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해질 수 없는 관계

두번째 설을 앞두고

by 루나

살다 보면 관계마다 참 다른 얼굴을 쓰게 되는 경우가 많다. 어떤 사람 앞에서는 편하고, 어떤 사람 앞에서는 어색해지는…

너 알지? 나 사람들 사이에서 밀린 적 없는 거. 인기 많아 친구 많고, 나를 두고 은근히 경쟁이 붙기도 하고, ‘베스트 프렌드’ 자리를 두고 서로 시기하는 친구들도 있었으니까. 이렇게 말하니까 꽤 내 자랑 같지만, 사실 그건 외로움을 많이 타서일 수도 있어.

그래서 인간관계만큼은 나름 자신 있다고 믿고 살아왔는데… 그런데 말입니다! 이상하게도 유독 시댁이라는 관계 안에서만은 늘 서툴고, 눈치 보고, 예외적인 사람이 되어 버리는 거야. 어떻게 나를 안 좋아할 수가 있는 거지?

우리는 알잖아. 꼭 내게 직접적인 피해를 입히지 않아도 보기만 해도 불편하고 거부감이 드는 존재, 바로 ‘시어머니’. 그 존재만으로도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그냥 막 싫어지잖아. 악의가 없다는 그분의 입장에서는 매우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 시댁은 친구보다 가족의 무게가 훨씬 커. ‘XX 애미야’라는 낯선 호칭부터 소외감을 느꼈었어. 그래서 나는 시댁 가족의 중심이 아니라 주변에 서 있는 사람 같았거든. 어떤 집단에 들어가면 반드시 기여도가 있어야 인정받는다는 걸 알기에 뭐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 나름 애썼었지만, 어느덧 성당에서 하는 고백성사 때마다 나는 시어머니를 떠올렸어.

한국에 아주 들어온다고 했을 때, 넌 왜 굳이 시World 우굴거리는 험한 곳을 자처해 들어가느냐고 했던 말 기억난다. 나는 시부모님 모두 좋으신 분들이라며 1도 걱정 말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떠났었잖아. 그런데 생각지 못했던 상처를 하나씩 야금야금 받다 보니 멘탈이 탈탈탈…

그렇게 1년이 가고 2년이 흘렀다. 급격히 노화된 시어머니는 아픈 데도 더 많아졌고, 먼 길도 못 가시고 같은 말을 자주 반복하시는 앵무새가 돼 버렸다. 시력과 청력이 약해져 놓치는 것들도 많아지신 그런 모습을 보며 나는 미래의 내가 겹쳐 보이기도 하고, 한 여자로서의 삶이 가여워 보이기도 했지.

내참... 생각해 보면 참 비겁하지 않니? 사람은 왜 상대가 약해지고 나서야 비로소 너그러워지는 걸까. 그러면서도 나는 스스로를 꽤 괜찮은 며느리라고 여기고 있었고, 어쩌면 그 속에는 은근한 오만이 숨어 있었는지도 몰라.

미움과 연민, 불편함과 이해, 거부감과 애잔함. 그 모든 감정이 뒤섞인 자리에서 나는 여전히 시World를 살아가고 있다. 어느 날부터 나는 시어머니를 위해 기도하고 있었고, 그 기도 속에서 조금씩 나 자신을 변화시키려 했었나 봐.

그러고 보니 언제부터인가 어머니는 나에게 참 많이 부드러워지셨다. 어느 날 갑자기 달라지신 것이 아니었어. 눈치채지 못할 만큼 아주 천천히, 마치 그라데이션처럼 변하셨던 거야.

그래, 맞아. 나만 기도하고 있었던 게 아니었어. 서로 맞지 않는 이 낯선 관계 속에서 나처럼 어머니도 같은 자리에서 마음을 내려놓으려 애쓰고 계셨던 건 아닐까. 힘은 점점 약해지셨지만, 대신 마음은 더 평온해지려고 노력하고 계셨으리라 생각해.

그제야 알았다. 우리는 서로를 이기려 했던 게 아니야. 각자의 자리에서 잘 버티고 있었던 거야.
돌이켜 보니 나는 인간관계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편한 관계 안에서만 자신 있었던 건 아닐까. 나와 맞지 않는 사람 앞에서는 여전히 서툴고, 이해하지 못하는 마음 앞에서는 쉽게 흔들리는 평범하고 부족한 사람이었다는 걸 이제야 조금씩 인정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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