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으로 시운전 업무가 바빠지기 전까지 시운전 엔지니어들은 공정에 대해 계속해서 공부를 한다. 본사에서 System definition, Marked up P&ID 작업을 하며 P&ID에 익숙해지고, 공정팀에서 작성한 운전매뉴얼을 통해 공정의 각 기계들의 기능과 공장을 어떻게 돌려야 할 지에 대해서도 숙지한다. 하지만 이론적으로만 공부하면 머릿속에 잘 남아 있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현장에 나오면 PFD, Plot Plan, P&ID를 들고 현장에 어떻게 설치되어 있는지 확인하게 된다.
나도 현장 파견 후 일이 어느 정도 익숙해졌을 무렵, 현장을 돌아보며 매일매일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제일 먼저 Plot Plan, PFD 등을 뽑아 나만의 책을 만들었다. 이렇게 만든 책에 내가 공부한 내용을 적어놓고 현장에 나갈 때마다 들고 다니면서 현장을 확인을 했다. Plot plan에 나와있는 각각의 기계들이 어느 위치에 설치되어 있는지 확인하고 PFD를 보면서 유체의 흐름이 어떤 기기를 거쳐 어떤 기기로 들어가는지 흐름을 파악했다. 이렇게 돌아다니면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른다.
다음으로 기계의 위치와 흐름이 어느 정도 파악이 되면 P&ID를 들고 직접 배관을 따라녔다.P&ID에 맞게 배관이 기계에 잘 연결되어 있는지, 설치되지 않은 계기는 어떤 것이 있는지 등을 확인하고 배관 사이즈에 따라 크기가 얼마나 되는지 감도 잡아갔다. P&ID에는 그냥 한 줄로 그려져 있는 배관이 현장에서는 다양한 사이즈로 설치되어 있어 실감 나게 현장을 공부할 수 있었다.
이렇게 어느 정도 공부가 완성되어 갈 무렵, 메니져님께서 지금까지 공부한 내용을 설명해 보라고 하셨다. 현장 업무 시작 전 같이 현장을 돌아다니며 지금까지 공부해 왔던 내용을 설명하였고, 그에 대해 메니져님께서 다양한 질문을 주셨다. 처음에는 쉬운 질문부터 해 주셔서 대답을 잘할 수 있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어려운 질문을 하셨다. 대답을 못하는 횟수가 늘어났고 끝나고 공부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런데 이렇게 공부를 한 결과가 나중에 공장을 운전할 때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다.
메니져님과의 1:1 과외가 끝나고 현장 직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현장 설명회를 진행하게 되었다. 원래는 계획에 없던 일이었지만 메니져님께서는 시운전 팀만 알기에는 너무 아까우셨는지 현장에 계신 모든 분들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진행하자고 제안하셨다. 처음에는 바로 대답을 하지 못했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현장에 계신 분들께 시운전 팀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왜냐하면 시운전 업무가 대부분 프로젝트 후반부에 진행되기 때문에 본격적인 시운전 업무가 진행될 때는 많은 현장 분들이 복귀하고 없다. 그래서 시운전 업무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전인 지금이 최고의 시간이었다.
먼저 전체 메일을 보내 시운전 팀에서 진행하는 현장 설명회를 알렸다. 내용은 현장을 돌아다니며 각 기계들의 역할과 유체의 흐름, 생산품의 종류 그리고 시운전이 하는 일을 설명하는 것이었다. 바쁜 업무 중에 많은 직원분들이 참석하실까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셨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설명하는 일은 역시나 떨렸다. 하지만 떨리는 모습을 감추고 큰 목소리로 우렁차게 설명을 진행해 나갔다. 장소가 현장이다 보니 목소리를 크게 내지 않으면 조금만 떨어져 있어도 들리지 않았다. 중간중간 기계 가까이 가기도 하고, 계단을 올라 2층, 3층에도 올라가고, 아침부터 땀나는 일이었지만 그 누구 하나 힘들다는 소리를 하지 않았다.
다같이 성공으로 가는 길
내가 맡은 공정을 한 바퀴 다 돌고 나서야 설명회가 끝났다. 중간에도 질문을 받았지만 끝나고도 몇 가지의 질문을 받았다. 헉헉 거리며 질문을 하는 직원들의 모습을 보며 '정말 하길 잘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만 알고 있는 것보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나눠주는 것. 이것이 프로젝트를 성공으로 이끌 수 있는 힘이 아닐까. 마지막 인사를 할 때 박수소리가 내 귀에 들렸다. 뿌듯한 이 느낌. 앞으로 내가 이 프로젝트에서 어떻게 일을 해야 할지 방향을 잡을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