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 밝아오면서 호텔 창가로 스며드는 노르웨이의 아침 햇살이 마음을 설레게 했다. 어제의 여행이 가성비 좋은 하루였던 만큼, 오늘도 그런 기대감을 안고 일찍 호텔을 나섰다. 남쪽으로 가는 긴 여정이 기다리고 있지만, 그 길 위에서 만날 브릭스달 빙하가 우리를 부르고 있었다.
브릭스달 빙하로 향하는 길
호텔에서 브릭스달 빙하까지는 61킬로미터, 구글 지도상으로는 한 시간 남짓 걸린다고 나왔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미루어 두 시간은 넉넉히 잡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제대로 속도를 내며 달리기보다는, 아름다운 풍경이 눈에 띄면 잠시 차를 세우고 그 순간을 만끽하는 것이 우리만의 여행 방식이 되어버렸으니까 말이다.
차창 밖으로 흘러가는 노르웨이의 대자연은 여전히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다웠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달리다 보니, 이 땅에 살았던 바이킹들의 강인함이 어디서 나왔는지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이런 험준한 땅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이니, 거친 바다를 건너 먼 땅까지 탐험할 수 있는 용기와 체력을 갖출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브릭스달 빙하, 시간이 만든 거대한 조각품
브릭스달 빙하에 도착하자, 빙하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곳까지 가는 두 가지 방법이 있었다. 6인용 전동카트를 이용하거나 걸어서 올라가는 것. 우리는 체력을 아껴야 한다는 현실적인 판단으로 왕복 전동카트 티켓을 구입했다.
이 빙하는 요스테달스브렌(Jostedalsbreen) 국립빙원의 일부로, 노르웨이 본토에서 가장 큰 빙원에서 흘러내린 빙하 중 하나이다.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전반까지 소빙하기 동안 가장 컸던 이 빙하는, 마치 거대한 푸른 뱀처럼 산골짜기를 따라 흘러내리고 있었다.
전동카트를 타고 올라가는 길, 거대한 폭포가 우리를 맞이했다. 산 높은 곳에서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가 워낙 세차서, 바위에 부딪혀 흩어지는 물보라만으로도 온몸이 젖을 정도였다. 그 물보라 속에서 느껴지는 자연의 웅장함 앞에 우리는 한없이 작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전동카트는 산 중턱에서 우리를 내려주었다. 우리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경이로웠다. 저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빙하는 마치 지구가 우리에게 선사하는 하얀 선물 같았다. 아래쪽에는 빙하에서 녹아내린 물이 모여 만든 작은 호수가 있었는데, 그 푸른 물빛이 하늘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하지만 브릭스달 빙하 소개 글에서 알려준 이야기는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브릭스달 빙하도 다른 빙하들과 마찬가지로 매년 조금씩 그 규모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었다. 구체적인 수치는 제시하지 않았지만,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빙하가 녹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는 현실이 가슴을 아프게 했다.
빙하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물을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숨을 조심스럽게 쉬게 되었다. 내가 내뿜는 이산화탄소가 저 아름다운 빙하에게 조금이라도 해를 끼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우리가 여행을 통해 얻는 기쁨과 감동 뒤에는 이런 환경에 대한 책임감도 따라온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 순간이었다.
왕복 티켓을 구입했지만, 내려갈 때는 걸어서 내려가기로 했다. 올라올 때 안전장치가 전혀 없는 전동카트가 조금 위험해 보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그 아름다운 폭포를 제대로 사진에 담고 싶었기 때문이다. 올라올 때는 카트가 쉬지 않고 달렸기 때문에 제대로 된 사진을 찍을 수 없었던 아쉬움이 있었다.
예상치 못한 긴 여정
빙하 관광을 마치고 송달 쪽으로 목적지를 입력하니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다. 약 4시간이라는 시간이 나온 것이다. 오늘 묵을 호텔을 입력해봐도 3시간 반이 걸린다고 나왔다. 직선거리로는 61킬로미터에 불과한데 실제 운전 거리는 190킬로미터가 넘는다니, 뭔가 크게 잘못된 것 같았다.
온달스네스에 온 첫날 이미 경험했던 일이지만, 이곳에서는 직선거리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이미 한번 실감했다. 어젯밤 호텔을 예약할 때도 분명히 이동 소요 시간을 확인하고 예약했는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모르겠다. 아내와 몇 번을 확인하고 재입력해봐도 결과는 같았다.
결국 지금 출발해도 호텔에는 저녁에야 도착할 수 있다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방법이 없으니 마음을 진정하고 출발하는 수밖에.
노르웨이의 험준한 지형을 체감하다
큰 산이 가로놓여 있어서 그렇게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이었다. 산 위쪽으로 둘러서 운전하면서 보니, 마치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장관이 펼쳐졌다. 구름 속을 지나 정상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오는 코스였는데, 구름 속을 지날 때는 시야가 10미터도 되지 않을 정도였다.
긴 호수 주위를 돌아서 가고, 또 다른 산을 넘어가고, 마치 자동차 운전 연수에서 배우는 Z자 코스처럼 구불구불한 길이 끝없이 이어졌다. 그리고 긴 터널들을 지나갔다. 가장 긴 터널이 9킬로미터나 되었고, 조금 가니 또 터널이 나타났다. 이렇게 호텔까지 가는 동안 크고 작은 터널을 무려 7개나 지났다.
노르웨이라는 나라가 정말 산과 호수의 나라라는 것을 온몸으로 실감했다. 브릭스달 빙하에서 발레스트란에 있는 호텔까지는 완전한 S자를 그리며 달리는 구간이었다. 이런 험준한 지형에서 살아온 바이킹족이 강할 수밖에 없었던 환경적 배경을 오늘 여정에서 절실하게 느꼈다.
이 험준한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며 살아온 사람들이 그 산을 뚫어 터널로 만들었다는 것도 놀라웠다. 그 터널도 우리가 국내에서 보는 터널과는 차원이 달랐다. 우리는 터널 공사를 할 때 흙을 파내지만, 이들은 단단한 돌을 깨내야 한다. 지금까지 본 모든 터널의 벽과 천장이 모두 바위로 되어있었던 것이 그 증거였다. 노르웨이 사람들의 끈기와 의지력이 어디서 나오는지 알 것 같았다.
작은 실수, 큰 걱정
이번 여행에서 오늘 가장 많이 운전을 했다. 힘들게 긴 거리를 달려 호텔에 도착해서 저녁을 먹고, 오늘의 여행 일지를 쓰려고 노트북을 꺼내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노트북 충전기를 어젯밤 투숙했던 호텔에 두고 온 것이었다.
가슴이 쓰렸다. 내가 미처 확인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밀려왔다. 항상 호텔을 떠날 때는 나와 아내가 각각 한 번씩 빠뜨린 물건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우리의 습관인데, 책상 위에 콘센트가 없어서 노트북 충전기를 책상 밑에 꽂아놓고 있었던 탓에 두 사람 모두의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이다.
조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충전기 세 개를 가져왔는데, 잃어버린 것이 가장 용량이 크고 성능이 좋은 것이었다. 휴대폰 충전기로 노트북을 구동할 수 있을지 몹시 걱정스러웠다. 여행 일지는 매일매일 써야 조금 더 생생하게 기록할 수 있는데, 이런 작은 실수가 여행의 기록을 방해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하지만 여행이란 원래 예상치 못한 일들의 연속이 아닌가. 때로는 이런 작은 실수들조차 나중에는 웃으며 추억할 수 있는 에피소드가 되기도 한다. 휴대폰 충전기에게 "힘내라"고 응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이것도 여행의 일부라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오늘 하루 브릭스달 빙하에서 만난 자연의 웅장함과, 노르웨이의 험준한 지형을 온몸으로 체험한 여정, 그리고 작은 실수로 인한 걱정까지. 모든 것이 여행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소중한 경험들이었다. 내일은 또 어떤 이야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휴대폰 충전기의 분발을 기대하며, 오늘의 여정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