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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나래 Aug 11. 2023

주인 없는 결혼식

혼주가 뭐예요?

외할아버지가 조선시대에 태어났다면, 시를 쓰고, 토론을 즐기는 문인이셨을 듯하다. 가정을 중시하며, 자연을 사랑하고, 나쁜 짓을 하면 결국에 다 업보로 돌아온다며 착하게 살라고 하신다. 불교 신자인 외할아버지는 가끔 한지로 만든 종이에 붓펜으로 불교의 경전을 옮겨 적으신다. 한 번은 할아버지 책상에 봉투가 있었는데, 그 봉투에 적힌 이름 석 자가 얼마나 반듯하면서도 개성이 있었는지, 참으로 멋있어서 내가 아는 사람 중 최고의 명필로 등록해 드렸다.


이런 전통적 가치관의 수호자인 할아버지는 확고한 본인의 신념에도 손자, 손녀에게 잔소리 한 번 하신 적이 없다. 심지어 지난 명절에 저는 결혼 안 할 거라고 도발했음에도 할아버지는 조언과 덕담을 짧게 하시고 그것에 대해선 더 언급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나는 외할아버지를 리스펙하는데, 나는 이런 외할아버지도 크게 실망하신 사건을 만들었다.


---


사촌의 결혼식에서 축의금을 걷게 된 나는 하객분을 맞이하고 있었다.


한 분이 오셔서 물었다.


"혼주가 XXX가 맞습니까?"


나는 혼주가 무슨 뜻인지 몰라서, 신랑 이름만 다시 한번 말씀드렸다.


식이 끝나고, 삼촌들이 모여있는 자리에서 당당히 물었다. 혼주가 무엇이냐고.


옆 테이블에서 듣던 할아버지는 손자의 질문이 얼마나 비통하셨는지 한숨을 푹 쉬셨다.


”에끼 혼주가 무엇인지도 모르냐.”


이 정도로 실망하실 줄 알았다면 구글링 했을 텐데... 조금 후회되었다. 지금은 장난칠 타이밍이 아닌 것 같아 가만히 있었다.


결혼식의 주인, 결혼을 주최한 어른이 혼주였다.


무식이 죄인지라 잠자코 듣고 있었지만, 결혼의 주인이 신랑 신부가 아니라는 것에 반기를 들고 싶었다.


평소 외할아버지가 나를 리스펙 해주셨으니 참았다. 오케이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날 하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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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이 지나고 나는 앞으로 혼주라는 말을 안 쓰기로 다짐했다.


누군가 내게 혼주가 누구냐고 물어도 모른 척할 것이다.


홍철 없는 홍철팀도 아니고 그러면 신랑 신부만 있는 결혼식은 혼례의 주인 없는 결혼식인가.



우리의 교육은 이성과 평등, 자유 의지를 강조하면서, 정작 나의 의지 없이 날 때부터 타고난 부모와의 인연에 대해서는 그 어떠한 예외도 만들어 두지 않았다. <더 글로리> 문동은의 엄마 정도로 미쳐서 매일 술 마시고 집에 불까지 질러야지만 부모와 자식의 연을 끊어도 인정해 준다. 그마저도 엄마에게 사랑 못 받은 불쌍한 년이라며 연민의 대상이 된다.


내 꿈이 전통문화 테러리스트는 아니고, 나 혼자 잘 살 수 있다고 주장하는 건 더더욱 아니다.


모든 생물을 통틀어 인간만큼 무능한 어린 시절이 있을까. 오랜 기간 혼자서는 대소변도 못 가려, 먹이도 못 구해, 숨 쉬기 불편해도 몸도 잘 못 가눈다. 누가 알려주지 않으면 읽지도 쓰지도 못한다. 커서도 마찬가지지만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대부분의 경우에 어머니와 아버지가 많은 도움을 주신다.


누군가에겐 나를 사랑하고 위로하는 가족은 삶의 가장 큰 이유다. 나는 가장 아끼는 친구로부터 어머님과 아버님 두 분 다 돌아가시고 나면, 본인은 자살할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


그러나 모든 부모가 좋은 부모일까. 모든 가족이 좋은 가족일까. 내 인생을 부모와 분리해서 살 수는 없는 것일까.


서울대에 ‘부모님이라는 단어는 쓰면 안 된다’는 내용의 대자보가 있었다. 좋은 부모 밑에서 자란 사람에게 그 대자보는 어떤 느낌으로 다가왔을까? 예측건대 그들은 왜 그런 주장이 있는지부터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건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경험해 보지 못했고 알 필요가 없었을 뿐이다. 이렇게 서로 다른 경험을 한 인간의 공감을 이끄는 것에 소설의 역할이 있다고 믿는다.


나는 오래전부터 내 첫 번째 소설이 우리 사회에서 정답으로 규정된 가족관에 의문을 던지는 내용이었으면 했다. 그런 생각 때문인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인 <이방인>의 첫 번째 문장도 엄마의 죽음조차 잘 기억하지 못하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시작된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그게 어제였나. 잘 모르겠다.’


여기까지 적고 보니, 나의 외할아버지는 이 글을 보시면 안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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