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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JO Aug 21. 2023

10 은행원으로 일단 유턴

1990. 11. 15. 드디어 전역이었다. 남들은 대학 재학 중에 군사훈련을 받았다는 이유로 3개월 단축 혜택을 받았는데 고졸인 나는 꼼짝없이 2년 6개월에서 3일 모자란 날을 복무해야 했다. 내 앞으로 먼저 제대하는 졸병들을 다섯 명이나 먼저 보낼 때마다 서러움에 치를 떨었다. 대학에 입학한 후 다시 입대하여 3개월 혜택을 받아보고 싶을 정도였다. 그만큼 내게 대학은 남다른 의미였다.

    

제대를 했지만 달라진 것은 크게 없었다. 여전히 서울에서 내가 지낼만한 구석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다시 예전에 몸 담았던 신문보급소로 갔다. 부모님께는 대학에 갈 거라고 말씀드렸다. 이미 신문배달업계의 베테랑이어서 적응은 문제없었지만 '딸배'의 환경은 예전보다 훨씬 열악한 것 같았다. 그때부터 틈만 나면 이곳저곳으로 보급소를 옮겨 다니며 공부하기에 좀 더 나은 보급소를 찾아다녔다. 창동에서 혜화동에 이르기까지 8-9군데 보급소를 옮겨 다녔지만 처음보다 더 나은 곳은 없었다. 당시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은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처음 봤었던 때보다 더욱 휘황찬란했다.  


그해 11월 중순에 아버지의 회갑이 예정되어 있었다. 형도 무직, 작은 아들도 무직인 채로 회갑 잔치를 치른다고 생각하니 늘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 당시 회갑이 되면 정성껏 음식을 장만하고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 축하를 해주며 한바탕 마당에서 잔치를 벌이곤 했다.

부모님께 죄송하지만 이대로 계속 대학시험공부를 할지 아니면 아버지의 회갑을 위해 취업준비를 해야 할지 고민이 계속 됐다.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아버지의 회갑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뼈마디에 금이 갈 정도로 힘든 농사일을 평생 해오신 아버지의 인생을 생각하니 도저히 내 욕심만 차릴 수가 없었다. '지금 뭣이 중헌디'.

며칠간의 고민 끝에 우선 취업해야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고등학교 때 그나마 아등바등 주산, 부기 2급 자격증을 취득해 놓은 것이 다행이었다. 오랜만에 고등학교에 찾아가 현대자동차와 광주은행 취업추천서를 받았다. 원서를 접수하고 상식 책 한 권을 사 공부한 후 시험에 응시했다. 현대차는 제법 잘 봤다. 은행은 생각보다 어려운 문제가 많았다. 나는 현대차 면접을 준비하며 결과를 기다렸다. 대한민국 최고의 대기업에 입사한다고 생각하니 어깨에 힘이 절로 들어갔다. 그런데 결과는 내 예상과는 정반대였다. 은행만 합격하여 5월 중순부터 한 달간 연수를 받았다. 은행 창구에서 직원이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빠른 속도로 돈을 셌었는데 그 연습도 실컷 했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딱, 딱, 딱 소리를 내는 기술이 서서히 내 것이 되어 갔고, 부챗살처럼 쭉 펴고 5장씩 세어보는 고급기술도 마스터했다. 


연수가 끝나고 서울  명동 대연각 빌딩에 있는 광주은행 서울지점으로 발령이 났다.  외판원, 신문배달의 블루칼라에서 화이트칼라가 된 것이다. 명동은 서울의 중앙이었다. 대연각 빌딩 오른쪽으로 서울중앙우체국이 있고, 한국은행이 맞은편에 있고, 또 한달음 거리에 명동성당이 있었다. 그리고 회현역 근방에 그 유명한 남대문 시장이 있었다. 매일 양재동 사택에서 전철을 타고 오가는 은행생활이 시작되었다. 


마침 그해에 형도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여 발령이 났고, 나도 취직이 되어 어느 때보다 기쁜 마음으로 아버지의 환갑잔치를 치를 수 있었다.  술을 좋아하시고, 늘 동네일에 앞장서셨으며 누구한테도 지기 싫어하셨던 아버지는 아들 둘이 좋은 곳에 취직하였다며 매일 자랑에 시간 가는 줄 몰라하셨다. 태어나 처음으로 나 자신이 대견했고 자랑스러웠다. 

아침 일찍부터 집 한쪽에서 동네 아주머니들께서 전을 부치며 음식을 준비했고, 동네 앞 냇가에서는 돼지 울음소리가 크게 들렸다. 마당에 덕석(멍석)이 깔렸고, 동네 어르신들이 한분 두 분 들어오셨다. 아버지는 평소 4시에 일어나셔서 오전 11시면 하루 일을 끝내셨다. 점심때부터 한잔 두 잔 술을 드시고 저녁이면 어김없이 취한 모습이셨다. 오늘은 일 따위는 필요 없었다. 저녁이 되어 마당 한가운데 장작불이 타올랐고 동네 어르신들의 노랫가락에 마당이 들썩거렸다. 이제 오늘의 주인공이신 아버지가 마이크를 잡았다. '남원산성 올라가 이화문전 바라보니.....' 여기저기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앙코르도 없었는데 아버지는 또 한가락을 뽑았다.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젓는 뱃사공..' 단숨에 아버지의 60년 인생이 밤하늘에 수놓아지는 것을 보았다. 무슨 영문인지 눈만 끔뻑거리는 저 별만큼이나 오늘 하루는 나에게 낯설고도 한없이 고마웠다.  

아버지는 동네 사람들을 향해 말씀하셨다.  '참말로 고맙구먼요. 내가 언제 죽을지 몰랐는데 이렇게 환갑까지 살아부렀내. 우리 큰 놈이 공무원에 합격을 했고, 둘째는 은행에 합격을 했구먼. 오래 살고 볼일이구만요. 우리 집 경산게 오늘 맘껏 드셔라.' 

어디선가 내 이름이 불려졌다. '작은놈 노래 한곡 해봐라' 나도 모르게 '울어봐도 불러봐도 못 오실 어머니를 ,,,. 노래를 하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고, 목이 메었다. 노래가 끝나기 무섭게 아버지를 등에 업고 마당을 돌았다. 몇 바퀴를 연달아 돌았는데도 힘이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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