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관 클리닝이 한창일 때, 또 다른 일을 준비하고 있었다. 바로 회전기기의 윤활유를 공급해 주는 부분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것이었다. 이 부분은 특히 더 깨끗이 해야 하는데 그 이유는 윤활유 안에 불순물이 포함되어 있으면 회전기기 내부로 들어가 기계를 고장내기 때문이다. 계속 돌고 있는 부분에 조금한 돌이 들어가면 어떻게 되겠는가. 기계 고장은 뻔한 결과일 것이다.
모든 회전기기에는 돌아갈 때 많은 열과 마찰이 발생한다. 이 부분을 열이 안 나고 부드럽게 돌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 바로 윤활유(Lube oil)이다. 이 윤활유를 공급하고 다시 받아주는 역할을 하는 곳을 깨끗이 청소하는 작업을 Lube oil flushing이라고 한다. 쉽게 말해 윤활유 시스템 청소다.
특히 대형 회전기기는 따로 윤활유 시스템이 있다. 윤활유가 들어가는 곳도 많고 양도 많기 때문에 독자적인 시스템을 구성하는 것이다.
Lube oil flushing 진행절차
가장 먼저 한 일은 발주처에게 승인받은 절차서를 보고 회전기기와 연결된 윤활유 배관을 분리하는 것이었다. 이 때 조심해야 할 점은 남아있는 윤활유를 바닥에 흐르지 않게 받아내며 배관을 분리해야 한다는 점이다. 기계를 제작한 업체에서 테스트를 하고 왔기 때문에 안에 윤활유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분리된 배관을 호스로 연결하여 윤활유가 전체적으로 순환될 수 있게 만드는 것이었다. 윤활유가 기계로 들어가는 부분과 기계에서 나오는 부분의 배관을 분리해 기계가 있던 부분을 호스로 연결하는 것이다. 그리고 연결되는 부분에 촘촘한 거름망을 설치했다. 바로 이 부분에서 배관과 윤활유 시스템 내부에 있는 불순물을 걸러내는 것이다.
그리고 윤활유를 담는 저장탱크도 청소를 했는데 처음에는 청소막대기에 깨끗한 천을 감싸 밖에서 닦았지만 구석구석 잘 닦이지 않아 결국 작업자가 들어가 청소를 했다. 비옷 비슷한 작업복을 입고, 비닐로 덮어씌운 장화를 신고 작업자가 윤활유 탱크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는 구멍이 작아 작업자들 중에서도 가장 작은 사람이 들어갔다.
Lube oil flushing 시작
이렇게 준비가 모두 끝나고 탱크에 새 윤활유를 넣고 펌프를 돌려 전체 윤활유 시스템을 순환시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압력기에 압력이 올라갔고 펌프의 작동을 멈췄다. 설치해 둔 거름망에 이물질이 많이 껴있었던 것이었다. 주기적으로 압력을 확인해 거름망을 교체해 주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펌프가 고장 날 수 있기 때문이다.
점점 거름망 교체하는 작업이 뜸해질 때쯤 Lube oil flushing이 거의 끝나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회전기기 제작사마다 Lube oil flushing이 끝났다는 조건이 달랐다. 거름망에 걸려있는 이물질의 개수로 확인하는 곳도 있었고, 오일 분석 결과를 보내달라는 업체도 있었다. 더 자세하게 확인하는 곳은 Lube oil flushing 담당자를 보내 직접 현장에서 확인하는 업체도 있었다.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업체에서 제공해 준 절차서를 꼼꼼히 읽어봐야 한다.
문제 발생
하지만 꼭 미꾸라지 같은 친구가 나타나는 법. 대부분 Lube oil flushing이 끝났는데 하나만 끝날 기미가 안보였다. 1달이 지나고 2달이 다 되어가는데도 거름망에 걸리는 이물질의 수가 줄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지?
윤활유를 새것으로 바꿔보기도 하고, Lube oil 배관들을 다 분리해서 스팀으로 클리닝을 다시 해보기도 하고. 현장 전문가의 도움과 인터넷에서 찾은 여러가지 방법을 다 써보아도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끝내야 하는 시간은 이미 지났는데 더 늦어지면 안 되는데.
결국 전체 시스템에 Chemical cleaning(화학 세정)을 하기로 결론을 냈다. 일반적으로 Lube oil flushing 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Chemical cleaning을 먼저 진행하고 Lube oil flushing을 진행한다. 하지만 비용을 줄이려 Lube oil flushing만 진행한 것이 더 많은 비용과 시간을 낭비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다행히 Chemical cleaning 후 Lube oil flushing은 금방 끝낼 수 있었지만 이 작업에 투입된 비용과 시간은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았다.
비용을 줄이느냐 시간을 줄이느냐. 항상 고민에 빠지게 하는 문제다. 작업이 시작하기 전에는 비용을 줄이려 노력하지만 결론적으로 돈을 투입해서 시간을 단축시키는 것이 더 이득이었다. 특히 정유/화학 공장은 시간이 제일 중요하다. 하루라도 빨리 공장을 돌려 제품을 판매하면 투자비용을 그만큼 더 빨리 회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험을 통해 비용을 아끼기 위해 필요한 작업을 빠뜨리면 돈과 시간 모두 더 들어간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