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6시, 도전의 시작
이번 여행에서 가장 험난한 코스라고 알려진 트롤퉁가 등반을 앞두고, 밤새 마음은 설렘과 걱정 사이를 오갔다. P2 주차장에서 P3까지 가는 셔틀버스를 미리 예약하려 했지만, 해외 결제의 벽에 부딪혔고, 체크인 시 호텔 직원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이미 늦은 시간이라 불가능하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대신 그는 친절하게 조언해 주었다. "6시부터 조식이 준비되니 일찍 드시고 가시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우리는 그 조언을 따라 식당 문이 열리자마자 서둘러 아침을 해결하고 트롤퉁가를 향해 출발했다. 7시가 채 되기 전에 P2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 이슬비가 가볍게 내리는 날씨 탓에 평소보다 여행객이 많지 않았다. 다행히 7시 첫 셔틀을 탈 수 있었지만, 등반용 스틱을 대여해주는 렌탈샵은 아직 문을 열지 않은 상태였다. 스틱의 필요성을 절감하며 렌탈샵이 문을 열기를 기다리다 보니, 7시 20분 셔틀버스에 탑승하게 되었다.
자연의 설계도
셔틀버스를 기다리며 주변을 둘러보던 중, 멀리 산꼭대기에서 이어져 내려오는 거대한 파이프라인이 눈에 들어왔다. 궁금해서 주변 사람에게 물어보니, 산 위 호수의 물을 이용해 수력발전을 하기 위한 수로라고 설명해 주었다. 노르웨이의 지형적 특성을 활용한 친환경 에너지 시설이었다. 피오르드와 높은 산맥으로 이루어진 이 나라는 일찍부터 수력발전을 주요 에너지원으로 활용해왔다고 한다. 자연과 인간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모습을 보며, 이곳 사람들의 지혜로운 삶의 방식에 감탄했다.
셔틀버스에 몸을 맡기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18% 경사의 구불구불한 산길을 셔틀버스는 능숙하게 오르기 시작했다.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거친 바위들과 끝없이 펼쳐진 황량한 풍경을 보며, 만약 이 길을 걸어서 올라갔다면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7시 30분, P3 지점에 도착하자 본격적인 등산이 시작되었다.
암반 위의 순례
끝없이 펼쳐진 암반 위를 묵묵히 걸어 나갔다. 트롤퉁가로 향하는 길은 마치 달 표면을 걷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황량하고 신비로웠다. 같은 셔틀버스로 올라온 벨기에 청년들과 자연스럽게 대화가 시작되었다. 총 25명으로 구성된 그들의 일행은 5일 동안 무려 100km에 가까운 거리를 하이킹하며,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고 했다. 젊음의 에너지가 넘치는 그들과 함께 걷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한참을 걸어왔다.
중간쯤 왔을까, 우리와 반대 방향으로 내려오는 일행과 마주쳤다. "벌써 내려오시나요?" 하고 물었더니, 어젯밤 산에서 야영을 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저 멀리 작은 점처럼 보이는 야영 텐트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도 왕복 10시간 이상의 긴 산행이 부담스러워 1박 야영을 고려해 보았지만, 일기예보에서 밤 최저기온이 4도라고 예고한 상황에서 해발 1,100미터의 산속은 영하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았다. 게다가 식사 준비와 기타 야영 장비까지 고려하니 무리가 될 것 같아 당일 산행을 선택한 것이었다.
신화 속 거인의 혀
이슬비가 가볍게 내리는 날씨는 오히려 등반하기에 좋았다. 지루할 정도로 계속 걸어가던 중, 저 멀리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드디어, 그토록 기대했던 트롤퉁가에 도착한 것이었다.
트롤퉁가(Trolltunga)는 노르웨이어로 '거인의 혀'라는 뜻이다. 약 1만 년 전 빙하기가 끝나면서 빙하의 침식작용으로 형성된 이 바위는 수직 절벽에서 수평으로 약 10미터가량 튀어나온 모습이 마치 거인이 혀를 내민 듯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하르당에르 피오르드를 내려다보는 해발 1,180미터 지점에 위치한 이 자연 조각품은 2010년 이후 소셜미디어를 통해 알려지면서 세계적인 관광명소가 되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양한 포즈로 인증샷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중에는 보는 이로 하여금 아찔함을 느끼게 하는 위험한 포즈를 취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내가 먼저 사진을 찍고 나서는 나에게도 인증샷을 찍으라고 강하게 권했다. 나도 줄을 서서 기다리며 트롤퉁가 바위를 자세히 살펴보니, 생각보다 넓어서 바위 위에 올라서면 아래가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극심한 공포감은 없을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날씨가 주는 시련
쉐락볼트 갈 때는 최대한 가볍게 가자는 원칙 하에 대금도 가져가지 않았다. 그런데 트롤퉁가는 거리는 멀지만 기술적으로 어려운 구간이 많지 않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번에는 대금을 가지고 갔다. 이 특별한 장소에서 대금을 불어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날씨가 도와주지 않았다. 보슬비가 계속 내리고 바람도 차가웠다. 8월인데도 손이 시려웠다. 그래도 그냥 내려가기엔 너무 아쉬워서, 모든 사람들이 열광하는 유명한 트롤퉁가 바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작은 바위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대금을 꺼내 소리를 내어보니 영 아니었다. 내리는 비로 인한 습도 때문에 청이 느슨해지고, 추운 날씨에 손가락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힘들게 여기까지 왔는데, 정작 중요한 순간에 날씨가 발목을 잡았다. 일기예보에서는 오후 5시경 소낙비가 내릴 것이라고 예보했고, 흐린 날씨에 추위까지 더해져 우리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오래 머물지 못한 채 하산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자연이 빚어낸 예술품
트롤퉁가는 정말이지 자연이 빚어낸 신기한 조각품이었다. 내 머릿속에는 이런 멋진 자연의 예술품을 누가 처음 발견했을까, 그리고 어떻게 이런 오지를 세계적인 관광지로 개발할 수 있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끊이지 않았다.
트롤퉁가의 발견과 개발에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숨어 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이곳은 극소수의 현지인들만 알고 있는 비밀스러운 장소였다. 본격적인 관광지로 알려진 것은 2000년대 들어서부터였고, 특히 2010년 이후 인스타그램과 같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 세계에 알려지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되었다. 현재는 연간 10만 명 이상이 찾는 노르웨이 최고의 하이킹 명소가 되었다.
P2 주차장에서 트롤퉁가까지의 거리는 총 13.5km에 달한다. 우리는 셔틀버스를 타고 P3에서 시작해서 사방이 온통 암반으로 뒤덮인, 마치 다른 행성 같은 풍경 속을 왕복 20km를 걸어서 트롤퉁가에 다녀왔다. 만약 트롤퉁가라는 목적지가 없었다면 아무도 찾지 않았을 그런 황량한 곳이었다.
성취감과 자신감
무사히 P3에 도착해서 셔틀버스를 타고 P2로 돌아와 스틱을 반납했을 때, 마음속에는 '내가 해냈구나' 하는 성취감과 함께 자신감이 차올랐다. 많은 걱정을 안고 시작했고 날씨까지 도와주지 않았지만, 총 9시간에 걸친 긴 산행을 무사히 마쳤다.
조금도 뒤처지지 않고 젊은 벨기에 청년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산행을 완주하고 나니, 2년 전 두 다리를 다치고 위축되어 있던 마음이 조금씩 회복되는 것을 느꼈다. '과연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있었지만, 노르웨이 3대 트레킹 코스를 성공적으로 완주한 지금, 내 안에 잠들어 있던 도전 정신이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예비로 남겨둔 내일 하루는 이제 홀가분한 마음으로 노르웨이의 또 다른 숨은 보석을 찾아 나설 수 있을 것 같다. 트롤퉁가에서 만난 차가운 바람과 이슬비,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견뎌내고 얻은 성취감은 오래도록 가슴 깊은 곳에 따뜻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때로는 계획했던 모든 것이 완벽하게 이루어지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그 과정에서 얻는 것들이 결과보다 더 소중할 수 있다는 것을 트롤퉁가는 가르쳐 주었다. 자연 앞에서 인간은 작은 존재이지만, 그 작은 존재가 품고 있는 의지와 열정은 어떤 시련도 이겨낼 수 있다는 믿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소중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