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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나래 Oct 19. 2023

줄타기

우리는 작고 연약한 존재.

<줄타기>


갑자기 거센 바람이 불었다. 당황한 나는 휘청거리다 발을 헛딛었다. 손으로 줄을 붙잡지 않았다면, 밑바닥으로 떨어졌을 것이다.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요즘 나는 일상 중에도 어떤 한 남성이 양팔을 벌린 채 줄을 타고 있는 장면이 종종 떠오른다. 멀리서 바라보면, 떨어지지 않았기에 균형을 잡은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가 부르는 균형은 찰나의 순간일 뿐이다. 저울의 눈금은 균형을 사이에 두고 흔들리고 있다.


나는 개인의 삶이 너무도 연약함을 간절하게 말하고 싶다. 며칠 전 친구에게 물었다. 요즘 재밌는 거 없냐고.

그는 일상이 비슷해서 따분하다고 했다. 삶이 지겨운 눈치였다. 안심했다. 친구는 행복하지 않다고 느낄지 모르겠지만, 친구는 특별한 어려움이 없는 잔잔한 상태였다. 그가 지금 행복하다는 걸 깨닫게 해주려면 몇 가지만 물어보면 된다. 만약 오늘 저녁에 갑작스레 아버지가 쓰러지시면 어떻게 될 것 같냐고, 전세로 살던 집에 문제가 생겨 보증금을 모두 잃으면 어떨 것 같냐고.


요즘 인생이 줄타기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줄은 갑작스레 출렁이곤 한다. 그리고 대부분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로 흔들린다.


개인의 삶은 한순간에 비참해질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우리가 서로를 더욱더 연민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도보를 걷던 20대 여성은 마약에 취한 남성이 몰던 차량에 치여 뇌사 상태가 되었다. 무차별 칼부림으로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런 일은 흔하지 않기에 피해자들이 불운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법을 지키며 선량하게 일상생활을 하던 부모가 외동아들을 해병대에서 잃은 것처럼 누구에게나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음을 안다면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피해를 받은 자들의 운명은 그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굴러갔다.


나는 국가를 비롯한 법과 공권력, 세금, 복지가 개인의 나약함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됐다고 믿는다. 개인에게는 어떤 불행도 닥칠 수 있기 때문에, 불운을 피한 다수의 사람이 힘을 합쳐 그 사람을 도와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은 그렇게 행동하기 어렵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종류의 불운은 보통 소수의 사람에게만 있는 일이니까.


내가 봤을 때, 정치인이 더럽다고 욕하는 사람은 정치인이 얼마나 거대한 권력을 가졌는지 모르고 있다. 그러니까 남한테 관심 많고 남 잘되기를 못 보는 사람들마저 더럽다고 욕만 할 뿐 그 이상의 관심은 없다.


투표는 최선을 뽑는 것이 아니라 차악을 뽑는 것이라는 말을 아주 싫어한다. 최악과 차악을 가린다는 생각으로는 상대를 더 최악으로 모는 게 목표가 된다. 투표는 차악을 뽑는 것이 아닌, 다수가 소수를 뽑는 것으로 프레임 지어져야 한다. 선출된 사람을 주인공으로 보는 게 아니라, 힘 없는 다수의 생존을 위한 선택으로 그려져야 한다. 보잘것없는 이익을 갖고 싶어 상대를 악으로 몰아가는 멍청한 개인들을 소수 권력자는 좋아한다. 개인이 분열되면 자신들의 권력에 간섭할 힘이 없으니까.


나는 자기가 연약한 줄 모르고, 자신이 잘나서 잘 먹고 잘사는 거라 믿는 개인이 너무도 싫다. 개인이 아무리 잘난들 집단의 운명을 거스를 수 있을까. 한없이 나약하고 위태로운 다수의 개인은 살기 위해 소수의 권력자에게 법도 돈도 무기도 미래도 쥐여주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연약하다는 걸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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