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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JO Nov 03. 2023

쿤밍표류기

윈난성  쿤밍에 발을 디뎠다.

중국이라. 우리나라와 비교하여 인구는 28배인 14억이 넘고, 면적은 97배인  9,640,821km다. 14개 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고 전국이 22개 성, 4개 직할시, 2개 특별행정구(홍콩, 마카오) 그리고 명목상 행정구역인 대만이 있고 한족 외 조선족 등 55개 소수민족이 살고 있는 곳이다.   


윈난성은 중국 남서부에 위치하고 있는데 미얀마, 라오스, 베트남과 국경을 공유하고 있고 주변으로 사천성, 장족자치구, 티벳이다.  위난성은  중국에서 비교적 개발이 더뎌 경제적으로 낙후된 지역이지만 석림, 차마고도, 샹그릴라 등 관광지가 즐비하다. 또한 25개의 소수민족이 살고 있어 소수민족 문화의 집합소라고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참고로 소수민족 중 하나인 조선족(한민족 가운데 19세기말부터 20세기 초중반에 집중적으로 중국으로 이주하여 중국 국적을 갖고 있는 사람)은 주로 길림성 연변에 거주하고 있다. 

쿤밍은 윈난성의 성도이다. 해발 1,900미터 고도에 위치하고 있어 일 년 내내 날씨가 온화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쿤밍을 '봄의 도시'라고 부른다.  


인천국제공항에서 4시간 비행 끝에 쿤밍에 도착했다. 출국 전 쿤밍에 있는 윈난대학에서 어학연수를 받기로 허가를 받았었다. 또 다른 이유는 어느 지역이든지 중국 대도시에는 한국 사람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었지만 쿤밍에는 아직까지 그다지 많이 살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한국 사람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는 중국어를 전혀 못해도 생활하는데 아무 지장이 없다. 물론 영어권이나 다른 언어 지역도 마찬가지겠지만. 쿤밍 장수공항에 도착했는데도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았다. 한국인 운영의 게스트하우스로  가던 중 배가고팠다. 두리번거리다 보니 피잣집이 눈에 띄었다. 아들이 "여기도 피잣집이 있네. 우리 중국 입성 기념으로 피자 먹자”라고 했다. 쿤밍의 피자 맛이 궁금했다. 피자를 주문했는데 10분이 지나도 나오지 않고 20분이 거의 다 되어서야 나왔다. 순간 아찔했다. 아래쪽이 누룽지처럼 타 거의 먹을 수 없는 지경이었다. 한국 같았으면 그런 일이 일어나지도 않았을 거지만 발생한다고 해도 업주가 공손히 사과하고 교환해 주었을 텐데. 화가 치밀었지만 첫날부터 따지고 들면 앞으로 중국생활이 편치 않을 것 같은 예감에 대충 위만 골라 먹었다. 


공기가 맑았다. 농부가 수확한 벼를 가을 햇살에 정성껏 말린 다음 방앗간에 가지고 가 곱게 찧어낸 쌀처럼 여러 번 정화를 하여 뽑아낸 신선한 공기만 내어 놓은 것처럼.  피자집에 들어갈 때보다 더 허기가 밀려왔다. 어서 게스트하우스로 가보자. 주변에 한국 식당이 좀 있겠지.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고 쥔장이 알려준 한국식당으로 걸어가는데 갑자기 아들이 태풍에 나무 쓰러지듯 길바닥에 주저앉아 눕고 말았다. 

'이를 어쩌나.' 오늘이 중국 입성 첫날인데. 만약 잘못되면 지금 당장이라도 빨리 한국으로 귀국해야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처럼 오랜 목표가 있어 온 것도 아니고 느닷없는(?) 이 낯선 곳으로 따라왔으니……    


큰일이다. 얼굴을 보니 새하얗다. 눈은 초점이 흐려 보인다. 지나가는 사람도 없었다. 기절한 듯 아무 말이 없었다. 고산병인가? 평탄한 곳에서 10여 년 이상을 살다 갑자기 해발 1,900미터에 내려놓으니 그런 것일까.  만반의 준비를 한다고 했는데 고산병은 생각지도 못했다. 고산병은 갑자기 높은 지대에 놓였을 때 머리가 아프고 피곤해지며 식욕이 없어지는 증상이다. 심한 경우 두통이 더 심해지고 토할 것 같으며 숨쉬기가 매우 힘들어진다.  

    

게스트하우스 쥔장에게 서둘러 전화를 했다. 쥔장은 일단 근처에 있는 한국식당으로 빨리 옮기라고 했다. 아들을 업고 달렸다. 5분 정도 거리였는데 참으로 멀게 느껴졌다. 식당에 도착하자마자 아들을 눕히고 주인에게 좀 봐달라고 했다. 주인은 '고산병은 아닌 것 같고 긴장이 풀려서 그럴 수 있으니 좀 누워 있으면 괜찮아질 것 같다'라고 주치의처럼 단호하게 진단을 내렸다. 정말? 그렇다면 다행이다. 찬물을 들이켜게 했다. 잠시 후 아들이 눈을 뜨고 스스로 일어나 앉았다. 휴! 십년감수했다. 아들은 뭔 일이 있었는지 아무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 아들이 좋아하는 삼겹살로 점심을 먹었다. 사장님으로부터 주변 학교며 한인 모임이며 일장 연설을 듣고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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