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시간 울 수 있는 강철 체력
지루한 연휴 기간 동안 킬링 타임용으로 <빨간 머리 앤>을 보고 나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 예전에 만화로 볼 땐 몰랐는데, 이야~ 앤은 애가 너무 말이 많더라. 그냥 요점을 딱 말하면 되는데 혼자 상상력 어쩌고 하면서 너무 길게 장황하게 늘어놓는 게 딱 질리더라고 , 왜 그렇게 말을 많이 하냐고 "
소녀 감성을 자극하는 시리즈 < 빨간 머리 앤>을 보면서 추억 돋는 줄거리에 집중할 수 없던 이유는 이상하리 만큼 주인공 앤의 수다스러운 말투 때문이었다. 그녀가 말을 할 때마다 나는 속으로 '짧게! 그래서 요점이? ' 혼자서 작품 속의 그녀를 다그치며 시청을 했던 것 같다.
종결 편을 향해가면서 시청하면서 문득
'앤은 외롭구나! 외향적이고 수다스러워서가 아니고 그저 오랫동안 스며든 외로움을 토해내고 있구나'라는 연민이 느껴졌다.
'외로운 사람들은 말이 많다? '라는 것이 명제가 될 수 있을는지 논리적으로는 설명하기 어렵지만 , 앤을 보면서 ' 나도 그렇잖아~ 심지어 나는 집에서 밥 먹을 때도 티브이 볼 때도 거울 앞에서도 혼잣말을 하고 있잖아 '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는 외롭잖아. 말하고 싶지만 들어줄 사람이 없었잖아 , 앤도 나와 같은가 봐'
갑자기 드라마 주인공을 생각하다가 나 자신에 대한 생각에 잠겨 있었을 때 그 멋쩍고 지루한 순간을 깨는 소리가 들려왔다
" 우와앙~ 니아앙~ 아아아 아오~~~~ 야오옹"
우리 셋째 만수무강 루비의 울음소리. 사실 울고 있는 건지 고함을 치는 건지 노래를 부르는 건지 모를 그 소리는 24시간 꺼지지 않는 라디오처럼 매일 나의 휴식을 깨곤 했다.
우리 집에 제일 늦게 구조되어 왔을 때부터 3년 넘도록 루비는 시끄럽게 우는 냥이가 아니었다. 눈이 한쪽이 없다는 것과 막내라는 이름 때문인지 늘 주눅들고 다른 고양이를 피해서 이 집에서 '손님'처럼 머무는 고야이었다.
3년이 지난 어느 날부터 루비는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아프다는 거야? 아니면 놀아 달라는 거야... 기분이 좋아서 노래 부르는 거야? '
때로는 이웃이 항의를 할까 걱정스럽다가도 정말 어디가 아픈 게 아닌 게 걱정스럽기도 하고 특히나 밤 시간에 루비가 울면 이웃이 항의를 할까 조바심 내는 밤을 보내곤 했다.
이렇게 소리 내서 우는 것뿐만 아니라 곤히 잠든 다른 고양이를 괜스레 때리기도 하고, 밥을 먹는 고양이 등 뒤로 가서 등을 물기도 하고 루비는 점점 냥 아치스러운 모습으로 자랐고 나의 아픈 고양이들은 그런 루비를 피해서 멀리 달아났다.
그런데 어느 날 반려 동물에 대한 상식을 다룬 프로그램을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원래 고양이는 고양이를 향해 ' 야옹 ' 하면 울지 않는다는 내용 믿기지 않는 말을 듣게 되었다.
'고양이가 서로를 향해 울지 않는다고? 그럼 루비가 내는 소리가 오롯이 나를 향한 것이었다는 거야? '
뭔가 묵직한 것으로 한 대 맞은 것 같은 기분에 루비가 울 때마다 다른 고양이들의 반응을 체크해 봤다.
그가 그저 수다스럽게 짧게 '야옹야옹야오옹" 소리를 낼 때도 , 혼자서 우다다를 하는 순간에 포효하듯이 우렁찬 울을 울 때도 다른 고양이들은 아무도 루비에게 대꾸하지 않았다.. 그리고 루비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루비의 눈 또한 다른 고양이들을 향해 있지 않았고 쉴 새 없이 떠들면서 언제나 나에게 가까이 오려고 했다.
소오름~~~
지난 4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그의 하이톤 노랫소리를 들으면서도
너무 지겨운 생각에 신경질 적으로 루비를 밀어 내기만 했던 나는...
그가 그렇게 4년 동안 ' 나 좀 봐! 내 이야기 좀 들어봐! 나는 외로워 ~ '라고 말하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4년 동안 투명인간 취급하듯이 아무에게도 어떠한 말을 건네 받지 못한 루비
사실 루비는 성격 나쁜 냥아치가 아니라 다정한 외로운 고양이였던 것을 집사는 이제야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