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여행 2일차 -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들

by 이 범수

사라진 추억의 호텔을 찾아서

긴 비행으로 인한 피로가 채 가시지 않았지만, 시차 때문인지 새벽부터 잠이 오지 않았다. 창밖으로 스며드는 파리의 이른 아침 공기를 맡으며, 문득 30년 전 그 추억의 호텔이 떠올랐다. Hotel De Moulin. 그곳은 단순한 숙소가 아니었다. 아미앵에서의 긴 출장 후 주말이면 찾던 안식처였고, 차가운 프랑스 음식에 지친 우리에게 따뜻한 꼬리곰탕으로 고향의 맛을 선사해주던 곳이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따뜻해진다. 차가운 아미앵의 겨울밤, 긴장된 업무와 계획에 지친 한주가 지나면 온몸이 녹초가 된것 같았다. 그런 우리에게 금요일 저녁은 마법 같은 시간이었다. 파리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맡기며 Hotel De Moulin의 따뜻한 온기를 상상하곤 했다. 그곳의 사장님은 언제나 환한 미소로 우리를 맞아주셨고, 사모님이 아침이면 어김없이 끓여주신 꼬리곰탕의 진한 국물맛이 아직도 혀끝에 남아있다. 그 한 그릇으로 일주일간 쌓인 피로와 향수병이 눈 녹듯 사라졌던 기억이 선명하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Hotel De Moulin Plaza라는 이름으로 나왔다. 몽마르트 언덕 근처의 위치도 비슷했다. '아마도 신 사장님은 연세가 드셔서 물러나시고 아드님이 호텔을 인수하면서 새롭게 단장하고 이름을 바꾸었나 보다'라는 혼자만의 상상과 오랜만에 만나는 기대감으로 예약을 했다. 30년 만에 다시 그 정겨운 곳에서 하룻밤을 보낼 수 있다는 설렘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러나 막상 도착해보니 전혀 다른 호텔이었다. 체크인 카운터에서 직원에게 Hotel De Moulin에 대해 물어봤지만, 그들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44유로의 추가 결제 요구. 이미 한국에서 숙박비를 모두 지불했는데 왜 또 돈을 내야 하는지 물어보니, "City Tax"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파리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에게 부과하는 세금이란다.

웃음이 절로 나왔다. 파리시의 재정 상태가 그렇게 어려운가 보다. 이런 세금도 만들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세계적인 관광도시라 할지라도 운영의 현실은 녹록지 않은 모양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것도 파리의 한 모습이구나 싶어 오히려 흥미롭게 느껴졌다.

시간 속으로 사라진 추억들

이른 아침, 잠이 오지 않아 그리운 Hotel De Moulin을 직접 찾아갔다. 걸어가면서 30년 전 이 거리를 걸었던 젊은 나 자신이 떠올랐다. 그때는 항상 서둘렀다. 시간에 쫓기고, 일에 쫓기고, 무언가를 증명해야 한다는 조급함에 쫓겼다. 지금은 다르다. 발걸음이 느려졌지만 주변을 바라보는 눈은 훨씬 여유롭고 깊어졌다. 같은 길이지만 전혀 다른 풍경이 보인다.

그곳에는 새롭게 단장된 Hotel Monsieur Aristide라는 간판이 걸려 있었다. 호텔 직원에게 이전 주인에 대해 물어보니, 한국인이 아닌 프랑스인이 운영한다고 했다. 가슴 한편이 서늘해졌다. 아미앵에서 차가운 프랑스 음식만 먹다가 주말이면 파리로 올라와 우리를 가족처럼 따뜻하게 맞아주던 그곳. 한국인 출장자들에게는 진정한 안식처였던 Hotel De Moulin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이다.

그때 그 사장님의 얼굴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50대 중후반쯤 되어 보이셨는데, 항상 깔끔한 정장 차림에 온화한 미소를 지으셨다. 우리가 도착하면 "어서 오세요, 고생 많았어요"라며 따뜻한 한국어로 인사해주시곤 했다. 그분이 직접 끓여주신 꼬리곰탕은 정말 예술이었다. 사골을 우려낸 진한 국물에 각종 채소와 양념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그 깊은 맛.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으면 고향 어머니의 손맛이 그대로 느껴졌다. 이제 그분도 90세 가까울 것이고, 아들이 승계를 원하지 않으면 그 정겨운 호텔이 지속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30년 전 프랑스 출장을 다니던 시절,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무한대처럼 느껴졌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영원히 계속될 것 같았고, 그때의 사람들과 장소들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돌아보니 그 모든 것들이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되어 기억 속에만 남아 있다. 몽마르트 언덕의 사크레 쾨르 성당과 카페들, 거리의 화가들은 30년 전 모습 그대로인데, 그때 그 다정하고 친절했던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옛말에 "산천은 유구한데 인걸은 간데 없다"고 했던가. 그 말이 새삼 가슴 깊이 느껴지는 여행이다. 변하지 않는 것과 변해가는 것들 사이에서, 우리 인생의 덧없음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하지만 동시에 그렇기 때문에 더욱 소중한 것도 있다. 지금 이 순간, 아내와 함께 걷고 있는 이 거리, 함께 나누는 이 대화, 함께 바라보는 이 풍경들이야말로 진정 소중한 것들이 아닐까.

바게트의 맛과 하루의 시작

호텔에서의 아침 식사는 우리 입맛에 잘 맞았다. 역시 바게트는 프랑스 바게트가 일품이다. 아내와 함께 그 바삭한 식감과 고소한 맛에 감탄하며 맛있게 먹었다. 갓 구운 바게트를 손으로 뜯어 입에 넣는 순간의 그 향긋함과 쫄깃함. 젊었을 때는 놓쳤던 이런 소소한 즐거움들을 이제야 제대로 음미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작은 행복들이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오늘의 일정은 몽마르트 주변 관광이었다. 오후 6시경에는 몽마르트에서 대금 버스킹을 하고, 저녁에는 물랭루즈 쇼를 관람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몽마르트 언덕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팔레 루아얄에서 시작해서 걸어서 여러 곳을 방문하고, 마지막 목적지인 몽마르트 언덕에 도착하는 계획을 세웠다. 체력적으로는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파리의 거리를 천천히 걸으며 도시의 숨결을 느끼고 싶었다.

변화하는 파리의 교통 시스템

파리에 올 때마다 지하철을 이용했다. 너무나 촘촘하고 잘 연결된 지하철망과 복잡한 교통 상황 때문에 파리에는 차를 가지고 들어와 본 적이 없다. 예전에는 지하철 티켓 한 장이 4프랑, 10장을 사면 20프랑이었다. 그래서 항상 10장씩 구입해서 사용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종이 티켓을 개찰구에 넣고 통과한 후 다시 뽑아서 가지고 다녔는데, 가끔 분실해서 곤란했던 적도 있었다.

지금은 어떻게 바뀌었는지 호텔 프론트에 문의하니, 동전 2유로를 주고 버스를 타라고 안내해주었다. 그런데 막상 버스를 타기 위해 2유로를 제시하니 운전사가 거부한다. 현금을 받지 않고 전자화폐만 결제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세상이 정말 많이 변했다. 디지털 시대의 물결이 파리의 대중교통까지 바꿔놓았다. 현금 없는 사회로의 전환을 몸소 체험하는 순간이었다. 젊은 세대들에게는 당연한 일이겠지만, 우리 세대에게는 여전히 신기하고 때로는 당황스러운 변화다. 하지만 적응해야 한다. 변화를 거부하고 과거에만 머물러 있을 수는 없으니까.

IT 기술의 놀라운 위력

관광 중에 우리는 내일 마들렌 성당 들렸다. 이곳에서 내일 음악회가 열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거리에 붙은 포스터를 보고 아내가 먼저 관심을 보였다. "여보, 저 성당에서 음악회가 있네요. 한 번 가볼까요?" 유서 깊은 성당에서 열리는 음악회는 또 다른 매력이 있을 것 같아 현지에서 QR코드를 통해 예약을 시도했다. 두 사람에 110유로. 쉽지 않은 예약이었지만 성공했다.

예약을 하면서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나도 IT의 완전한 문외한은 아니라는 것과, IT의 위력이 이렇게 대단한 것인가 하는 감탄이었다. 길 가다가 프랑스 땅에서 QR코드를 통해 예약을 하는데, 한국에 있는 나의 모든 정보를 확인하고 예약 결제를 한다. 정말 놀라운 세상이다. 국경도, 시간대도, 언어도 모든 것을 뛰어넘어 순식간에 연결되는 이 기술의 힘. 30년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다.

앞으로도 IT의 발전은 무궁무진할 것이다. 반드시 IT에 대한 투자는 게을리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기술의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고 받아들이며 살아가야 할 것 같다.

몽마르트에서의 특별한 경험

하루 일정을 정리하고 오늘의 하이라이트인 몽마르트 대금 버스킹 시간이 되었다. 나와 아내는 버스킹 장비를 준비하여 몽마르트 언덕으로 올라갔다.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는 것이 예전만큼 쉽지는 않았지만, 한 걸음 한 걸음 오를 때마다 설렘이 커졌다. 30년 전에는 관광객으로만 이곳을 찾았는데, 이제는 거리 공연자가 되어 다시 돌아온 것이다.

버스킹에 앞서 우리는 초상화를 한 장 그리기로 했다. 수없이 많이 몽마르트 언덕을 방문했지만, 항상 남의 그림 그리는 것만 구경했었다. 경제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런 여유를 부릴 만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 같다. 항상 어딘가로 서둘러 가야 할 것 같은 조급함 때문이었을까. 그런데 오늘은 우리도 초상화 그림의 주인공이 되었다.

과거보다 훨씬 많은 거리의 화가들이 있었다. 가격도 천차만별이었다. 우리는 우리 취향에 맞는 화가와 협의하여 한 장의 도화지에 나와 집사람의 모습을 담는 것을 80유로에 약속하고, 각각 30분씩 약 한 시간 정도 모델이 되었다.

화가는 60대 초반으로 보이는 프랑스 남성이었는데, 정말 진지하게 우리의 모습을 관찰했다. "조금만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주세요", "미소를 지어주세요, 자연스럽게"라며 세심하게 지도해주었다. 모델이 되어 가만히 앉아있는 시간이 이렇게 특별할 줄은 몰랐다. 화가의 집중된 시선을 받으며 30분간 앉아있는 동안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이 순간이 영원히 그림 속에 남겨진다는 것, 30년 후 이 그림을 보면서 오늘을 회상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림이 완성되었을 때 우리는 깜짝 놀랐다. 단순한 사진보다 훨씬 더 우리의 본모습을 담아낸 것 같았다. 화가의 눈에 비친 우리의 모습이 이렇게 따뜻하고 정겨워 보일 줄은 몰랐다. 그림 속의 우리는 평온하고 행복해 보였다. 그것이 바로 지금 우리의 진짜 모습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은퇴 후 함께 여행하는 부부의 모습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구나.

그림을 그리고 버스킹을 위해 사크레 쾨르 성당 앞으로 갔다. 적당한 장소를 찾았는데, 그곳에서 아프리카에서 온 두 사람으로 구성된 다른 한 팀도 버스킹을 준비하고 있었다. 젊은 남성 둘이었는데, 하나는 기타를, 다른 하나는 작은 드럼을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그 팀에게 내가 먼저 30분만 연주할 것이니 양해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들은 영어로 "No problem, we wait"라고 말하며 흔쾌히 승낙해주었다. 그리고 내가 대금을 꺼내자 "Oh, Chinese flute?"라고 물었다. "No, Korean flute"라고 답하자 "Ah, Korea! Very good!"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이런 작은 교감이 주는 따뜻함이란.

나는 약 30분간 준비한 노래를 아리랑을 포함하여 5곡 정도 연주했다. 내일 에펠탑 버스킹을 위한 리허설이기도 했다. 첫 곡으로 '아리랑'을 연주했을 때 지나가던 관광객들 중 몇 명이 발걸음을 멈췄다. 한국인 관광객도 있었지만, 외국인들도 여러 명 귀를 기울였다. 아리랑의 애잔한 선율이 파리의 하늘에 울려 퍼질 때, 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을 느꼈다. 우리의 민족 선율이 이 낭만의 도시에서 울려 퍼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 같았다.

연주를 마치고 아내는 한국에서 동탄호수공원에 가서 연습할 때보다 더욱 자연스럽고 자신감 있었다고 칭찬해주었다. "당신이 연주할 때 정말 행복해 보여요. 음악이 당신을 통해 흘러나오는 것 같았어요." 그 말이 가슴 깊이 와 닿았다. 낯선 땅에서 낯선 사람들 앞에서 연주하는 것이 이렇게 큰 자신감과 성취감을 줄 줄은 몰랐다. 은퇴 후에도 이렇게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러나 개선 할 점도 아직 많이 있다. 소리는 나의 연주 실력과 지금까지 연습에 비하면 그런대로 크게 부족하지는 않았지만 연주의 위치 선정에 대하여서는 많은 것을 배웠다. 같은 장소이지만 아프리카 친구들은 나와 정 반대로 위치를 잡았다. 호텔에 돌아와서 녹화 영상을 보니 그들이 왜 그 자리에서 연주를하는지 이해가 되었다. 배움이란 끝이 없는 것 같다.

예상치 못한 시련들

몽마르트 언덕 버스킹을 마치고 저녁 식사를 한 후, 물랭루즈 쇼 관람을 위해 공연 시간 30분 전에 도착했다. 이 역시 과거 여행에서는 쇼를 구경하지 못하고 광고 포스터만 보았는데, 오늘은 당당히 쇼를 즐기기로 했던 터였다. 30년 전에는 경제적 부담도 있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그런 유흥에 돈을 쓰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지금은 다르다. 인생을 즐길 줄 알게 되었고, 좋은 경험에 투자하는 것을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게 무슨 청천벽력 같은 일인가. 나의 예약은 22일이 아니고 23일, 즉 내일이었다. 내가 프린터해서 가져간 예약 티켓을 다시 확인해보니 정말로 23일로 인쇄되어 있었다. 어떻게 이런 실수를 했을까. 그렇다면 내일 마들렌 성당 음악회와 겹치는 것이다. 두 개의 소중한 일정이 겹치다니, 이보다 더 당황스러울 수가 없었다.

급히 마들렌 예약을 취소해야 했다. 전화를 했더니 프랑스어로 녹음된 멘트만 반복된다. 식은땀이 났다. 110유로라는 적지 않은 금액이 날아갈 수도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답답해졌다. 호텔 프론트의 도움을 받아 예약을 취소하는 이메일을 보냈다. 프론트 직원이 친절하게 도와주었지만, 취소가 가능할지는 미지수였다.

그야말로 치밀하지 못한 나 자신에 대한 실망감이 밀려왔다. 젊었을 때도 이런 실수를 종종 했는데,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그대로구나 하는 자괴감. 동시에 취소 가능 여부에 대한 불안감으로 말 그대로 멘붕이 왔다. 집사람은 "괜찮다, 이런 일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거야"라며 위로해주었지만, 내 마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틈나는 시간을 이용해 다음 목적지로 갈 렌터카를 예약하는데 결제가 되지 않았다. 카드를 여러 번 넣어봐도 계속 "Payment Failed"라는 메시지만 뜬다. 자꾸만 초조해지고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이런 일들이 연달아 일어나면 여행 전체가 꼬일 수 있다는 걱정이 들었다. 급기야 한국에 있는 카드회사에까지 전화해서야 결제를 할 수 있었다. 해외 사용 제한이 걸려 있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즐겁고 순조롭던 여행이 갑자기 꼬이기 시작하니 마음이 더욱 초조해지고 다급해졌다. 혼자서 모든 것을 계획하고 실행하려던 내 자신의 한계를 느꼈다. 나이가 들수록 더욱 꼼꼼해져야 하는데, 오히려 실수가 늘어나는 것 같아 속상했다.

함께하는 여행의 의미

지금까지 나 혼자 계획하고 실행했는데, 지금부터는 집사람도 계획하는 것부터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로 하면서 오늘 하루를 마무리했다.

은퇴 후의 여행이란 젊은 시절의 그것과는 다르다.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예전 같지 않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소중한 것들을 발견하게 된다. 함께 나누는 기쁨과 서로를 의지하는 마음, 그리고 시간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오늘 겪은 작은 시련들도 혼자였다면 훨씬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집사람이 옆에서 위로해주고 함께 해결책을 찾아주니 그 어떤 어려움도 견딜 만했다.

30년 전 그 젊은 출장자가 꿈꾸던 여행과 지금 은퇴한 후의 여행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그때는 시간이 무한정 있다고 생각했고, 모든 것이 가능할 것 같았다. 지금은 시간의 유한함을 절실히 느끼면서도, 그렇기 때문에 더욱 간절하고 소중한 순간들을 만들어가고 있다. 매 순간이 더욱 값지고 의미 있게 다가온다.

사라진 Hotel De Moulin처럼 많은 것들이 변하고 사라져갔지만, 몽마르트 언덕의 풍경처럼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이 모든 경험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동반자가 있다는 것이다. 오늘 화가가 그려준 우리의 모습처럼, 우리는 서로에게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 되어주고 있다.

내일은 또 어떤 새로운 경험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예상치 못한 시련들도 있겠지만, 그것마저도 우리 인생의 소중한 한 페이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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