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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케 Oct 05. 2022

2. 두 번째 직장

노마드 직장인의 세상살이

2. 두 번째 직장


두 번의 수술 끝에 가까스로 병원을 탈출한 나는 6개월 정도 휴식기를 가졌다. 수술 부위가 아물 때까지 복대를 차고 다니며 배에 힘이 들어가는 무리한 행동도 조심해야 했다. 장협착을 막으려면 매일 1시간 이상 걷기는 필수였기 때문에 왕복 1시간 정도의 주변 동네를 탐색하며 시간을 보냈고, 재발을 막기 위해 식단에도 무척 공을 들였다.


어느 정도 몸이 회복되고 나니 '이대로 멈춰있어도 되나?'라는 생각이 또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병원에 있을 때만 해도 '욕심은 버리자, 건강이 우선이지.' 수없이 다짐했지만 평범한 인간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는 내면의 본능은 멈출 수 없었다.


그래서 가벼운 마음으로 매일 2시간씩 하는 사무보조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복대가 흘러내리지 않도록 꽉 조인 후 출근했고 오리고 붙이기, 간단한 서류작성 등의 잡다한 업무로 소소한 용돈을 벌었다. 직접 겪어보니 사무 업무는 크게 힘을 들이지 않고도 가능했다. 그래서 풀타임으로 근무하는 사무직 직종으로 취업하게 됐다.


그렇게 선택한 두 번째 직장은 스타트업으로 오피스텔 내에 작게 오픈한 부동산이었다. 대중교통으로 20분, 도보로 1시간 정도의 거리라 출퇴근도 용이하고 앉아서 처리할 수 있는 일이라 복부에 무리가 갈 일도 없었다.


아르바이트 개념으로 다녔던 곳이라 급여는 많지 않았지만 9시 출근, 5시 퇴근이라는 조건이 매우 달콤했다. 게다가 식단 조절을 해야 하는 내게 자유로운 식사시간이 주어진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기에 무리 없이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난생처음 해본 혼밥은 꽤 즐거웠다. 근처 시장을 구경하며 간식거리로 배를 채우기도 하고 도시락을 싸와서 먹기도 하고 어디로 갈지, 무엇을 먹을지 정하는 것도 모두 내 자유였다. 덕분에 매일 점심시간을 기대하며 하루를 시작했던 것 같다.


소화를 돕는 식단으로 구성한 점심 도시락


나는 이전 직장 경력을 살려 홍보팀 직원으로 들어갔다. 내가 속한 홍보팀은 부동산 매물을 올리고 고객을 모집하는 일이 주 업무였다. 여기에 얕은 포토샵 지식으로 영업직원들의 홍보 이미지를 디자인하는 일도 포함되었는데 부동산 직종 특성상 남자 직원들이 많은 곳이었고 처음 들어온 여직원이라 모두들 상냥하게 대해주었다.


홍보팀은 영업팀을 도와주는 역할이라는 인식이 있어서인지 사소한 부탁도 조심스럽게 전달하는 매너에 감동하기도 했다. 물론 개중에는 뒷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내 귀에 들리도록 전달하는 사람이 없어서 평온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직장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건 역시 사람. 잔잔하던 일상에 평화를 깨트리는 사람이 등장하면서 회사 전체가 술렁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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