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중학교 1학년 4월에 화상으로 다친 곳을 치료하려고 여러 차례에 걸쳐서 성형외과 수술을 받았다. 수술할 때면 1주일 이상은 병원에 입원 치료를 한다. 총 몇 번의 수술을 했는지 기억도 없다. 많이 했다는 것은 병원의 진료기록을 보면 짐작이 간다. 내 병원 기록은 어지간한 나라의 역사책만큼이나 그 분량이 많다. 처음 몇 번은 대구에서 수술하였고 후반에는 서울의 S 병원에서 하였다. 성형외과는 입원 치료를 하는 환자의 비중이 크지 않은 특성이 있다. 규모가 큰 S 병원에도 성형외과 병동은 없었다. 그래서 나 같은 입원 환자들은 빈 병상이 있는 병동에 더부살이해야 한다. 가장 더부살이를 많이 했던 병동이 외국인 병동이다. S 병원에는 외국인 병동을 운영한다. 언어적인 특수성 때문에 외국인이 입원 치료가 필요하면 외국인 병동에 배정된다. 그러나 몇 번을 입원 치료를 했지만, 외국인이 병상을 다 채우는 예는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 같이 더부살이 입원을 하는 환자들은 외국인 병동에 배정받는 일이 많다.
S 병원은 S그룹 산하의 의료복지 재단이고 S그룹은 항상 일등만 추구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 것이다. 나는 S그룹과 직접 연관된 일을 해 본 경험은 없지만, S그룹 특히 S 전자의 혁신적인 개선에 관한 사례는 배우려고 많이 노력했다. 공장 혁신에 대한 발표회가 있으면 놓치지 않고 찾아가서 공부했다. 다시 병원 이야기로 돌아가면, 외국인 병동에 있으면서 1등을 하는 사람들은 생각의 시발점부터 나와는 다르다는 것을 깨우쳤다. 외국인 병동에 근무하고 있는 일부의 간호사는 초・중학교 시절에 미국에 이민 가서 미국에서 간호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깜짝 놀랐다. 이런 배경을 지닌 간호사를 채용하기 위한 비용은 일반 간호사와는 차원이 다를 것이다. 임금은 차치하고라도 상당한 정도의 추가 비용이 필요할 것이다. 역시 1등 DNA는 완벽을 추구하는구나. 보통의 회사라면 어떻게 할까. 공채로 뽑은 간호사 중에서 일정 이상의 공인된 영어 성적을 가진 사람을 선발하고, 외국어 수당을 주면서 외국인 병동에 근무시키지 않을까. 물론 의료라는 특수한 산업의 문화를 모르는 내가 하는 상상은 전혀 터무니없는 낮은 수준의 것일 수도 있지만.
여기서 나의 경험을 불러와 보겠다. 1998년 프랑스 회사와 합작 공장을 설립하고 생산을 시작하였다. 많은 기술 자료들이 프랑스어로 작성이 되어있었다. 엔지니어 중에서 프랑스어를 제2외국어로 배운 사람도 거의 없었다. 그래서 회사에서는 대학에서 프랑스어를 전공한 성적이 매우 우수한 두 사람을 정식 직원으로 채용하여 기술 문서의 번역작업을 도울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런데 때에 따라서는 번역한 한글본이 더 이해하기 어려운 때도 있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철사를 꼬불꼬불하게 말아서 만든 막대기 모양의 제품이라고 번역을 했다.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둘이서 고민하면 앞뒤 문장까지 꼼꼼히 살펴보았지만,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결국 프랑스 엔지니어에게 전화했다. 그것은 스프링이었다. 엔지니어가 아닌 문학을 공부한 사람이 번역하니 세 개의 글자가 기다란 하나의 문장이 된 것이다. 물론 그분들이 엔지니어링 언어들을 정말 열심히 공부한 덕분에 1년쯤 지나자 거의 동시통역 수준의 서비스를 하게 되었다.
나는 S 병원에 입원하여 이 사실을 깨우치고 난 후에 모든 의사 결정을 할 때 1등의 DNA가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 내가 내리는 이 결정이 우리 회사가 1등의 회사가 될 수 있도록 하는데 올바른 결정인가를 나 자신에게 물어보는 체크 포인트가 생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