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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JO Aug 11. 2023

07 졸업, 무작정 상경 그리고 외판원


쓸쓸한 졸업이었다. 졸업식에도 가지 않고 몇몇 친구들과 소주를 마시며 신세 한탄을 했다. 

대입 학력고사를 보는 친구들이 마냥 부러웠다. 꿈을 향해 전진하는 그들을 보며 뭔가 돌파구가 필요했다. 졸업도 하기 전에 친한 친구 세 명이서 각자 20만 원씩 돈을 마련하여 서울로 향했다. 서울은 휘황찬란했지만 막상 우리를 반겨주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은 빌딩들, TV 만화 <은하철도 999>처럼 엄청난 속도의 지하철, 바쁘게 뛰어다니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 나 혼자 서울이란 거대한 섬에 꽁꽁 묶여 있는 것 같았다. 나만 빼고 모두가 행복해 보였다. 우리는 여관에서 잠을 자며 틈만 나면 명동을 배회했다. 태어나 처음으로 퍼머도 해보고 나이트클럽도 가보고 아무 생각 없이 놀다 보니 수중의 돈은 금방 바닥이 났다. 


앞으로가 암담했다.   

시골로 다시 내려가 내 주특기를 살려 농사일이라도 해야 할까. 내가 제일 잘하는 것이 어쩌면 농사였다. 그러나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다.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것이 내게는 농촌 일이었다. 며칠을 거의 물만 먹고 지냈다. 처절하게 서울에 남겨진 셋.     

일을 해야 했다. 한동안 청계천 부근 전봇대만 올려다보며 구인 광고를 찾았다. 그렇지만 시골에서 막 올라온 아무 기술도 없는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일자리는 없었다. 며칠을 헤매던 중 전봇대에 붙어 있는 외판원 모집 광고를 보고 전화를 하여 사무실이 있는 7층 건물로 갔다. 잘못 찾아가 쥐도 새도 모르게 팔려 가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셋이 손을 단단히 움켜잡고 사무실로 들어갔다. 사무실은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한쪽에서 우리보다 먼저 온 듯한 사람들이 큰 소리로 뭔가를 계속 떠들어댔다.      

우리는 팀장 앞으로 갔다. 

"너희들 어디서 왔냐?”

"전주에서 왔는데요.” 

다짜고짜 반말이었다. 

"학교는? 중학교는 졸업했냐?” 

"다 상고 졸업했는데요.”

"그럼 됐어. 오늘부터 일해.”

"무슨 일인데요.”

말이 나오기 무섭게 종이 두 장씩을 나눠주며 읽어보고 내일까지 외워오라고 했다. 그곳은 유아용 완구 교재를 판매하는 곳이었다. 태어나서 다섯 살 정도까지 가지고 놀 수 있는 나무로 만든 교재였다. 갓난애가 있는 엄마들을 설득하기 위한 일종의 판매 교본이었다. 


‘몬테소리'라는 이름을 그때 처음 들었다.      

“어머니, 몬테소리는 이탈리아의 의사, 철학자이자 유아교육의 창시자입니다. 사람은 태어나서 세 살 정도가 되면 지능의 거의 전부가 완성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 살까지의 성장 골든타임을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됩니다. 이 교재로 말할 것 같으면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나무로 만들었습니다. 애기가 자연스럽게 만지며 놀기만 하면 시각, 청각, 후각의 각 기능과 더불어 지능이 폭발적으로 발달합니다.”     

그때 외운 내용이었다. 내용이 맞는 말인지 아닌지 우리가 알 바 아니었다. 나도 목이 쉴 정도로 큰소리로 읽기를 반복했다. 내일부터 당장 영업을 시작해야 했으니까.     

 

우리들의 타깃은 명확했다. 아침 일찍 완구 두 세트를 어깨에 둘러메고 무조건 하얀 천 기저귀가 걸린 집을 찾는 것이 첫 번째 목표였다. 두 번째는 어떻게든 문을 열도록 하여 방안으로 진입(?)하는 것이었다. 기저귀가 걸린 집은 대부분 쪽방이었다. 그러나 완구를 사는 것은 고사하고 문을 열어주지 않는 집이 대부분이었다. 그럴 때면 가스 점검을 나왔다고도 하고 신문사에서 나왔다고 둘러대기도 했다. 비록 완구를 구입하지는 않았지만 살을 에는 듯한 그 추위에 문을 열어주며 따뜻한 보리차 한잔을 건네주던 그 한 아주머니의 손길이 얼마나 고맙던지. 


매일매일 하나도 팔지 못하고 사무실로 돌아올 때의 그 무거웠던 발걸음. 금방이라도 내 유아교육에 대한 전문성(?)에 감탄하며 판매 계약서에 서명하려고 할 때는 얼마나 흥분이 되었던가. 그럴 때면 0.1초도 틈을 주지 않고 볼펜을 건네며 다급하게 사인을 요구했다. 그 짧은 순간 아줌마가 이성을 되찾고 사인을 망설이며 남편에게 전화해 보고 결정하겠다고 다이얼을 돌릴 때 그 불길한 심정이란. 남편의 말을 듣고 청천벽력처럼 "다음에 사겠습니다."라고 말했을 때 나는 이미 초주검 상태가 되었다. "이렇게 좋은 교재를 남편 말을 듣고 결정하신다니요.”몇 번을 설득해도 한번 돌아선 마음은 요지부동이었다.‘다음에 은혜를 갚겠으니 한 번만 사주세요.'라고 애원이라도 하고 싶었다.

긴장이 풀렸는지 일어나려는데 발이 저려왔다. 냉수 한잔을 더 얻어 마시고 가까스로 문을 열고 나설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발이 부르트도록 동대문 일대 기저귀가 걸린 집들을 거의 이 잡듯이 돌아다녔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어떤 때는 이미 갔던 집을 또 가고 또 간 적도 있었다. 6개월 동안 거의 한 달에 한두 개 파는 데 그쳤다. 더 이상 버틸 자신이 없었다. 기저귀 걸린 집을 찾는 것도 이제 쉽지 않았고 문을 열어주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사람에게는 때가 있는 법. 내 인생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6개월 동안의 외판원 생활은 소중한 경험이었다. 처음에는 시골 쥐처럼 모든 게 낯설었다. 거대한 빌딩, 화려한 불빛 속에서 이방인처럼 맴돌았다. 처음에는 초인종도 단번에 누르지 못하고 몇 번을 망설이다 돌아섰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마치 죄지은 사람처럼 아주머니들 얼굴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완벽하게 암기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초보운전자처럼 멈칫멈칫하다가 뒤돌아서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어려움들은 너무나 단순한 것들이 되었다. 비록 크게 실적은 올리지 못했지만 서울 한복판에서 나는 조금씩 성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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