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때 내 몸이 왜 이렇게 아픈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픈 이유가 없는데 아팠고, 원인 모를 병을 병원에 호소하게 되었다. 만성 피로나 스트레스라고 하기에는 통증이 너무 오래 갔다. 그러니 무기력증에 우울증이 한꺼번에 생겼고, 공황장애까지 오게 되었다.
한편, 우리아이는 고등학교 때 병이 시작됐다. 병명은 크론병(Crohn's disease). 만성 염증성 장질환인 이 병은 희귀난치성 자가면역질환이다. 이름 한 번 길고 어려운 병이다.
큰 병원에서 낯선 환자복을 입고 피를 열몇 통이나 뽑아야 했을 때는, 피가 더 이상 나오지 않아 잠시 쉬었다가 다시 뽑기를 반복했다. 꽉 마른 몸에 핏기 없는 회색빛 피부톤의 아이 모습은 내 심장을 찌르는 듯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아이를 혼자 두는 시간이 두려워졌다.
아이가 학교를 가면 나는 동동거릴 수밖에 없었다. 학교가 끝나기가 무섭게 학교 앞에서 대기했다가 데려왔다. 나중에는 그것도 힘들어 한 학기 남은 고등학교 생활을 온라인 학교로 옮길 수밖에 없었다. 결국, 다니던 학교 친구들과는 다른 학교 졸업생이 된 셈이다.
그럼에도 친구들을 좋아하는 아이는 다니던 학교 졸업식에 갔다. 학기를 다 끝내지 못했지만 친구들도 만나고 졸업도 축하할 겸 갔는데, 상을 수여하는 자리에서 본인 이름이 호명됐다고 했다. 아마도 전학 소식을 모르는 교사가 아이 이름을 부른 것 같았다. 호명이 되었음에도 상을 받을 수 없었던 그 순간이 얼마나 안타까웠을까. 그 마음을 생각하니 내 가슴뼈가 시렸다.
친구들을 만나면 운동은 고사하고 식당 메뉴에도 혼자 예민해야 했고, 모두가 2차로 모이는 자리에는 갈 수 없는 상태였다. 그 안에서 오는 외로움은 얼마나 컸을까. 혹시 은근히 따돌림을 당하지는 않을까. 좋은 친구를 만나면 좋겠지만, 그러지 못한다면 관계를 빨리 정리할 수 있는 지혜와 현명함을 달라고 나는 늘 기도했다. 사람에게 받는 상처가 얼마나 아픈지 알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감사하게도, 유명한 곳은 아니지만 좋은 대학교에 장학금을 받고 입학하게 되었다. 기숙사 생활에서 좋은 룸메이트도 만났고, 화장실과 가까운 곳으로 배정받은 방에서 잘 지냈지만, 집 떠난 아이를 나는 여전히 걱정했다. ‘걱정’이 내 일상인 것처럼...
누군가 말했다. 진짜 친구는 우산을 씌워주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아주는 사람이라고...
나는 아이 대신 아파줄 수 없어서, 같이 아파지는 걸까. 결국 그 감정은, 내 몸 안으로 내려앉았다.
내 병의 상당 부분은 그 아이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닐까. 말로 꺼내기 어려운 사실이다. 병든 자식을 둔 이 세상 모든 엄마들이 그럴 것이다. 아이 때문에 아프다고 말하는 순간, 나쁜 엄마가 될 수 없기에 나 역시 끝까지 부정하고 싶었다.
아이는 벌써 그 병을 앓은 지 7~8년이 되어간다. 어차피 선천성 희귀난치병이기에 끝까지 가지고 가야 한다. 완전히 낫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제는 스테로이드를 쓰지 않을 만큼 좋은 약도 나왔고, 아이는 본인이 어떻게 조절해야 하는지 스스로 알아 가고 있었다.
그 아이가 조금씩 정상생활을 할 수 있게 되면서, 나는 굽어 있던 허리가 점점 펴지는 꼽추처럼 몸이 풀리기 시작했다.
완전히 나아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다. 다만, 아이와 내가 지금보다 조금 덜 아프게, 조금 더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결국, 나는 혼자 아픈 게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 자매가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어,
“주님,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이가 병을 앓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그 말을 듣고 이르셨다.
“그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
그 병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
— 요한복음 11장 3–4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