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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케 Dec 02. 2022

3. 세 번째 직장(교사가 되다)

노마드 직장인의 세상살이

3. 세 번째 직장


첫 직장이 중요하다는 말이 있다.

처음엔 그 말이 크게 와닿지 않았는데 시간이 갈수록 이해가 된다. 다음 직장을 구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하는 것이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인가?'이고 나이가 들 수록 새로운 도전은 어렵게 느껴지니까. 그래서 계속 비슷한 직종으로 경력을 쌓아가는 게 보통인데 이 시기의 나는 새로운 길을 찾기로 했다.


비록 마케터로 첫 발을 떼었으나 좋아하지 않는 상품을 가식적으로 홍보해야 한다는 것에 회의감을 느꼈던 시기. 취업 사이트에 이력서를 올리고 마케팅을 제외한 업종 중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업무는 뭐든 상관없이 지원했다. 한창 취업에 열을 올리고 있던 그때 한 통의 이메일을 받았다.


[초등영어, 수학 관리 교사 채용 제안합니다.]

이메일을 본 순간 든 생각은 '어라?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라고?'였다.


내 학창 시절 꿈은 내내 선생님이었다. 차분하게 설명하는 것을 잘하는 편이고 어린아이들을 포용하며 예뻐해 줄 자신도 있었다. 비록 고 3 때 대학 입시에 시달리며 현실의 벽을 깨닫고 대충 성적에 맞는 학과로 지원하면서 꿈을 접게 되었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그 꿈이 남아있었나 보다. 선생님이 되기란 정말 힘든 길일 줄만 알았는데 별다른 조건 없이도 교사가 될 수 있다니 참 솔깃한 제안이 아닌가. 고교 수학은 잊힌 지 오래라 부담스러웠는데 학생 연령도 유아부터 초등학생까지였고 게다가 직장 위치도 집에서 멀지 않아 안성맞춤이었다.


'그래. 이거야!' 제안을 수락하고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면접 날짜를 잡았다.

무엇에 홀린 건지 면접관의 인상까지 너무 좋았다. 아니 좋다기보다는 은근히 풍기는 카리스마에서 매력을 느꼈던 것 같다. 면접 후 간단히 업무를 소개해주었다. 크게 어렵지 않으면서 내가 하는 만큼 벌어갈 수 있는 일, 실력에 따라 수익도 천차만별이라는 말에 입사를 결정했고 서울에서 5일간의 교육을 받았다. 교육비는 매일 3만 원씩 지급됐고 교육을 마친 후 지사에 출근해서 동료 선생님들과 함께 개별 트레이닝 시간도 가졌다. 수습기간에는 월급이 30~50만 원 정도로 굉장히 낮은 수준이었으나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기 위해 인내의 시간을 보냈다.


이 정도면 어떤 직업일지 눈치챈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의 세 번째 직업은 바로 어린이 학습지 교사였다. 직접 가정방문을 통해 학습지를 전달하고 아이들에게 자기 주도 학습을 가르치는 일. 어린 시절 많이 했던 구*, 눈높*와 비슷한 계열의 학습지 회사였는데 아이들을 상대하는 일이니 크게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다. 유아들을 많이 만나기 때문에 구연동화처럼 영어 교재 읽기 연습도 하고 교육 시간 분배하는 법, 학부모 상대하는 법, 신규 회원을 영입하는 것까지 익숙해지는데 약 두 달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세 번째 달에 마침내 지역 배정과 수업 과목을 인계받았고 선생님으로서의 삶이 시작됐다. 내가 선생님이라니!


수업 틈틈히 자주 가던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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