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만에 글을 적어봅니다.
1. 1만 불의 기적, 그리고 남겨진 질문
나는 제3공화국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한창이던 시대에 유년과 청춘을 보냈다. 그 시절, 우리 세대의 정신적 기초를 닦아준 것은 다름 아닌 '가난으로부터의 탈출'이었다. "국민소득 1만 불만 달성하면 우리도 선진국이 될 수 있다"는 구호는, 주린 배를 움켜쥐고 내일을 향해 뛰게 만드는 종교와도 같은 믿음이었다. 땀 흘려 일하면 언젠가 우리도 세계 속에서 당당히 어깨를 펼 수 있으리라는 희망 하나로 견뎌온 세월이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흘러, 현재 대한민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3만 5천 불을 웃돌고 있다. 수치로만 본다면 우리는 분명 그토록 염원하던 선진국의 반열에 올랐다. 반만년의 유구한 고전 문화를 자랑할 뿐만 아니라, K-Pop과 한국 드라마는 전 세계인의 일상을 파고들었다. BTS가 광화문에서 펼친 공연은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3억 명에게 생중계되며 찬사를 받았다. 화려한 지표와 찬란한 문화의 수출국, 우리는 분명 물질적 풍요의 정점에 서 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진정 선진국인가? 대한민국 국민은 세계 시민으로서 존경받고 있는가?
나는 아직 이 질문에 선뜻 "예"라고 대답하지 못한다. 세상을 향해 묻기 전에 나 자신을 먼저 돌아보게 되기 때문이다. "나 자신은 선진국 국민으로서 존경받을 만한 인격과 교양,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품격을 갖추었는가?" 이 엄중한 질문 앞에서 한없이 부끄러워지는 탓이다. 과거 내가 글을 통해 세상에 화두를 던졌듯, 죽은 이론이 아닌 생생한 삶의 현장 속에 늘 진짜 답이 존재한다. 우리의 삶이라는 현장에서, 우리는 경제적 풍요에 걸맞은 내면의 성숙을 이루어내고 있는지 뼈아프게 성찰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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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종교는 무엇인가: 세계의 비극 앞에서의 침묵
눈만 뜨면 들려오는 것은 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참혹한 사건과 사고의 소식들이다. 4년동안 지속되는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은 이제 뉴스거리도 안된다. 그리고 중동의 먼 나라, 이란에서 들려오는 비극은 참담하기 그지없다. 정확한 집계조차 어렵지만, 시위 과정에서 무려 3만 명 이상의 무고한 국민이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그들은 대체 왜,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자신의 목숨을 잃어야만 했는가. 이란은 종교적 교리가 국가를 통치하는 신정국가이다. 신의 이름으로 3만 명이 넘는 자국민에게 총구를 겨누고 죽음으로 내모는 것이 과연 신의 뜻이란 말인가. 자유와 인간다운 삶을 위해 목숨까지 바쳐가며 거리에서 피 토하듯 외치던 그들의 절규는 이대로 스러지고 말 것인가. 정녕 죽음을 맞이해야 할 만큼 그들의 외침은 가치 없는 것이었단 말인가.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를 핑계 삼아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을 향해 공격의 빗장을 풀고 있다. 연일 유전을 비롯한 기간 산업이 파괴되고, 어느 지도자가 참수되었다는 핏빛 소식만이 활자화되어 세상을 떠돈다. 도대체 이 세상에 사람의 목숨보다, 한 개인의 존엄보다 소중한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이토록 세상이 시끄럽고 전쟁의 참화 속에서 사람들이 죽어가는데, 평화와 자비를 외치던 종교인 성직자들은 왜 말이 없는가. 지구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잘 조직된 종교의 수장, 가톨릭 교황의 눈에는 3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는 저 참담한 현실이 보이지 않는 것일까.
심산유곡 깊은 사찰에 앉아 오랜 시간 용맹정진하시는 스님들께도 묻고 싶다. 세상의 아픔을 등진 채 그저 내면의 고요를 찾는 참선만 열심히 수행한다면 그것으로 종교인의 임무를 다한 것인가. 매주 일요일, 화려한 예배당에 모인 수많은 교인 앞에서 평화와 사랑을 소리 높여 외치는 목사님들께도 묻고 싶다. 당신들이 말하는 진정한 평화는 대체 무엇인가. 그토록 따뜻하고 자애로운 말씀 이면에 자리한 이 현상들은, 동업자 정신에서 비롯된 철저한 침묵인가,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외면인가, 아니면 지독한 위선인가. 진정한 종교란 고통받는 현장 한가운데서 그들과 함께 눈물 흘리는 것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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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상실의 시대, 우리가 가꾸어야 할 내면의 민주주의
1980년대 중반, 젊은 날의 나는 피가 끓는 심정으로 퇴근 후 대구 동성로로 나갔다. 그곳에서 수많은 사람과 함께 부르짖으며 민주주의를 외쳤다. 수많은 피와 땀방울이 모여 마침내 얻어낸 민주주의를, 우리는 마음껏 누리며 지난 40여 년을 참으로 행복하고 자유롭게 살아왔다.
그러나 현역을 떠나 멀리서 바라보는 지금, 나의 눈에는 그렇게 소중히 지켜온 민주주의가 하나씩 망가져 가는 현실이 보일 뿐이다. "민주주의는 이제 고쳐 쓸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다"는 피터 틸(Peter Thiel)의 차가운 한마디가 소름이 돋도록 가슴에 와닿는 요즘이다.
나는 성장기에 "1인당 국민소득 1만 불"이라는 구호를 가슴 깊이 간직한 채, 단지 잘살아보겠다는 일념으로 앞만 보고 열심히 살아왔다. 그러나 인생의 황혼녘에 이르러, 고쳐 쓸 수 없을 만큼 민주주의가 망가졌다는 뼈아픈 현실과 전 지구적인 인간성의 상실은, 1만 불이라는 과거의 염원보다 자꾸만 더 크고 날카롭게 내 가슴을 찌른다. 이 깊은 상실감과 아픔을, 나와 우리 세대는 어떻게 이겨내야 할까.
이제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명백해 보인다. 한 나라의 국격(國格)은 경제 지표와 한류 열풍만으로 증명되는 것이 아니다. 시민 개개인의 교양과 인격, 그리고 고통받는 이웃을 향해 기꺼이 손을 내밀 수 있는 성숙함이 진정한 '선진 시민'의 조건이다. 제도의 민주주의가 무너져 내리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우리 내면의 민주주의와 타인을 향한 존중만큼은 결코 무너져서는 안 된다.
이 글은 나 스스로를 향한 뼈아픈 반성문이자, 나와 함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웃들에게 띄우는 편지다. 비록 당장 세상을 바꿀 수는 없을지라도, 우리 각자가 삶의 자리에서 선진국 국민으로서 부끄럽지 않은 내면을 가꾸기 위해 노력할 때, 비로소 세상은 조금씩 품격을 되찾을 것이다. 자극적인 구호보다 부드러운 성찰이, 이기적인 침묵보다 따뜻한 연대가 우리의 텅 빈 마음을 채워줄 것이라 굳게 믿는다. 그렇게 우리의 현장에서 찾은 작은 답들이 모여, 진정으로 아름답고 존경받는 대한민국을 만들어가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