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가를 사랑하게 되었다.
사랑이라고 말해도 될 만큼 빠져 있다.
정확히 말하면, 요가를 ‘시간표’로 하지 않고 하루의 틈에 요가를 넣어놓는다.
아침이면 YouTube를 켜고, 거실 한가운데 늘 펼쳐진 요가 매트에 앉는다.
누군가를 기다리지 않아도 되고,
어디로 가지 않아도 되는 시간.
나는 나에게 시간을 맞춘다.
그전부터 요가를 좋아하긴 했지만, 이렇게 하기 시작한 건 팬데믹 때부터였다.
더운 날엔 땀이 요가 매트 위로 뚜둑 떨어지는 소리가 좋았고,
추운 날엔 차가운 몸 안으로 더운 숨이 천천히 스며드는 느낌이 좋았다.
물론 인도의 고대 철학이나 수행 체계에 입각한 엄숙한 수련은 아니다.
몸과 마음, 개인과 우주를 연결하는 깊은 명상을 목적으로 하는 요가도 아니다.
나는 그저 화면 속에 묘사된 풍경을 따라 움직이는 수많은 시청자 중, 조금은 성실한 한 사람일 뿐이다.
그럼에도 그 화면은 늘 충분히 매혹적이다.
내가 따라 하는 요가 선생님은 젊고 아름다웠다.
놀랍도록 정제된 움직임,
날씬하고 탄탄한 몸에 자연스럽게 감기는 요가복,
과하지 않게 정돈된 근육과 힘을 쓰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균형.
카메라는 늘 좋은 곳에 놓여 있다.
빛이 잘 드는 모던한 공간,
큰 창으로 들어오는 부드러운 아침 햇살,
그리고 어떤 날은 뉴욕 여행 중 센트럴파크의 잔디 위에서,
어떤 날은 제주도의 바닷가 모래 위에서,
유튜버는 그 동네사람처럼 요가를 한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며, 잠깐, 내 거실을 잊는다.
매트 아래 느껴지는 마룻바닥의 단단함 대신 잔디의 촉감이나 모래의 미세한 온도를 상상한다.
그리고 그 상상은 의외로 몸을 속인다.
호흡이 길어지고,
어깨가 내려가고,
굳어 있던 허리가 조금 더 허락을 한다.
나는 수행자도 아니고, 명상가도 아니며, 어쩌면 요가의 본질도 모르는 사람일지 모르지만, 이상하게 이 단순한 따라 하기 속에서 몸은 조금씩 바뀌고, 마음은 덜 조급해진다.
아마 내가 사랑하게 된 것은 요가라기보다는 요가를 하는 동안의 나 자신일지도 모르겠다.
두 달 전부터 나는 그룹 요가를 하기 시작했다.
한국에 와서 처음으로, 이곳 어딘가에 내 자리가 생긴 것이다.
내 호흡이 다른 사람들의 호흡과 처음으로 겹쳤다.
이제서야 비로소, 한국이라는 공간 안으로 한 걸음 들어온 것 같았다.
요가실에 들어서면 사람들은 무표정으로 말없이 자리를 잡고, 형식적인 인사를 나눈 뒤 각자의 매트 위에 앉는다.
서로를 보지 않지만, 같은 호흡을 한다.
그럼에도 그 시간은 나를 깊이 안정시켰다.
이상하게도 마음이 놓였다.
아, 이제 나도 이곳의 리듬 안에 있구나.
하나씩 요가실에 담담한 얼굴로 들어오는 이들에 비해 선생님은 늘 밝게 웃으며 인사한다.
어두운 요가실 안에서도 그 미소는 환하게 빛났다.
손바닥에 아로마 오일을 발라주며 향을 맡게 하고 귀볼에 살짝 묻혀주는 다정함이 있는 선생님이었다.
그 순간, 요가는 운동이 아니라 의식이 된다.
집에서는 되지 않던 자세가 그곳에서는 되고, 아픈허리는 가벼워진다.
일주일에 단 두 번, 하지만 그 두 번은 하루에 몇 번씩 하던 집 요가보다 더 깊이 남는다.
다만 여전히 사람들과의 거리는 조심스럽다.
미국에 있었다면 이미 웃으며 말을 트고 친해졌을 상황인데, 이곳에서는 눈인사조차 망설이게 된다.
아직 이곳이 타향이라서일까.
내가 나이가 들어서일까.
그러던 어느 날, 요가실에서 아는 얼굴을 만났다.
이 단지에서 내가 아는 딱 두 사람,
그 중 한사람은 미용실 원장이고,
또 한사람은 우리 강아지 수의사였다.
나는 수의사 선생님을 요가실에서 만나고
처음에는 반가움을 숨겼다.
혹시 불편해할까 봐, 괜히 말을 붙이지 않았다.
하지만 반복되는 만남 속에서 눈인사는 인사가 되었고, 인사는 웃음이 되었다.
이제 우리는 매트를 피고 접으며 자연스럽게 안부를 나눈다.
그가 보여주는 반가움 덕분에 나는 좀 더 안정된 마음으로 이곳에 머무를 수 있었다.
나는 이제 천천히 쌓이는 관계도 나쁘지 않다는 걸 안다.
그 느린 속도가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이제는 그 속도가 나를 더 편안하게 만든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한국에서의 나는 요가보다는 사람 사이의 속도를 다시 배우고 있다.
그룹요가를 다니며 나는 한동안 생각이 숨 뒤로 물러났다.
그저 숨이 길어졌고, 발걸음이 이전보다 느려졌다는 것을 느꼈다.
한국에 와서의 시간은 나를 재촉하지 않았다.
오히려 멈추게 했고,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다고
몸부터 설득했다.
나는 여기서 서두르지 않는 법을 몸으로 배우고 있다.
늘 먼저 가려고하다가 자주 흔들리던 나는 이제 이 속도로도 괜찮아졌다.
요가를 하며 나는 몸을 놓고,
그 몸을 통해 이 나라에 나를 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