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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아파파 Sep 25. 2023

폭발소리가 들리다

Steam blowing(스팀 배관 클리닝)

열심히 steam blowing 준비를 마치고 현장 여기저기 확인하러 다니고 있을 때였다. 어디선가 갑자기 '펑'하는 소리가 들렸다. 공장이 폭발한 것처럼 들렸던 이 소리.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놀랐고, 모든 작업이 중단되었다. Air blowing 하는 소리도 아니고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리지?


이 소리는 Steam blowing을 하면서 났던 소리였다. 그럼 할 때마다 이런 무시무시한 소리를 들어야 하나? 아니다. 이건 사고였다. 웬만해선 이런 소리를 듣기 어렵다. 거의 발생하지 않으니까. 그리고 이런 소리가 나서도 안 된다.


먼저 Steam blowing은 말 그대로 수증기를 이용해 배관을 청소하는 방법이다. Steam은 공장 운전에 아주 중요한 유틸리티로 공정에 열을 공급해 주거나 회전기기를 돌리는 동력원으로 쓰인다. 그렇기에 공급 전 스팀이 발생하고 이동하는 배관을 깨끗이 청소해야 한다.


Steam blowing 준비작업


먼저 스팀배관에 있는 계기들을 다 제거한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클리닝 중 이물질로 인해 계기가 망가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스팀배관 제일 끝에 스팀소음기를 설치한다. 스팀소음기는 Steam blowing 시 발생하는 소음을 줄여주고, 배출되는 스팀을 하늘 위로 나갈 수 있게 방향을 바꿔주는 역할도 한다. 방향을 바꿔주는 이유는 바로 안전 때문이다. 뜨거운 스팀이 작업하는 주변으로 지나간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아찔한가. 사고 발생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스팀소음기는 꼭 설치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스팀배관에 보온재 설치가 완료되어야 한다. 뜨거운 스팀이 배관 안에 들어가면 배관도 뜨거워지기 때문에 안전을 위해 보온재가 설치되어야 하고 또 한 가지는 스팀의 온도를 유지하기 위함이다. 온도가 올라감에 따라 배관 안에 붙어 있던 이물질이 점점 더 많이 제거된다. 차가운 물보다 따뜻한 물로 닦았을 때 더  닦이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렇기에 뜨거운 스팀온도를 유지시키는 것은 중요하다.


Steam blowing의 시작


모든 준비과정이 마무리 되면 스팀 공급을 시작한다. 이 프로젝트는 기존 공장이 옆에 있어 그곳에서 스팀을 받았다. 만약 사막 한가운데나 오지에 공장을 짓게 되면 스팀생산설비를 따로 준비해야만 한다. 드디어 기존 공장과 연결되어 있는 배관의 밸브를 천천히 열기 시작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 꼭 밸브를 천천히 아주 조금씩 열어야 한다는 것. 조금이라도 빨리 밸브를 열게 되면 사고가 발생한다. 뻥 소리가 바로 이때 일어난 사고였다.


현장작업자가 속이 터졌는지 빨리 밸브를 열어 뜨거운 스팀이 갑자기 차가운 배관으로 확 밀려들어가자 스팀이 배관을 퍽하고 친 것이었다. 정말 위험한 사고였다. 만에 하나 배관이 찌그러졌던가 아니면 터져버렸다면... 상상하기도 싫다. 이 사고로 스팀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바로 스팀 공급을 중단하고 배관에 문제가 없는지 확인했다. 다행히 휘거나 터진 곳이 없었기에 발주처와 상의 후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이번엔 우리 팀원 모두, 발주처 사람들도 밸브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다시 한번 이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되기 때문에.


무사히 스팀 공급이 진행됐고 스팀소음기에 하얀 수증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와 함께 시끄러운 소음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귀마개를 끼워도 그 속을 파고드는 소음. 불청객이지만 가라고 할 수도 없고 가지도 않을 이 친구. 친해지려야 친해질 수가 없었다.


스팀소음기에 뿜어져 나오던 스팀이 눈에 보이지 않았다. 아른아른 아지랑이만 보일 뿐. 스팀이 들어오는 부분부터 끝까지 스팀 자체 온도까지 모두 올라갔다는 뜻이었다. 차가운 배관을 데우려면  많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이제 본격적인 클리닝 시간이었다. 지켜볼 뿐, 청소가 잘 되기를 바랄 뿐이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 때 스팀 공급을 중단했다. 클리닝이 끝난 것일까? 아니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클리닝 효과를 더 주기 위해서 온도를 올렸다 내렸다 하는 과정 중 일부다. 뜨거워진 배관을 밤새도록 시켰다가 다시 스팀을 넣어 클리닝을 하는 것이 바로 steam blowing. 그래서 이 작업은 몇 날 며칠을 계속 스팀을 넣었다 뺐다를 반복한다. 그래야 배관 안에 붙어 있던 이물질들이 잘 떨어지기 때문이다.


Steam blowing 결과 확인


며칠이 지났을까 소음기 앞 배관에 테스트 조각을 설치했다. 배관 안을 직접 볼 수 없으니 제일 마지막 부분에 조금한 금속 조각을 매달아 뿜어져 나오는 스팀 안에 이물질이 얼마나 부딪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정말 중요한 부분은 아주 조금한 자국도 허용되지 않았다. 특히 회전기계에 들어가는 부분은 발주처도 철저하게 검사한다. 만약 조금한 이물질이 들어가면 기계가 망가지는 것은 순식간이기 때문이다.


모든 작업이 끝났다. 발주처도 만족해했고 우리도 아무 사고 없이 잘 끝나서 뿌듯했다. 초반에 정신 차리라고 폭죽을 터뜨린 일만 빼고(처음에 이야기한 펑! 소리) 말이다. 그래도 위험한 작업을 잘 마무리 했으니 앞으로의 일도 더 잘해나갈 수 있다는 힘을 얻었다. 이런게 바로 시운전 일의 묘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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