.


하지만 힘든 일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들처럼 친근하게 다가가면 그 누구보다도 더 베풀어 주시는 그런 분들이었다. 특히 휴가만 다녀오시면 맛있는 음식들이 쏟아진다. 특히 바닷가 근처에 사시는 분들이 많아 홍어, 과메기, 문어 등 한국에서는 거의 사 먹지도 않는 음식들을 실컷 먹었다. 홍어나 과메기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음식이었는데 현장에서 먹으면 왜 그렇게 맛있는지. 아마 힘든 해외 현장에서 맛보는 구수한 한국 음식이라 그런 것 같았다.


시운전 엔지니어는 일도 잘해야 하지만 어르신들도 잘 보필해야 한다. 지금까지도 나보다 어린 친구들 보다는 아버지 또래의 사람들과 더 많이 일을 한 것 같다. 어떻게 보면 군대의 장교와 부사관 같은 느낌이랄까. 현장 전문가들과의 관계가 프로젝트의 마지막을 결정지을 수도 있기에 이 분들은 아주 중요하다.


과연 이 많은 분들을 잘 관리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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