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틀 귀 호강: 일상이라는 현장에 내려앉은 봄날의 선

by 이 범수

때로는 쉼 없이 땀 흘리며 달려온 삶의 굽이마다, 음악이라는 따뜻한 위로가 스며들어 우리의 팍팍한 마음을 다독이곤 합니다. 쫓기듯 바쁘게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온전히 귀를 기울였던 지난 이틀은, 내 영혼에 맑은 물을 내어주는 진정한 ‘귀 호강’의 시간이었습니다.

그 첫 번째 설렘은 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방에서 열린 단국대학교 일반대학원 국악과 정기 연주회였습니다. 현재 내가 몸담고 있는 화성 시민합창단의 지휘자님께서 국악 지휘 박사과정을 수료하시고 서는 무대였기에, 그 식지 않는 배움의 열정이 시작 전부터 가슴을 뭉클하게 했습니다.

늘 궁금해하던 풍류사랑방은 참으로 아담하면서도 우리 고유의 단아한 멋을 오롯이 품은 공간이었습니다. 150석 규모의 작은 연주 홀은 연주자의 숨소리와 손끝의 떨림, 그리고 악기가 내뿜는 나무의 질감까지 고스란히 느낄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더 많은 이들과 이 훌륭한 무대를 나누지 못하는 아쉬움이 남을 만큼, 공간이 주는 친밀감은 음악의 깊이를 한층 더했습니다.

무엇보다 나의 시선과 마음을 온전히 빼앗은 것은 대금 산조였습니다. 서툰 솜씨나마 틈틈이 대금을 입술에 대고 나의 숨결을 불어넣으며, 훗날 낯선 여행지의 거리에서 사람들과 선율을 나누는 소박한 버스킹의 꿈을 꾸고 있기에 그 무대는 더욱 각별했습니다. 명인의 입김이 만들어내는 그 애절하고도 기품 있는 소리에, 나는 숨소리조차 낼 수 없는 무아지경에 빠져들었습니다. 난생처음 마주한 양금 연주는 밤하늘의 은하수가 쏟아져 내리는 듯 신기하고도 화려한 선율로 나를 매료시켰고, 국악 관현악의 장엄한 울림 위에 얹어진 판소리 '심청'은 과연 우리 음악의 백미라 부를 만큼 가슴 벅찬 카타르시스를 선사했습니다.

전통의 가락에 흠뻑 취했던 밤이 지나고, 다음 날은 오랜 세월 삶의 여행을 다정하게 함께 걸어온 아내와 나란히 수원시립합창단의 제193회 정기 연주회를 찾았습니다. 부부가 함께 정기적으로 합창의 향연을 누리는 이 시간은, 소박한 일상 속에서 우리 부부가 가장 기다리는 순간 중 하나입니다.

‘봄날의 플레이 리스트’라는 다정한 주제로 막을 올린 무대는, 겨우내 언 땅을 뚫고 피어나는 새싹처럼 생기 넘치고 아름다운 화음으로 객석을 따뜻하게 물들였습니다. 특히 몇몇 봄 노래들은 내가 합창단에서 단원들과 직접 입을 맞추어 불렀던 익숙한 곡들이었습니다. 악보 위를 헤매며 연습하던 나의 지난 시간들이 무대 위의 완벽한 하모니와 겹쳐지며, 음악은 한층 더 진한 감동으로 밀려왔습니다.

어제는 한과 흥이 어우러진 우리의 가락이 영혼의 깊은 곳을 묵직하게 울렸다면, 오늘은 봄바람처럼 화사한 서양의 화음이 얼어붙은 마음을 부드럽게 녹여주었습니다. 평생을 '죽은 이론은 책 밖에 있고, 진짜 답은 생생한 현장에 있다'는 믿음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때로는 이렇게 아름다운 음악이 흐르는 연주회장이라는 현장 속에서, 우리는 삶의 찌든 때를 씻어내고 가장 완벽한 위로와 해답을 얻기도 합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의 오늘 하루에도, 귓가를 간질이는 봄바람처럼 마음을 안아주는 작고 아름다운 선율이 함께하기를 소망합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살아내는 우리의 삶은, 그 자체로 이미 훌륭하고 눈부신 하나의 합창곡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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