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풍요의 이면에 자리한 '적당주의'
가난을 벗어나는 것이 온 국민의 지상 과제였던 시대, 우리의 가슴속에는 배고픔에서 벗어나자는 간절한 구호가 훈장처럼 새겨져 있었다. 그 험난하고 고단했던 인고의 시간을 지나, 마침내 우리는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괄목할 만한 성취를 이루어냈다. 배고픔의 기적을 훌쩍 뛰어넘어 3만 5천 불이라는 풍요로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이 화려한 외형 앞에서 나는 스스로에게, 그리고 우리 사회를 향해 끝없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우리는 과연 선진국 시민으로서 존경받을 만한 내면의 인격과 질서 의식을 갖추었는가?"
때로는 학창 시절 동경의 대상이었던 선진국들의 사회상과 우리의 일상을 가만히 비교해 보며, 그들의 삶 속에 스며든 성숙한 문화를 우리가 어떻게 배워야 할지 사색에 잠기곤 한다. 진정한 선진국은 화려한 통계 숫자나 웅장한 건축물로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매일 걷는 길거리와 일상의 사소한 약속 속에서 비로소 완성되기 때문이다.
2. 길을 잃은 질서와 회색빛 타협
얼마 전, 시골 산소에 다녀오는 길에 서울에서 근무하는 조카를 오산역에 데려다준 적이 있다. 역 근처에서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따라가던 중, 마주 오는 차량을 발견하고 순간 크게 당황했다. '내가 일방통행로를 역주행하고 있는 것인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황급히 길옆 빌라 주차장으로 차를 피했다. 마주 오던 차량을 보내고 나서야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살펴보니, 내가 달리고 있던 길은 분명 2차선 도로였다. 그러나 다가오는 반대편 차선 전체가 마치 거대한 주차장처럼 불법 주차된 차량으로 가득 메워져 있었다.
답답한 마음에 귀가하자마자 국민신문고에 민원을 넣었다. 얼마 후 돌아온 관할 당국의 답변은 짐작했던 대로였다. 주변에 차량이 너무 많아 일일이 단속할 경우 빗발치는 민원을 감당할 수 없어 어쩔 수 없다는, 지극히 행정 편의적이고 회색빛 섞인 대답이었다. 나는 즉시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그렇다면 차라리 그곳을 정식 주차장으로 지정하든지, 아니면 강력한 단속을 통해 본래의 목적대로 차량이 통행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 역시 다른 민원이 두려워 현행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법과 원칙을 세우기보다는, 운전하는 시민들이 알아서 적당히 눈치껏 피해 가며 살아가라는 암묵적인 타협이었다.
이러한 '적당주의'는 지난여름 노르웨이 여행에서 목격했던 풍경과 뼈아프게 대비되었다. 당시 예약했던 호텔에는 자체 주차장이 없어 도로변 유료 주차장을 이용해야 했다. 호텔 프런트 직원은 저녁 7시부터 다음 날 아침 8시까지만 주차를 허용하며, 단 1분이라도 시간을 어기면 CCTV를 통해 가혹할 만큼 엄청난 과태료가 부과된다고 힘주어 경고했다. 나는 정확히 규칙을 지키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차를 이동시켜야 했다.
우리 주변의 일상도 다르지 않다. 내가 사는 아파트 역시 주차 공간이 부족해 일부 통로에 한하여 '저녁 7시부터 아침 9시까지' 야간 주차를 허용한다는 안내문이 크게 붙어 있다. 그러나 이웃과 나눈 공동의 약속임에도 불구하고, 일부 사람들은 본인의 편의만을 위해 퇴근 직후인 6시부터 버젓이 그곳에 차를 댄다. 바로 앞에 빈 주차 공간이 있음에도 걷기 편하다는 그리고 주차하기 편하다는 이유만으로 얌체 주차를 하는 것이다. 그 한 사람의 이기심 때문에 다른 이웃들은 비어 있는 공간에 차를 대기 위해 곡예를 하듯 조심조심 운전대를 꺾어야만 한다. 약속을 가볍게 어기는 작은 이기심이 모여, 결국 우리 모두의 삶을 피곤하게 만들고 있다.
3. 지식의 무게와 인성의 부재 사이에서
지하철을 타면 분홍색으로 칠해진 임산부 배려석을 흔히 볼 수 있다. 생명을 잉태한 사회적 약자를 위해 공간을 비워두는 이 제도를 볼 때면, 이런 세심한 배려를 기획한 분들의 따뜻한 마음에 깊은 감탄을 하게 된다. 다행히 많은 시민이 그 자리를 기꺼이 비워두는 성숙함을 보여준다.
그러나 종종 그 아름다운 배려의 공간은 몰지각한 소수에 의해 무참히 무너진다. 임산부인지 겉으로 판별하기 어려운 초기 임산부들을 위해 산부인과에서 표찰을 배부하는 좋은 제도도 생겼다. 하지만 누가 보아도 임신부 표찰이 없고, 심지어 연세가 지긋하신 분들조차 아무렇지 않게 그 자리를 차지하곤 한다.
어느 날 지하철에서 우연히 마주친 풍경은 내게 깊은 씁쓸함을 안겨주었다. 자리가 없어 빈 임산부 배려석 앞에 서서 가고 있던 찰나, 모 대학의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점퍼를 입은 한 여학생이 전동차에 오르자마자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그 자리에 털썩 앉는 것이 아닌가. 아무리 살펴보아도 임산부의 징후나 표찰은 찾아볼 수 없었다.
법을 공부하는 지성인. 훗날 판사나 검사, 변호사가 되어 우리 사회의 시시비비를 가리고 정의를 수호하길 꿈꾸는 청년일 것이다. 그러나 법이라는 엄중한 잣대를 다루기에 앞서, 타인을 향한 따뜻한 시선과 기초적인 도덕이 먼저 자리 잡아야 하지 않을까.
임산부 배려석이라는 작은 사회적 약속조차 지키지 못하는 사람이 법률 지식만을 무기로 삼아 사회의 법을 집행하게 된다면, 그것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일이다. 우리의 교육 시스템이 전인적인 인격을 갖춘 참된 인간을 길러내지 못하고, 그저 법률을 다루는 기술자나 인체를 수리하는 의료 기능공만을 양성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깊은 회의감이 밀려왔다. 법학대학원은 부디 지식만 주입하는 기능공 양성소가 아니라, 타인의 아픔에 공감할 줄 아는 성숙한 인성을 갖춘 참된 지식인을 길러내 달라는 간곡한 부탁이다.
4. 일상 속에서 완성되는 선진국의 꿈
죽은 이론보다는 우리가 두 발 딛고 선 현장 속에 늘 살아있는 답이 존재한다. 진정한 선진 사회를 완성하는 핵심 소프트웨어는 넷플릭스를 달구는 화려한 문화 콘텐츠나 3만 5천 불이라는 경제적 지표에 있지 않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양심을 지키고, 공동체의 질서를 존중하며,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시민 개개인의 성숙한 인격에 달렸다.
편의를 위해 불법과 '적당히' 타협하지 않는 용기, 아무도 보지 않아도 선을 지키는 단호함, 그리고 나와 관계없는 타인을 위해 기꺼이 내 자리를 비워둘 수 있는 넉넉함. 이 사소하고도 위대한 일상의 약속들이 하나둘 지켜질 때, 비로소 우리는 세계 속에서 진정으로 존경받는 선진 시민으로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을 바꾸는 가장 위대한 혁명은 결국, 오늘 내가 지키는 작은 질서 하나에서부터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