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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케 Sep 28. 2022

1-3. 야근과 술

노마드 직장인의 세상살이

1-3. 야근과 술


술을 가장 많이 마시던 시기는 바로 이맘때쯤이다. 합법적으로 성인이 되자마자 술에 입문했고 저녁 식사 대신 어두운 조명이 있는 저렴한 술집에 가서 안주로 배를 채웠다. 대체로 간도 세고 자극적인 맛이었지만 그 맛에 길들여지니 담백한 음식은 성에 차지 않았다. 그래도 나름 술부심이 있어서 술자리는 빠지지 않고 참석했고 덕분에 친구도 많아졌다. 때론 인사불성으로 주변 사람을 힘들게 했던 기억도 많은 편이라 내 술부심은 그저 근거 없는 생각일 뿐이었던 것 같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나니 친구들을 만나는 시간은 더 늦어졌고 퇴근 후 마시는 맥주 한 잔은 너무나 유혹적이었다. '퇴근 후 맥주 고?!'를 외치며 동네에서 친구들을 만나 매일 일어나는 사소한 이야기들을 공유하고 공부, 취업, 연애 등 그 시절에 나눌법한 대화들은 참지 않고 다 뱉어냈다. 그때의 나에게 스트레스 해소법을 묻는다면 0.01초 만에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대답했을 정도로 유일한 탈출구이자 회복제였다. 이 정도면 알코올 중독이 아닐까 싶겠지만 그런 건 아니었다. 그냥 친구들이 좋았을 뿐.


야근을 하고 나면 그 사이 묵혀뒀던 스트레스를 풀어야 하니 친구들을 만났다. 회사생활이 고되게 느껴질 때에도 그 핑계로 또 친구들을 찾았다. 보통 친구들을 만나는 시간은 빠르면 8시, 늦으면 11시나 자정이 다되어서 만남을 시작한다. 주말엔 밤을 새워 노는 경우도 많았고 잠잘 시간이 줄어드는 건 전혀 아쉽지 않았다.


그 당시 같이 놀던 친구랑 코드가 잘 맞아서 언제든 부르면 서로 달려갔다. '한신포차' 닭발에 꽂혀서 술집에 앉아 같이 지새운 밤이 얼마나 많은지, 직원이 얼굴을 기억해 갈 때마다 서비스를 내주기도 했다.

한참 즐겨먹던 국물닭발


지금이야 야근한 날은 무조건 집에서 쓰러져 자는 게 원칙이지만, 생기발랄한 20대 초반의 나는 체력이 아주 넘쳤다. 게다가 아침보다는 밤에 활력이 생기는 야행성 인간이라 밤을 그냥 보내는 건 왠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달까.


하지만 이렇게 무리한 생활패턴은 오래가지 못했다. 체력이 좋은 편도 아니었거니와 쌓여가는 피로 앞에 장사는 없는 법. 그리고 내 인턴생활은 곧 종지부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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