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2월 14일 오후 3시 30분. 2년 6월의 유학을 위해 인천공항으로 출발했다.
한 달간 집중 훈련으로 출국 준비를 마쳤다. 한 달 내내 여권이며 비자. 각종 준비물 등을 하루에도 몇 번씩 수정하며 마지막으로 준비물을 확인하고 인천대교에 타이어를 안착시키던 순간 몸은 이미 昆明(쿤밍,곤명)행 비행기에 오른 것 같았다. 약간의 사정으로 우선 큰 아들과 내가 선발대로 출발하고 집사람과 작은놈, 막내는 여름방학에 출국하기로 했다.
공항에 도착하여 등산용 벨트를 하나 구입한 후 잠시 의자에 앉아 있는데 갑자기 무언가 허전했다. 아니나 다를까 엊그제 산 노트북이 보이지 않았다. 6시 40분 비행기 출발시간까지 2시간여가 남았다. 어떻게 해야 하나? 잠시 망설이다가 집사람에게 빨리 갔다 오라고 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니 급하게 운전을 하며 갔다 오다가는 사고가 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눈물을 머금고 노트북은 다음에 택배로 받기로 했다. 이제 한 시간 정도 탑승시간이 남았다. 작은놈, 막내 얼굴도 자꾸 몇 번 더 바라보고 안아주고……수하물을 부치기 위해 대한항공 데스크로 갔다. 대형 가방 네 개를 올려놓고 나니 여직원이 여권을 달라고 했다.
가방을 열었는데 아, 도저히 있어서는 안 될, 없어야 될 상황이 내 앞에 펼쳐졌다. 내 여권이 보이지 않았다. 이리저리 가방 안을 샅샅이 뒤져보았지만 여권은 나를 외면했다. 100만 볼트 전기불꽃이 확 튀는 것처럼 멍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이를 어쩌나. 곧장 외교부민원센터로 달려갔다. 여권 분실신고를 하고 새로운 여권을 신청했다. 복사해 온 파견 관련 공문을 건네주며 비행기 시간이 6시 40분이니 최대한 빨리 발급해 줄 것을 거듭거듭 부탁했다. 아무리 빨라도 6시 정도에 가능할 것 같다는 민원센터 직원의 입을 원망하며 한편으로 그래도 안심이 되었다. 6시면 탑승시간이 40분 정도 남는데…… 길게 호흡을 서너 번 했다.
그동안 여권, 여권, 비자, 비자를 외쳤는데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이라니. 울고 싶었다. 도대체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초초하게 6시를 기다렸다. 몇 번이고 민원센터로 갔다가 돌아오고. 시간이 왜 이렇게 빨리 가는지 또 왜 이렇게 늦게 가는지…… 답답했다. 6시 5분 드디어 새로운 여권을 받아 들고 감격에 젖어 수하물 데스크로 달려갔다. 이미 탑승을 마쳐할 시간. 발걸음도 마음도 손도 더욱 급해졌다. 여권을 받아 든 대한항공 여직원. 눈을 점점 크게 뜨며 잽싸게 여권을 넘겨보더니
"'비자가 없는데요?”
"그럼 어떻게 합니까?”
나는 그만 얼어붙었다. 비자를 발급받았던 여권은 방금 전 분실 신고를 했고, 만약에 찾으면 구청에 습득신고하라고 했는데……
나는 그저 대한항공 여직원의 입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하염없이. 뭐라고 해야 되는데 말문이 막혀 나오지 않았다.
"그럼 오늘 출국이 불가능한가요?”겨우 정신을 가다듬고 물었다.
"글쎄요. 일단 제가 쿤밍공항 대한항공 직원에게 전화를 해 보고 말씀드릴게요.”
잠시 후 "쿤밍공항 직원에게 물어봤는데 일단 그곳 공안(경찰)에 문의를 해봐야 된데요. 5분 정도 걸린다고 하니까 좀 기다리세요”
이제 여직원도 긴장한 빛이 역력했다. 이제 출국시간까지 25분 정도. 집사람과 애들이 있는 의자로 돌아오는데 아내가 핸드백을 뒤적뒤적하더니 뭔가를 꺼내드는데 ‘이런, 이것이 무엇인가. 푸른빛이 감도는 갑옷을 입고, 갑옷 안은 온통 금빛으로 치장했으며 그 앞부분엔 중화인민공화국 비자가 보석처럼 박혀 있는 그것. 내 여권이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며칠 전 아내에게 나중에 출국할 때 둘째 아들놈도 초등학교에 정원 외 관리신청서 제출할 때 필요하니 내 여권을 하나 더 복사해 놓으라고 맡겼는데 복사한 후 그대로 핸드백 속에 넣어 뒀던 모양이다.
그 이후로 나도 아내도 신경을 쓰지 못하고 그렇게 내 여권은 집 사람 핸드백 속에 갇혀 있었던 것이다, 에구 불쌍한지고) 여권을 들고 쏜살같이 민원센터로 달려갔다. 혹시, 만약, 분실등록을 하지 않았다면, 분실등록을 했어도 다시 취소할 수 있다면. 지금 이곳에서 벌어졌던 한 시간 동안의 일들이 모두 무효가 될 수 있다면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달려가 여권을 찾았다고 했더니 그 직원은 아주 침착하고 대단히 사무적인 목소리로
"이미 분실등록을 하여 더 이상 사용이 불가능하니 구청에 습득신고 하라고 하세요”라고 말했다.
"아니 그래도 다시 분실등록을 취소하면 안 됩니까” 내가 생각해 보아도 말이 안 되는 소리였지만 나는 그렇게 어린애처럼 애원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