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 수 없는 것들에 대하여

by 루나

얼굴을 바꾸는 손에서, 삶을 읽게 된다.



나는 오래전부터 사람의 얼굴을 아름답게 하는 것을 좋아했다. 내 얼굴은 물론이고, 메이크업으로 누군가를 단장해 주는 일은 늘 새로웠고, 유행을 읽어내는 감각을 뽐내는 일이 즐거웠다.


한참 그것에 빠져 있을 때, 'Sephora' 같은 뷰티 편집숍은 내 놀이터였다. 그곳에서 놀다 보면 손등은 늘 수난이었다. 빈 곳이 없을 정도로 쿠션과 립스틱, 아이라이너를 끊임없이 그려댔다.


어느새 나는 친구들과 지인들의 메이크업 담당으로 그녀들이 더 아름다워지는 과정에 기꺼이 함께했다. 그리고 스스로 이 일에 제법 소질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때 나의 직장은 신문사였다. 광고 디자인실에서 화장기 없는 얼굴로 안경을 낀 채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이 바로 나였다. 화장품과는 전혀 상관없는 세계에서 십여 년을 보내던 어느 날, 문득 ‘본캐’와 ‘부캐’ 사이에서 딜레마를 느끼게 되었다.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을 향해 방향을 바꾸고 싶어졌다.


나는 화장품 회사로 자리를 옮겼다. 그곳에서 메이크업과 스킨케어를 정식으로 배우며 그 일을 직업으로 삼았을 때에는 하루하루가 참 즐거웠다. 누군가는 나로 인해 조금 더 아름다워졌다고 느껴졌을 것이고, 누군가는 그로 인해 자존감이 올라가는 순간, 나 역시 함께 기뻤다.


그렇게 타인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지내는 동안,

나는 어느새 사람의 마음까지도 읽어낼 수 있다고 착각하게 되었다. 곰과 여우로 나눈다면 당연히 나는 여우 쪽이고, 상황을 빨리 읽고, 사람의 마음도 잘 파악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신문사라는 우물 밖으로 나오자 전혀 다른 세계에서 나는 곰에 가까웠고, 오히려 눈치 없는 쪽이었다. 사람을 돋보이게 하는 일은 좋았지만, 직원들 사이에서 살아남는 일은 또 다른 문제였다




유독 뷰티 업계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라면 어디서든 비슷했을지 모른다.


누구나 유복했다면, 굳이 영악해질 이유가 없듯, 상황을 기회로 만들어야 할 절박함도 없었을 것이다. 그들이 가진 감각과 통찰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부딪히고 견디며 쌓아온 시간의 결과다.

어떤 이는 그것을 단단해졌다고 말할 것이고,
어떤 이는 닳아졌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 차이는 결국, 각자가 견뎌온 시간에서 갈린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누군가를 바라볼 때, 얼굴보다 그 사람이 지나온 시간을 먼저 보게 된다. 아름다움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견뎌온 시간 위에 남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사람을 보는 일은 익숙해졌지만, 사람 사이에서 사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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